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민기 문학박사/문학평론가
차민기 문학박사/문학평론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라발 지구는 산업혁명기에 급속도로 몰려든 이민자들이 모여 형성된 동네였다. 좁은 골목을 끼고 작은 아파트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선 이 거리는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데다 치안이 좋지 않아 현지인들조차 출입을 꺼리던 곳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바르셀로나 시가 '아름다운 라발 만들기' 운동을 기획했고, 디자이너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져 지금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이 되었다.
 
독일 뒤스부르크는 유럽 최대 규모의 '티센 제철소'가 자리잡고 있었으나, 80년대 들어 철강산업의 몰락으로 약 60만 평에 이르는 이 제철소는 독일의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라인강변에 늘어선 채 벌겋게 녹슬기 시작한 거대한 철강 구조물은 흉물로 전락했다. 폐공장 터를 세계가 주목하는 지금의 환경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것은 조경건축가 '피터 라츠'의 아이디어였다. 피터 라츠는 1997년 기존의 시설물들을 그대로 살려 줄타기, 미끄럼틀 등의 갖가지 놀이가 가능한 곳으로 바꾸는가 하면, 대형 공장 내부는 각종 전시회나 공연이 가능한 곳으로 탈바꿈시켰다. 
 
미국 뉴욕의 '첼시 마켓'도 성공적인 재생공간으로 꼽힌다. 첼시 마켓 터는 원래 1890년대, 까만 쿠키 '오레오'로 유명한 비스킷 회사 '나비스코'가 지은 28개의 공장이 들어서 있던 곳이었다. 1950년대 중반, 나비스코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40년 가까이 버려져 있던 공장을 1990년대 초반에 한 개발업자가 사들여 리모델링했다. 이 과정에서 건물 외관은 그대로 둔 채 28개의 공장 벽을 허물어 하나의 마켓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켓 안에는 유명 맛집들과 과 최상의 식료품 가게가 입점해 있고, 위층 사무빌딩엔 '메이저리그(MLB)' 본사와 마이클 잭슨이 전용으로 썼다는 녹음스튜디오 등도 들어서 있다. 
 
가까이 우리 지역의 도시들을 들여다 보자. 터만 생겼다하면 고층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고 개성도 없는 상가들이 그 아파트들 주변을 둘러싼다. 그래서 이 동네, 저 동네 할 것없이 비슷비슷한 풍경들이다. 자동차로 30~40분 남짓이면 끝에서 끝까지 이동이 가능한 도시에서, 사람들은 그저 자기 아파트 몸값 자랑에만 열을 올릴 뿐이다. 최근엔 지자체들마다 공공디자인을 내세우며 도시 디자인에 관심을 두는 것 같지만 그것도 변죽만 울리는 수준이지 가시적으로 뚜렷한 결과물들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없어 보인다. 이화여대 캠퍼스를 디자인 했던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는, "한국인들은 부수고 짓는 데만 연연한다"라는 말로 우리나라 도시 건축 행태를 꼬집은 바 있다.
 
지금 전 세계는 한국의 문화콘텐츠에 푹 빠져 있다. 그 덕분에 한국을 찾으려는 외국인들의 수요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연 우리 도시들은 한국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이미지들을 전해 줄 수 있을까? 고대왕국의 역사와 찬란한 유물을 자랑하면서도 정작 우리 일상 속에 그것들을 경험하고 목격할 수 있는 콘텐츠들이 있기는 한가? 지역마다의 특색과 역사적 문화들을 박물관 안으로만 가둘 것이 아니라, 길거리 곳곳에서 그것들을 몸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앞으로의 도시 디자인은 '장소성'과 '역사성'에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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