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정 김해뉴스 독자위원/융심리상담센터 원장.
서윤정 김해뉴스 독자위원/융심리상담센터 원장.

사람이 있는 곳에 갈등이 있다는 말이 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어쩔 수 없이 갈등이 존재한다.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모와 자식이 사는 방식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부모들은 살아온 날의 경험으로 자식이 살아갈 날을 결정지으려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살아본 적 없는 부모의 과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절박함보다는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부모가 야속하게 생각된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에게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자식에게 존중받기를 강요할 순 없다. 존중은 일방향으로 결정되지 않고 상호 소통을 통해 생성되기 때문이다.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을 자식이 들어주길 바란다면, 반대로 자식의 생각이나 의견도 부모는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 부모인 우리 자신의 시계를 돌려 어린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당시 부모들 또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승전 공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필자가 어릴 적엔 서울대라도 합격하면 온 동네에 현수막이 나부끼고, 의사나 판검사가 되면 동네잔치를 벌어지기도 했다.
 
그 때의 아이들이 지금의 부모가 되었지만, 당시 부모들과 달라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의 성적과 성공이 내 계급인양 대리만족을 느끼며 은연중에 자식들에게 보상을 바라고 있다. 어른들의 사회는 주 40시간, 저녁이 있는 삶으로 바뀌고 있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직장인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학교와 학원에서 보내기 일쑤다.
 
공부를 해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다. 그러면 좋은 집에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그러니 공부를 해야 된다. 이게 다 너희들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이렇게 이어지는 귀납적 논리에 아이들은 고개를 돌리고 만다. 
 
많은 부모들이 내 자식의 친구를 궁금해 하기보다 내 친구의 자식들 성적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내 자식들의 꿈과 관심사보다 내 기대와 바람만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어렸을 적의 기억과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식들에게 부모 세대의 이루지 못한 바람을 강요한다면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의 꿈, 우리의 욕망, 우리의 기대가 현실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차이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스트레스도 커진다. 그런 스트레스는 내 마음에 갈등을 만들고, 마음의 갈등은 관계의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해결되지 않는 관계의 갈등은 극심한 상실감을 가져오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다. 그리고 환경도 바뀌었다. 당연히 생각과 관점도 따라서 변하고 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은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획일적인 교육에서 나오는 성적으로 아이들을 평가할 게 아니다. 아이들의 잠재력과 욕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충분히 사랑하고, 따뜻하게 소통하자.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을 존중하자. 그리고 지켜보자. 미래는 아이들 스스로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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