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형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
정일형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

17일간 스포츠로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도쿄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도쿄올림픽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수많은 논쟁을 낳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맞는 올림픽이 바이러스 확산의 글로벌 진원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고, 개최국 일본과 우리나라의 미묘한 신경전은 물론 각국 선수단의 방역수칙 위반 논란까지 이슈는 끊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을 통해 확인한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국민들이 스포츠를 관전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오로지 '메달' 만을 외쳤던 과거와는 달리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모습은 그동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국민들은 5개의 금메달을 딴 양궁대표팀을 향한 박수뿐만 아니라 4위에 오른 여자배구팀 선수들과, 한국신기록을 경신하며 높이뛰기 4위를 차지한 우상혁 선수, 근대5종에서 한국 최초로 동메달을 딴 전웅태 선수, 4위를 기록한 정진화 선수에게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또한 5전 5패를 기록하며 참가국 12개 나라 중 12위를 기록한 럭비팀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꼴찌'라는 명예로운 수식어를 붙여 주었다. 98년 만에 밟아보는 올림픽 무대도 의미가 있었지만 척박한 국내 스포츠 환경에서 럭비를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들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국민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우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 이면에 묻어나는 그들만의 드라마에 관심을 가졌고 경기에 집중하며 쏟아내는 그들의 열정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긍정적 변화에 찬물을 끼얹는 구태도 일부 드러났다.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펼쳤다는 이유로 선수를 악의적으로 비난하거나 외모에 편향적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여자 양궁팀 안산 선수에 대한 페미니스트 공격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SNS를 중심으로 안산 선수의 외모와 페미니즘을 엮어가며 근거없는 비난을 이어갔다. 그들은 짧은 헤어스타일과 여대를 나왔다는 특정 이유를 들며 선수에 대한 인신공격을 자행했다. 여기에 안 선수가 SNS에 올린 일부 단어가 남성혐오 단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비방 댓글은 더욱 거세졌다. 로이터통신은 안 선수를 향한 국내 누리꾼들의 공격을 온라인 학대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멕시코와 8강전에서 패배한 남자 축구대표팀도 댓글 공격을 받았다. 특히 슈팅 10개 중 절반 이상을 놓친 골키퍼 송범근의 SNS에는 악성 댓글이 빗발쳤다. 야구대표팀에 쏟아진 비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프로 스포츠였기 때문이었을까. 김경문 감독부터 강백호, 양희지 선수 등에 이르기까지 경기력에 대한 실망은 분노로 바뀌어 신문지면과 SNS에 온갖 비난으로 도배되기도 했다.
 
이 모든 찬사와 비난이 결국 어디로 향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올림픽을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은 이전과 달랐다는 것이다. 성숙한 시민으로서, 또는 관전자로서 우리들은 충분히 어른스러워졌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우리는 3년 후에는 또 다른 올림픽을 맞이하게 된다. 그 때는 또 어떤 경기가, 그리고 어떤 종목, 어떤 선수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각본없는 드라마를 써내려갈까. 너무 섣부른 기대라 괜히 민망하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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