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 국문학박사·문학평론가
차민기 국문학박사·문학평론가

신라 경덕왕 즉위 기간(742~765년)에 변고가 많았다. 가뭄, 우박, 지진, 전염병이 수시였고, 별자리가 헝클어져 위정자들의 근심이 많았다. 경덕왕 24년, 왕은 이 어지러운 상황에 대해 고승 충담사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이에 충담사는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위정자들의 책무에 대해 설파했다. 충담이 조언한 <안민가>의 핵심은, '임금과 신하는 부모와 같고, 백성은 어린 아이와 같으므로 임금과 신하는 백성을 먹여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각자 자신이 맡은 바에 충실하면 나라는 저절로 태평해질 것이라는 게 안민가의 본 내용이다. 이후, 경덕왕과 그 신하들이 충담사의 조언대로 '-답게' 나랏일에 임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공자(B.C.551~B.C.479)의 제자 가운데 '자로(B.C.542~480년)'라는 이가 있다. 성격이 거칠고 힘 쓰는 일에 용맹하였으나 공자의 가르침에 이끌려 유자(儒者)의 옷을 입은 이다. 14년에 걸친 공자의 주유천하(周遊天下)를 끝까지 함께 한 인물로, 공자와 자로의 대화 속에는 공자의 핵심 사상이 잘 드러나 보인다.
 
어느 날, 자로가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앞장서고 수고하는 일이다." 자로의 입장에선 다소 맥빠지는 답변일 수도 있다. 자로가 또 물었다. "정치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또 답했다. "반드시 명(名)을 바로잡겠다." 그리고 이어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어버이는 어버이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正名)사상'의 본질이다.
 
경덕왕에 대한 충담사의 조언이나 공자의 정명사상은 지극히 단순한 명제이면서도, 천 년이 넘도록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사람살이의 가장 근본적 사고임에 틀림없다. 볼테르, 루소, 흄, 애덤 스미스 등 18세기 유럽 철학자들이 '공자'의 사상에 매료되었던 것은 이런 까닭일 것이다. 서양의 철학은 이성을 근본으로 두는 '지(知)'에 치중해 온 반면, 공자를 비롯한 동양의 사유는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고 그 본성을 가다듬는 '인(仁)'의 실현에 목표를 두었다. 때문에 서양 철학자들은 근대 이후 이성의 한계로 지적되어 온 여러 문제들을 극복할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동양의 사유 체계 속에서 찾고자 했다. 
 
오늘 날 우리사회가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것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성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쟁'과 '발전'이라는 화두 속에서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감이 있다. 이 과정에서 정말 소중하게 챙겨가야 할 것들을 은연 중에 외면하거나 무시해 왔다. 그 결과 경제적인 발전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 정도가 되었으나 사회 내부적으로는 온갖 부조리와 모순들로 잠잠한 때가 없다.
 
더 늦기 전에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답게' 처신하는 일에 대해 고민할 때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답지 못하게' 사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나'부터 '앞장서고 수고하는 일'에 힘써야 할 일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기업에서 나랏일에까지. 각자가 맡은 자리에서 저마다의 역할에 맞게 '-답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 그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사람살이를 배우고 익혀야 할 때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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