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심 김해수필혐회회장
이정심 김해수필혐회회장

주거문화가 바뀌었다. 몇십 년 전만해도 아파트에 사는 사람보다 주택에 사는 사람이 더 많았다. 지금은 아파트 거주 인구가 주택 인구보다 훨씬 많다. 이 차이는 대도시일수록 더 심하다. 땅은 좁은데 자기 집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이 도시에 빌딩 숲을 세운 셈이다. 이젠 시골에도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옛부터 신발을 벗어 댓돌 위에 두고 마루를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의자가 있는 게 아니어서 그냥 방바닥에 앉았다. 손님이 오면 방석을 내어 그 위에 앉게 한다. 밥상도 무거운 걸 부엌에서부터 들고 들어와 먹는다. 풍류를 즐길 때도 앉아서 즐겼고 시를 지어 읊었다.

그러나 지금은 좌식에서 입식으로 문화가 바뀌었다. 어느 집이나 소파가 있다. 굳이 딱딱한 바닥에 앉을 일이 없다. 밥상보다도 식탁에 앉아 식사하는 집이 대부분이다. 잘 때도 이불을 펴는 게 아니고 침대가 있어 눕고 싶으면 언제든 그냥 누우면 된다. 
 
물론 입식의 병폐도 있다. 가족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눠야 할 소파와 한 몸이 된 남편들이다. 누워서 한 손엔 스마트폰을, 옆구리엔 리모컨을 끼고 있다. 보고 있으면 울화가 치밀어 관절염보다 화병이 생길 확률이 더 많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예전엔 안방을 차지하는 것이 우위였다면 지금은 거실을 사수하는 것이 전세에 유리하다.
 
커피숍에 가보면 나이 차가 분명해진다. 나는 커피숍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나, 벗지 않는가로 연령대를 판가름한다. 십중팔구 40대 이상은 신발을 반쯤 벗어 발등에 걸치거나 약간 뒤쪽으로 벗어 둔 신발 위에 발을 X자로 포개고 있다. 60대 이상은 더하다. 맨발을 의자에 얹어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차를 마시거나 아예 의자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 있기도 한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우리에게 신발을 벗고 방바닥에 앉던 습관이 남아 있어서인 것 같다. 어딘가에 앉았는데 신발을 신고 있으면 답답해서 뒤꿈치라도 해방시켜 발등에 걸쳐 놓거나 신발 위에 발을 얹고 나서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발로 숨을 쉬는 민족인가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어디서든 바른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다. 그들은 자랄 때 거실에 소파가 있고 주방에 식탁이 있어서 좌식이 아닌 입식으로 앉는 버릇이 일찍부터 들어서일 것이다.
 
노인들은 앉았다 일어날 때 벌떡 일어나지 못하고 무릎에 손을 대며 힘겹게 일어나며 앉을 때도 '아이고' 소리를 낸다. 주로 바닥에 앉아 생활하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가서 그렇다. 나이 들어 보니 알겠다. 조금 전 앉을 때 내게서도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우리 후손들은 그럴 걱정이 없겠다. 노년이 되어도 앉거나 일어설 때 선조들보다는 앓는 소리가 덜 나올 것 같다. 의자와 소파, 침대의 생활화로 관절이 혹사당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옛것이라고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아니다. 앉았다 일어서기를 7~80년 하다 보면 달그락 소리가 나는 우리 신체. 그런 신체는 아궁이에 잉걸불 피우고 지글지글 끓는 구들장에 등을 대고 지져야 몸이 풀어진다. 나도 이젠 뜨끈한 구들장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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