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일 형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
정 일 형 경성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교수

'오징어 게임'에 이어 '지옥'이 주요 국가들의 넷플릭스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자 한국 문화 콘텐츠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에 확실한 변화가 시작됐다. 어떤 이들은 '지옥'이 '오징어 게임'의 후광효과 때문에 손쉽게 차트 1위에 오른 것이라 폄하했지만 이는 분명 잘못된 평가다. 우리나라 언론들은 드라마 '지옥'의 흥행 성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기사를 내놓고 있지 않다. 단지 차트 순위에 대한 정보나 오징어 게임 이후 달라진 국내 콘텐츠 시장에 대한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에 대한 짧은 평가만 내고 있다. 서구권에서의 평가를 옮겨 놓는 수준에 그칠 때도 많다.
 
영국의 유력매체 가디언은 지난달 '오징어 게임을 쉽게 넘은 지옥의 축제'라는 기사를 통해 "지옥이 오징어 게임보다 더 좋다"며 "10년 이상 회자될 만큼 진심으로 예외적인 드라마"라고 찬사를 보냈다. 미국 비평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선 평론가들이 드라마 '지옥'에 대한 신선도 지수가 100%를 기록했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넷플릭스와 애플TV가 한국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고 또 다른 매체 수드웨스트는 '지옥은 매우 훌륭한 놀라움'이라는 기사에서 "보여진 것보다 더 사회 비판적인 똑똑한 드라마"라고 호평했다. 콧대 높은 유럽권에서조차 K-컬쳐를 새롭게 평가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몇 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전에도 우리 콘텐츠에 대한 해외 매체들의 호의적 평가는 있어왔다. 하지만 당시 호평은 대중적이지 않았다. 일부 문화 소비 엘리트 계층을 중심으로 영화같은 특정 분야에 한해서 평가가 있었다. 그것도 '색다른 해석과 감독 특유의 시각'이라는 꼬리표를 달아놓곤 했다. 2003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나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같은 작품에 대한 평가가 그랬다.
 
그러나, 2021년 OTT를 통해 공개된 2편의 한국 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이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엘리트가 아닌 대중들이 평가의 중심에서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다. 

한국 소프트 파워의 위력은 산업 자본의 힘과 맞물리며 대중들에게 깊숙히 스며들고 있다. 어떤 평론가들은 지금의 낯선 상황을 '문화적 지각변동'이라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다. 그렇지 않고서는 글로벌 문화 콘텐츠 소비시장에 불과했던 한국이 거대 문화 플랫폼 시장에서 연이어 1위를 차지하는 오늘의 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 차트에서 첫 1위에 오를 때 영국의 BBC가 전 세계에 타전한 헤드라인을 잊지 않는다. BBC는 헤드라인에서 '한국의 문화침공…몇 년 간 몰아친 한국문화 쓰나미 최신판'이라며 표현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BBC 기사를 보며 김구 선생님의 '나의 소원' 중 한 부분이 묘하게 오버랩 된다는 것이었다. 선생께선 글을 통해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고 했다. 
 
선생께선 70여년 전 오늘을 미리 알고 계셨던 건 아닐까. 의미 없는 물음을 괜히 혼자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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