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형 경성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정일형 경성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디지털이 만연한 사회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디지털로 변환시킬 수 있을 것 같고, SF 영화에서나 보던 일들이 당장 펼쳐질 것만 같기도 하다. 0과 1의 숫자 변환을 기본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디지털로 바꾸고 자유로운 파일 형식으로 변환할 수 있는 장점은, 무언가 서두르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 민족의 심리와 잘 맞아떨어져 우리를 지금의 디지털 강국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세상 어느 나라가 그 짧은 시간 동안 잔여백신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것도 서로 경쟁하면서 예약하고 백신을 찾아가서 맞는단 말인가? 
 
그렇다고 이 글에서 디지털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아날로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제 한 숨 깊이 들이 쉬고, 잠시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한 번 둘러보자. 조금 늦게 시작한 장마로 비가 며칠 동안 계속 내리고 있다. 나는 오늘 아침 비가 그나마 부슬부슬 오는 이른 아침에 강변으로 조깅을 나갔었다. 강물은 많이 불어 있었고, 산책길과 자전거도로 옆 화단으로부터 꿈틀거리는 지렁이들도 보이고, 비가 조금 내렸지만, 풀들 사이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는 벌레들도 조금 보았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시내 중심부를 조금만 벗어나더라도, 단독 주택들의 담 사이로 해바라기를 비롯해 채송화, 달맞이꽃, 수선화 등의 꽃들과 많은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간혹 나무들 사이의 거미줄에 걸린 벌레들과 허물 벗은 이름모를 벌레를 비롯해 운이 좋으면, 허물 벗고 나오는 성충의 변태(變態) 과정도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세계에서도 최첨단 소리를 듣는 우리나라의 현재 시점에선, 예전의 기억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1도 찾아보기 어렵다. 주위엔 아파트 단지들만 무성하고, 자연적인 것을 경험하려면 조금 멀리 맘먹고 나가야 한다. 그저 자연스런 내 생활의 일부에서가 아니라 마음 먹고 무엇인가 계획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고, 때로 학습해야 한다. 그것도 디지털의 상징인 스마트폰을 아이에게서 조금 멀리하고 겨우겨우 설득시킨 후에나 가능하다. 
 
그래도 마음 먹고라도 자연을 찾아보고, 무언가 발견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의 일상은 아침부터 그저 바쁘고 피곤하며, 주위를 둘러 볼 여유조차 별로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100% 아날로그인 우리의 인체는 100% 디지털로 대체할 수 없다. 어쩌면 100% 아날로그를 디지털로 구현하는 것이 최종 단계의 목표일지 모르나,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Godot)'처럼, 100% 디지털로 구현된 아날로그는 처음부터 오지 않는 대상이다. 
 
엄마의 뱃속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게 아날로그인 클래식 LP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방긋 웃는 표정이었고, 디지털인 mp3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더라는 실험결과도 있다. 심지어 아날로그 음악을 듣고 자란 동식물은 디지털 음악을 듣고 자란 동식물보다 두세배나 더 성장한다고 한다. 진정 태아를 위한다면, 그저 자연의 소리를 찾아, 또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 모를 위대한 변이의 순간을 찾아, 일부러라도 근처 자연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생명의 기원이 자연에 있고 아날로그에 있다. 결국 지금의 리얼 라이프에선 의도적으로라도 짬을 내어 찾아 나서야 한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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