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노력과 의지로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성악가가 된 전영진 씨.  이현동 기자
끝없는 노력과 의지로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하고 성악가가 된 전영진 씨. 이현동 기자

 

 16살 질환 겪고 23살 시력 잃어
 피아노서 성악으로 전공 바꿔
 팝페라, 팝송 등 장르 넘나들어

"수 백번 연습하는 등 최선 다해
 장애인이 떳떳한 사회 됐으면"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의지와 열정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0월 열렸던 김해뮤직페스티벌 '연어'에서 무대를 꾸몄던 음악인 중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성악가 전영진(38) 씨다.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다소 경직돼 있어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그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지난 3일 <김해뉴스> 사무실에서 만난 전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무대에 오르면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 구분하기가 어렵고 마이크가 내 입과 가까운지 멀리 있는지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공연 관계자가 한 번 방향과 자세를 잡아주면 그 상태로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며 "그렇다보니 자세가 굳어있었던 것 같다"고 웃었다. 이런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는 'Nella Fantasia', '아침 이슬', '별 헤는 밤' 등 다섯 곡의 노래를 멋지게 부르며 김해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전 씨는 시각장애 1급이다. 앞을 거의 볼 수 없고, 흐릿한 형체를 알아보거나 밝고 어두운 정도만을 구별할 수 있는 상태다. 
 
그에게서 빛을 앗아간 것은 16살 때 찾아온 '망막색소변성증'이라는 질환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은 망막기능저하, 세포소실, 망막조직위축이 발생하는 질환이며 야맹증과 시야협착(시야가 점차 좁아지는 것)증상을 동반한다. 세계적으로 대략 4000명 중 1명에게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며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중학생이던 전 씨도 이 질환으로 인해 야맹증과 시야협착을 동시에 겪었다. 책을 읽다가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고 시야가 좁아지는 경험을 하는가 하면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잘 구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그는 결국 18살 때 망막색소변성증 판정을 받게 된다. 
 
그렇게 점차 시력을 잃어가던 전 씨는 23살 무렵에는 시력을 거의 완전히 잃었다. 
 
전 씨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이 들었고, 설상가상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시던 어머니에게 우울증까지 찾아왔다. 극단적인 선택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까지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사랑과 음악, 두 가지였다"고 말했다. 
 
전 씨의 전공분야는 원래 성악이 아니라 피아노였다. 그는 14살 때 처음 피아노를 시작했다. 이후 점점 시력을 잃어가던 20살 대학생 전 씨에게 당시 교수님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노래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했던 것이 성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창신대학교 음악학과(성악전공)를 졸업했고 동서대학교 선교복지대학원 선교음악학과를 성악전공으로 마쳤다. 
 
현재 프리랜서 성악가로 활발히 활동 중인 전 씨는 성악뿐만 아니라 팝페라, 팝송, 뮤지컬, 창작가곡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2016년에는 창원문화재단이 주최한 지역예술인공모사업에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선정돼 '전영진의 문화나눔콘서트'를 개최했으며 2019년 10월에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예술활동증명서'를 받았다. 이는 국가가 그를 정식 예술인으로 인정했다는 의미다. 
 
아무리 노래가 입과 목으로 하는 분야라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불리함이 음악활동을 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지는 않느냐는 질문에 전 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주어진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가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 수 십번, 수 백번씩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며 연습하고 그 곡을 잘 소화해내기 위해 배경지식도 공부한다. 그렇게 곡을 완성해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환호와 박수소리가 내게 돌아올 때면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간 성악가로 활동해오며 불렀던 노래 중 특별히 '시소타기'(노영심·1995년 발표)라는 노래가 애착이 간다고 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시력을 잃기 전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 씨는 "놀이터에서 어머니·남동생과 함께 놀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라며 "이 곡은 감정을 절제해서 부르는 게 중요한데, 부를 때마다 감정이 벅차올라 절제해서 부르기가 쉽지 않다. 연습하면서도 눈물을 많이 흘렸던 것 같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나온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해 장애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아직 부족하다"며 "장애인들이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회에 나올 수 있는, 편견과 차별이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이런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기 위해 꾸준히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다짐을 드러냈다.
 
김해뉴스 이현동 기자 hdlee@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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