김명훈 시인
김명훈 시인

계절마다 피고 지는 꽃들이야 화무십일홍의 이치라서 아무렇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마음의 일이라 천지의 조율이 통하지 않는다. 끼니를 때우듯이 성큼 찾아오는 기억들이 피고 지는 일상 속에서 가끔 무언가가 잔뜩 그리운 표정으로 골목 어귀를 서성이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나도 무언가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상황에 익숙하지 못한 자연의 미숙아는 사람만 한 것이 없다. 예상하지 못한 관계의 변화는 벼락같이 온다. 심연의 바닥에서 일렁이는 파도에 휩쓸리는 상황이 되면 어떤 날들은 슬픔 투성이로 살아야 하고, 어떤 날들은 기쁨 투성이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을 고독하고 궁하게 만드는 건 슬픔뿐이다. 오직 슬픔. 삶이 지속되면 슬픔도 지속된다. 나는 불혹의 고독이 시작되자 웃고 떠드는 사람들이 그리워졌고 글이 그리웠다. 
 
사물이 우는 것은 부득이함에서 말미암은 불평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득이한 감정을 한이라 한다. 궁하면 시를 쓰고, 부하면 애인을 찾는다고 했나. 나는 가난했다. 무작정 글을 쓰고 싶어진 나는 김해의 글 동아리를 이곳저곳 기울이다 자발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하여 알음알음 글을 썼다. 우는 표정이 만연했던 정한의 시절, 경박하게 돌아섰던 그네들이 너무 밉고 미워서 글만 쓰고 책만 읽었다. 그러다가 동아리 누군가의 소개로 부원동의 카페를 알게 되었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김해의 유일한 문화카페라고 주장하는 주인장은 나에게 그냥 글이나 쓰라면서 앞으로 문화카페의 성쇠는 당신에게 달렸다며 턱도 없이 게시판을 생성시킨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거절해야 했지만, 말이 되는 소리라고 마땅히 수락했다. 나는 그 곳에서 제공해준 유일한 게시판에 글을 쓰는 문화카페의 유일한 작가로 등단을 하였던 것이다. 
 
나의 첫 글은 "빈 배가 오라, 빈 배로 내가 가겠다"는 장자로 시작하였다. 슬픔에도 도가 틔는 걸까. 미처 걸어가지 못한 길들이 있음에도 나는 모든 길을 다 걸은 거 마냥 여유를 부렸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은 애초에 시작하지 못한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슬픔의 길로 들어선 나는 세상의 끝을 본 듯했다. 저 쪽 머언 산에는 달이 계속 떠오를 터지만 부원동 골목에서 바라 본 어느 보험사 건물에 비스듬히 걸려있는 달은 오늘만 뜨고 내일은 뜨지 않을 것처럼 색이 밝았다. 일억 짜리 동전이 있다면 저 달만 하지 않을까. 나는 절박했고 빨리 끝내고 싶었다. 
 
날마다 달은 뜨지 않는 법인데도 부원동의 그 골목은 환하고 정겨웠다. 저마다 무슨 사연으로 저녁마다 모여서 취하고 떠드는지는 궁금했어도 묻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에 꽃은 지는게 아니라 사라진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주소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방랑자의 아침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가 깰 때 마다 베개 섶에 스며진 아련한 흔적들을 여전히는 아니더라도 어쩌다가 발견하기도 한다. 그 어쩌지 못한 날에는 부원동의 마냥 정겨웠던 가게를, 사람들을, 관계를 떠올린다. 
 
그 좋았던 때, 단 한 번 피었다가 사라진 꽃을, 지는 것들은 또 다시 필 테지만 사라진 것들은 다시 피지 않는다. 잊히는 것들은 사라진 게 아니다. 잊히지 않는 것들이 사라진 게다. 오늘은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은 나를 위해 한 잔을.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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