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형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
정일형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

그리스 신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죽은 자신의 아내를 다시 이승으로 데려가기 위해 지하세계까지 찾아온 오르페우스에게 벌어진 일이다. 지하세계를 다스리던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의 연주에 감동해 그의 아내 에우리디케를 돌려보내 주겠다고 했다. 다만 저승에서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지상세계에 다다를 무렵 오르페우스는 하데스와의 약속을 어기고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아내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오는지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 순간 에우리디케는 오르페우스의 손에서 미끄러지며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의 비극은 우리 내면의 나약함과 의심, 불신 같은 다양한 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여기서는 약속의 관점에서만 들여다봤으면 한다. 만약 오르페우스가 하데스와의 약속만 지켰더라면 그는 아내와 평생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통해 반추해보자면 우리들이 약속을 지킨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님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약속을 어긴 대가가 오르페우스의 비극만 있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거창하게 약속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인간관계 속에서 약속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갔으면 한다. 우리는 약속을 통해 관계를 형성한다. 흔히 '신뢰'나 '믿음'으로 표현되는 약속을 통해 우리들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약속 주체들의 방향성을 예측하거나 의지를 확인하고 지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우리사회는 거대한 약속 덩어리로 얼키설키 엮여 있다. 교통신호, 버스나 지하철의 배차시간, 은행 영업시간 같은 일상 생활과 밀접한 약속체계는 우리들에게 편리함은 물론 안전을 보장한다. 부동산 계약, 주식거래, 상품거래 등의 경제적 약속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자 시스템 그 자체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에서 약속이 깨지는 상황을 자주 목격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 또한 약속을 쉽게 여기고 쉽게 어기는데 익숙해져 가고 있다. 그로 인한 부작용은 실로 엄청나다. 지켜지지 않는 약속으로 개인 상호간은 물론 사회적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많은 약속들이 나오고 있다. 예비후보들은 어디서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가공해 공약으로 내놓기도 하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기발한 정책 구상으로 유권자들을 향해 구애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약속은 예산 확보에 대한 구체적 방안 없이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내용물 보다는 포장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비판도 듣기도 하고, 또 다른 약속은 특정 지역민을 위한 선심성 공약으로 실현성이 낮다는 평가를 듣기도 한다. 
 
우리들은 4년전 치뤘던 대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당시 얼마나 많은 공약이 난무했던가. 모든 후보가 합의했던 공약마저 대선 이후에는 정략적 비판거리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우리들은 똑똑히 목도했다. 약속파기가 당연히 되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21세기 오르페우스의 비극이 우리에게 닥치지 말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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