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
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

가족의 의미를 깊이 느끼게 해주는 영화가 있다.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라는 영화다. 
 
거칠고 무뚝뚝하며 대화에 서툰 주인공 거스는 딸이 6살 되던 해에 부인과 사별했다. 이후 딸을 1년간 남동생에게 맡겼고 13살 되던 해에는 기숙학교로 보냈다. 성인이 된 딸은 변호사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반면 노쇠한 거스는 신예 후배에게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
 
그의 상태를 알아차린 직장 동료는 변호사로 일하는 딸에게 거스의 일을 돕기 위한 출장에 동행해주길 청한다. 아버지와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 딸은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거부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출장에 동행한다. 
 
이 때부터 영화는 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가 출연한 '황금 연못'처럼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이라는 주제에 따라 전개된다.
 
딸은 아버지가 있는 동네 펍에서 당구 시합으로 남자를 눌러버리기도 하고, 자신이 운전하겠다는 아버지의 고집을 꺾어버리고 기어이 본인이 운전대를 잡기도 한다. "왜 이렇게 고집이 세냐?"는 아버지의 일갈에 딸은 "누굴 닮았나 보죠"라고 응수한다. 
 
아버지는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에 미국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성역할에 맞게 딸을 키우려 노력했지만 딸은 아버지의 말이 아닌, 아버지의 행동을 동일시하고 따라하며 성장한 것이다.
 
흔히 부모들은 자신의 결점이라 생각하는 행동을 아이가 닮지 않기를 바라면서 아이에게 바른 행동을 할 것을 지시하기만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실패하게 마련이다. 부모 스스로가 그러한 습관을 바꿈으로서 바람직한 동일시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왜 중요한 변호사 일을 제쳐 놓고 이런 데 와서 시간 낭비를 하는지 딸에게 나무라듯 말하고, 딸은 "저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적이 없었어요.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한 건 아빠에게 버림받지 않고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어요"라고 한다. 
 
또 아빠와 함께 야구를 보면서 싸구려 음식을 먹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도 한다. '함께 하는 시간'이 최고의 순간이며 버림받는 느낌은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영화에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많은 부모들이 날로 치열해져 가는 경쟁에 대한 두려움 때움에 아이와 한 공간에 살면서도 아이에게 '함께 하는 시간'을 선물하기보다는 과중한 학업 부담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고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으면 부모님의 사랑을 통째로 잃을지 모른다는 '버림받음의 공포'를 심어주기도 한다.
 
IMF 이후 직업 안정성이 크게 흔들린 결과 특정 직종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된 탓에 입시 경쟁이 격화된 나머지, 많은 부모가 그 해악을 알면서도 아이들을 무한 경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모든 것을 잊고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간'의 기억을 안전기지 삼아 아이들은 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런 경험을 자녀에게 얼마나 제공했는지 돌아보시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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