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민 기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13)'은 오랫동안, 크고 작은 집단의 리더들에게 필수적으로 권해진 책들 가운데 하나였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여우의 간계와 사자의 용맹함을 지닌 군주', '더 큰 도덕을 위한 부도덕' 등의 수사같은 문장들이 훌륭한 리더의 표상을 만드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리라.
 
1469년, 가난한 공증인의 맏아들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 공화국에서 18년간 외교관으로 일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교황청과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 들이 30여 개의 크고 작은 도시국가로 갈려 패권을 다투던 혼돈의 시기였다. 이 혼란스러운 시국을 단번에 정리해 간 인물은 '체사레 보르자'였다. 18세에 추기경이 된 그는 교황군 사령관을 거쳐 로마냐 공국 군주에까지 올랐다. 로마냐 공국이 시민들의 반란으로 혼란에 빠졌을 때, 그는 심복을 보내 시민 반란군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사태가 진정된 뒤, 시민들이 반란군 진압 과정에서의 가혹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자, 그는 자신의 명령에 따라 반란군 진압에 앞장 선 그의 심복을 시민들 앞에서 무참하게 처형함으로써 시민들의 증오심을 두려움으로 바꾸어 버렸다.

또한 이를 계기로 반란 주동자들과의 화해를 도모한 자리에서 그 주동자들마저 모조리 살해함으로써 반란의 싹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기도 하였다. '국가 안정'이라는 목적을 위해 그 어떠한 수단도 마다하지 않은 이 체사레의 냉혹함이 훗날 마키아벨리의 모델이 되었다. "군주는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 혼란을 방치해 살인과 약탈이 넘치게 하는 지도자보다는 몇 명을 희생시켜 안정을 확보하는 지도자가 결과적으로 더 자비로울 수 있다." 체사레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평가였다. 군주론에 새겨진 그의 정치 철학대로라면 훌륭한 군주란, 오로지 백성의 안정과 평화만을 목적으로, 때로는 능숙한 사기꾼이 되거나 인간성을 포기하거나, 심지어 필요할 땐 사악해질 수도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18세기 무렵, 조선에서도 무릇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갖추어야 할 몸가짐을 세세히 밝힌 책이 출간되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1818)'가 바로 그것이다. 18년에 이르는 유배 생활을 통해 참된 정치는 어떠해야 하며, 그 근본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세세히 밝힌 책이다.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이 늘 가슴 속에 품고 다녔을 뿐만 아니라, 죽을 때는 머리맡에 놓아달라고 유언까지 남겼다는 '목민심서'.
 
정약용은 이 책에서 모든 관리들은 오로지 '백성을 잘 살게 하기 위해 힘써야 하며, 만일 백성이 못살게 된다면 나라나 정치는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즉, 관리들이 지켜야 할 윤리는, 충효과 같이 위로 향하는 윤리가 아니라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아래로의 윤리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백성을 다스리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으니 백성 보살피기를 아픈 사람 돌보듯 하라"라는 가르침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마키아벨리와 정약용의 궁극적 지향점은 다르지 않다. 백성의 평안함과 나라의 안정을 취하는 것이 위정자들이 힘써 할 일이다. 대선을 앞둔 지금, 특정 후보 교체에 대한 설화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맑은 정신과 또렷한 눈으로 진정 백성을 위할 이가 누구인지 세세히 살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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