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가 여채원 씨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할 오디오북 녹음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현동 기자
시낭송가 여채원 씨가 시각장애인들에게 제공할 오디오북 녹음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이현동 기자

 

호흡·표정 등 신경 쓸 부분 많아
철저한 준비 없다면 감동 못 줘
글·시와 관련된 단체서 맹활약
시각장애인들과 감동 나누기도




"시를 읽는 것과 '낭송'하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단순히 눈으로 볼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죠. 그리고 그런 감정을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저 같은 '시낭송가'들이 할 일입니다."
 
누구나 학창시절 한 번쯤은 시를 소리내어 읽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시를 읽는 일은 사실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시낭송가 여채원(50) 씨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시낭송을 처음 접하고 배우게 됐는데, 그 역시 단순히 시를 읽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었다. 
 
여 씨는 "봉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주거문화를가꾸는사람들의모임' 박병국 회장님의 추천으로 시낭송을 배우기 시작했다. 2017년께 김해도서관에서 초급반 수업을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나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과정에 깜짝 놀랐다"며 "호흡이나 발음은 물론이고 음의 높낮이, 감정이입, 제스처, 표정 등 신경 쓸 부분이 정말 많다는 사실, 준비 없이 내뱉는 소리로는 듣는 사람에게 절대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보다 그는 시를 여러번 읽고 이해하면서 그 작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기 위해 그는 시를 읽는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후 출퇴근길이나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듣고 필사하며 시와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한다. 그렇게 실력이 쌓이고 '시낭송가'로서의 면모를 갖춰가면서 그는 활동반경을 점차 넓혀 왔다. 
 
현재 여 씨는 김해수필협회(회원), 가야문화예술진흥회(회원), 김해시낭송가협회(총무) 등 글·시와 관련된 다양한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한국대중음악인협회 김해지회(사무국장), 김해스포츠스태킹협회(부회장)에도 속해 지역의 체육·예술계 발전에 힘쓰고 있다. 
 
지난달에는 김해수필협회 회원으로서 협회2집 '우리의 도전'에 수필 작품을 냈고 가야문화예술진흥회 정기공연 '한글사랑 나라사랑'에서는 시낭송극을 펼쳤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김해 뮤직페스티벌 '연어'의 DIY콘서트 시즌5 진행을 맡았으며 전국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을 살던 그에게 있어 이제 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가 됐다. 힘들고 지칠 때면 젊을 때는 노래방도 가고, 친구와 수다도 떨며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이제는 저절로 시를 찾게 된다고 한다. 
 
여 씨는 좋은 시와 글을 읽음으로써 얻는 치유의 힘과 감동을 요즘에는 시각장애인과 나누는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눈으로 시를 읽을 수 없는 이들에게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시를 읽어주며 마음을 보듬는 일이다. 그가 이 일과 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동네사람들'이 주최한 '시의 향기' 수업에 참여했던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시각장애인분들을 직접 마주해 시를 읽어주는 프로그램은 처음이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참여에 오히려 내가 힘과 용기를 얻었다"며 "또 시각장애인 중 글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분들의 글에는 삶의 고난과 애환이 묻어난다.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여 씨는 김기환(83) 작가의 '6월의 장미'라는 시를 소개했다. 
 
'모두들 장미꽃이 예쁘다고 감탄사를 연발하지만 나는 장미꽃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상상의 나래로 장미꽃을 그려본다. 뜰에 핀 장미는 시들지만, 내 가슴에 핀 장미는 영원하다'
 
가장 좋아하는 시로 이 시를 꼽기도 한 그는 "일반인들은 너무 흔하고 당연하게 떠올리는 장미꽃의 이미지를 시각장애인은 알 수 없겠다는 생각 자체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보통 사람은 알 수 없는 감정"이라며 "내가 이분들에게 힘과 용기를 얻은 만큼 되돌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고 웃어보였다. 
 
그래서 여 씨는 요즘 시각장애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좋은 시와 글을 모아 녹음을 하고, 이를 CD에 엮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제작한 '마음으로 듣는 소리' 1집과 2집은 이미 김해시시각장애인주간보호센터에 전달돼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바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낭독봉사활동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과 함께 활동하다보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가짐도 많이 바뀌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단순히 시를 읽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해소될 수 있도록 여러 활동을 해내고 싶다"고 다짐을 밝혔다. 

김해뉴스 이현동 기자 hdlee@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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