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불리는 설화
불의 여인임을 숨기고 살아가는 '여의' 중심
사랑과 국가 사이에 고민하는 두 남자 등장
김해문화재단 첫 창작연극으로 무대서 선봬 
배우들 미묘한 감정선 변화 표현에 몰입 2배




여의낭자와 황세장군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김해를 대표하는 설화 중 하나다.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음에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해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게 되는 둘의 이야기는 '가야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도 불리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 여의와 황세의 이야기가 창작연극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김해문화재단이 준비한 창작연극 '불의 전설'이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김해문화의전당 누리홀에서 초연됐다. 이번 공연은 김해문화재단이 처음으로 창·제작한 연극으로, 지난 2019년 진행된 '제1회 김해문화재단 창작희곡 공모전'에서 당선된 정선옥 작가의 희곡이 바탕이 됐다. 각색은 서울실용예술전문학교 작가과 오세혁 교수가, 연출은 거제 극단 예도의 이삼우 상임연출가가 맡았다. 
 
연극의 시대적 배경(금관가야 말기)과 등장인물의 기본적인 설정은 기존 여의와 황세 설화와 비슷하다. 
 
여의는 여성으로 태어났음에도 아버지인 출정승의 뜻에 따라 남성으로서의 삶을 살아야만 했던 인물이다. 황세는 '하늘 장수'라는 칭호를 얻은 가야 최고의 장수이며, 유민 공주는 이런 황세를 사랑하는 가야국의 공주, 왕의 외동딸(원작 설화 기준)이다. 기존 설화에서는 세 사람이 주요 등장인물이지만 이번 연극에서는 유민공주의 오빠인 '진'이 등장한다. 진은 황세와 마찬가지로 여의를 마음에 품고 있는 인물이다. 
 
이야기는 국가로서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던 금관가야 제9대 겸지왕(재위 492~523)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신탁에 따르면 소국인 가야를 구원할 유일한 존재는 '불의 여인'이다. 가야국이 멸하지 않고 대국이 되려면 '불의 여인'의 강력한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은 불의 여인의 강력한 힘 탓에 국가와 왕족이 멸할지도 모른다는 전설을 믿고 불의 여인을 찾아내 그의 심장을 제단에 바치려고 한다. 
 
그래서 불의 여인을 맞이하기 위한 불꽃제가 열린다. 불의 여인이 나타나면 폭발적인 힘이 발생하고 불꽃의 제단 꼭대기에 불이 붙는다. 
 
한편 여의의 아버지인 출정승은 여의가 18세가 되기 전에 여성인 것이 드러나면 단명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여의를 남자로 키웠다. 그리고 여의가 불의 여인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의에게 불꽃제에 절대 가면 안 된다고 이른다. 불의 여인인 여의가 불꽃제에 가 제단에 불이 붙으면 가야국 전체가 불의 여인을 찾아 나설 테고, 여의가 불의 여인인 것이 밝혀지면 여의는 물론 자신까지 죽임을 당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의는 남자인 자신은 절대 불의 여인일 리가 없는데 아버지가 왜 불꽃제에 가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성의 옷을 입고 몰래 불꽃제에 간다. 
 
불꽃제에서 여성의 모습을 한 여의의 모습을 우연히 본 황세와 진은 첫 눈에 여의에게 반한다. 황세는 그가 여의인 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증표를 건넨다. 
 
이윽고 제단에 불의 여인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는 불이 붙었다. 여의의 몸에도 불의 여인임을 뜻하는 표식이 나타났다. 결국 출정승도 여의에게 불의 여인의 정체를 밝힌다. 
 
불의 여인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반드시 불의 여인을 찾아내 그 심장을 제단에 바치라고 명한다. 
 
황세와 진은 불꽃제에서 건넸던 증표로 인해 불꽃제의 아름다운 여인이 여의, 곧 불의 여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한다. 
 
진은 불의 여인이 거북내에서 멱을 감으면 불의 힘이 사라지고 평범한 여인이 될 것이라는 신관의 말에 따라 여의를 거북내로 데려가 빠뜨린다. 불의 여인이 힘이 씻겨나가 거북내가 붉게 물든다. 
 
황세를 사랑하고 있던 유민 공주도 국가의 번영을 명목으로 여의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나 여의와의 우정으로 여의를 해치지 못한다. 
 
결국 여의는 국가의 번영을 위해 자신의 심장을 바치겠다고 말한다. 황세 역시 불의 여인의 사랑을 받은 자가 그 심장을 꺼내서 재단에 바치면 불의 여인이 다시 신성한 힘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에 따라 여의가 아닌 자신의 심장을 제단에 바치라고 한다. 
 
여의는 가야시대의 가장 강력한 기술이자 권력의 핵심인 철 제련에 필수인 '불'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연극은 기성세대의 권력에 대한 욕심, 그로 인해 숙명을 이겨내야만 하는 네 남녀의 순수한 사랑·우정이 고뇌와 갈등에 빠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도 매우 뛰어났다. 여의 역에 손혜윤, 황세 역에 전용균, 진 역에 김인하, 유민공주 역에 김한나, 왕 역에 김정환 등 12명의 배우진이 참여했는데 각자의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맞는 미묘한 감정선의 변화를 표현해내며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이삼우 상임연출가는 "김해의 전통 설화를 모티브로 하되 '불의 여인'이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써 기존의 이야기를 넘어서고자 했다. 사랑의 범위를 넘어 국가의 흥망성쇠가 좌우되는 판타지로 장르를 확장시켰다"며 "국가 속 나의 존재는 무엇인지, 희생을 강요하는 제도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그리고 기성세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등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삶 속의 담론을 사유하고 싶었다. 이번 작품이 '지역 작품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기존의 통념을 깨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해뉴스 이현동 기자 hdlee@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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