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 문학평론가·국문학박사
차민기 문학평론가·국문학박사

지역 대학의 정원 미달 사태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일부 대학에선 내년부터 인문계열의 몇몇 학과는 아예 신입생 모집 자체를 안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올해 입시에서 지역 국립대학의 의대마저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과 계열로의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명문고를 판단하는 기준은 의대, 치대, 한의대를 몇 명 배출했느냐로 바뀌는 추세다. 그럼에도 의대에서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단순히 학령인구의 감소로만 풀이될 일은 아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지역의 인재들 가운데에는 서울 소재의 대학에 진학하는 것보다 지방 국립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탓도 있었고, 진로에 맞춰 지역 대학의 공부만으로도 취업에 큰 문제가 없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 사이, 지역 대학에 대한 인식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지역의 명문대학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왜 지역의 명문대학들은 소멸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1차적 책임은 대학에 있다. 대학들은 한 학기에 수백 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받아가면서도 이 청춘들을 위한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소홀했다. 기껏해야 건물 하나 올리고, 번듯하니 캠퍼스의 외관 꾸미기에만 치중한 부분이 크다. 명문대학은 그런 외관 가꾸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건물을 휘감은 넝쿨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효율적인 기회 창출로 대학의 명성을 높임으로써 그 넝쿨마저 유명하게 만든 것이다.
 
지역 대학의 위기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지자체·교육당국에도 있다. 자치단체장을 비롯해 교육계의 책임자들은 지역 대학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일선 중·고교와 지역 대학을 연계한 진로 탐색 프로그램들을 다채롭게 만들고, 교감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았어야 했다. 경남지역은 대규모 산업단지들이 여럿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현지 공장들과 대학의 관련 학과를 직접 연결하는 특성화 교육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성화 학과들을 학교별로 키워가야 한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한 현실에서 공공기관은 보다 적극적으로 외국 현지 대학과의 교류를 위한 법적, 행정적 지원에 힘을 쏟았어야 했다. 공장을 몇 개 더 지어 그로부터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을 더 거두는 일보다 지역 인재들이 지역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게 장기적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오는 7월에 경남도교육청은 지역대학초청 특성화 학과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여러 대학의 학과들을 보면 초등교육과, 가족복지학과, 항공관광학과, 간호학과, 부동산금융학과, 약학과 등이다. 어느 것 하나 지역 사회의 특성을 살릴만한 특성화 학과라고 할 수 없다. 그저 각 대학별로 인기 있는 학과 하나씩을 골라 학교 홍보를 위한 수단 정도로만 진행될 것이 우려된다. 지역 대학의 위기를 부르짖으면서도 여전히 앞을 보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에만 급급한 형국이다. 이대로라면 '위기'는 곧 '소멸'로 이어질 것이다. 문제 해결은 근본적 원인을 찾아야 할 때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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