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나영 김해뉴스 독자
김나영 김해뉴스 독자

"완전 꼰대야. 너무 스트레스받아. 이 길은 나랑 안 맞나봐. 출근길에 버스가 전복됐으면 좋겠어."
 
사회에 발을 내디딘 친구가 전화 너머로 던진 말이다. 당시 난 '힘을 내'라고 위로하기는커녕 친구의 스트레스가 뜨거운 감자인양 받아치면서 '나도 그랬어'라는 '꼰대' 같은 말을 하고 말았다. 공감이라는 포장으로 나도 그렇게 버텼으니, 너도 버텨야 한다는 강요 아닌 강요였다.
 
내가 말하는 꼰대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의 은어다. 꼰대질의 의미로는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꼰대의 범주에는 기성세대만이 포함되는 것일까? 기성세대와 젊은 사람은 왜 나뉘는 것일까?
 
사실 상대의 입장을 공감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꼰대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 요즘에는 '젊은 꼰대'라는 말도 생겨났다. 올해 26살인 나 역시도 친구에게 내 경험을 일반화했다. 내 속뜻은 "그만해. 듣기 싫어"가 결코 아니었다.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깨우칠 수 있게 도움을 주려한 것이다. 그러나 감히 친구가 깨우치기 바라는 마음부터, 난 누구보다 꼰대에 가까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를 포함한 젊은 꼰대들의 공통점은 명확했다. '꼰대'라는 단어 속에 담긴 행동들을 무조건 공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령 우리의 삶에서 바르게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을 '진지충(지나치게 진지한 사람의 은어)'혹은 '꼰대'의 프레임에 가두고, 나는 다르다며 '쿨'한 척, 깨어있는 척하면서 말이다.
 
안타깝게도 이렇게 '척'만 하는 젊은이들은 여전히 꼰대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가르치려는 순간, 어쩌면 이미 강요하고 있는 꼰대의 지름길에 서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꼰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엔 뭐가 있을까? 
 
한 사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는 것. 꼰대를 벗어나는 방법은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나와 사상이 맞지 않는다고 치부하는 것이 아닌 '상대의 생각은 이렇구나, 그럴 수도 있다'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누구나 새로운 환경은 어색하고 적응하기 어렵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의 세상을,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의 세상을 이해해보자. 그렇다면 기성세대의 꼰대도, 젊은 세대의 꼰대도 서로 존재를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되,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선도 있다. 말을 험하게 하는 사람에게 "말을 부드럽게 해"라고 말하는 것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윤리와 예의를 일러주는 말이다. 이처럼 관계 속에서 필요한 이야기는 우리가 지켜야 할 예의이다.
 
누군가는 "예의를 일러주는 것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여기에 난 "어떤 것이 바르고 바르지 않는지, 옳고 그름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답하고 싶다. 그렇게 우리가 무엇이 바른지, 옳고 그름을 안다면 자신만의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덧붙여, 어딘가에는 여전히 이해하려 하지 않는 누군가의 세상 속에 갇힌 또 다른 나의 친구들이 분명 있을 테다. 이들에게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도망가도 괜찮아."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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