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우 인제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성공의 반대는 실패가 아니라 포기다'. 성공 체험담이나 동기 부여를 위한 강연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지만, 이런 격려의 말들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포기의 기류가 확산되어 가는 것 같다. 3포 세대가 5포 세대, n포 세대로까지 확장되고 있고 희망을 북돋아 주는 격려와 응원의 말이 희망 고문으로 폄하되기까지 한다. 희망의 격려의 말들이 과거와 달리 냉소적 반응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우리 국민들 중에 그만큼 신산한 삶 속에 있으면서 미래의 희망을 보기가 힘든 분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포기의 기류가 거세질수록, 우리는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각자 나름의 조건으로 인해 현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 저마다의 희망의 화분 하나씩은 가꾸어 나가야 한다.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의 상자에서 온갖 재앙과 고난이 다 빠져 나온 다음, 마지막으로 희망이 출현한 순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인간에게 끝없는 절망과 고난의 순간에도 희망을 떠올리며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미한다. 코로나19와 그로 인한 제약과 고난들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겠지만, 우리에게 닥친 현실과 난관을 직시하면서 희망을 가꾸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 뜬 낙관주의'이다. 눈 뜬 낙관주의란 막연히 잘 될 거라는 기대를 품은 채 기다리는 눈 감은 낙관주의와 달리,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응시한 채 희망을 잃지 않는 태도'이다.이런 태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이 베트남전과 8년간의 포로 생활을 이겨낸 스톡데일 장군의 일화에서 유래한 '스톡데일 패러독스'다.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된 스톡데일 장군은 포로 생활로부터 금방 풀려날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었다가 거듭된 좌절과 상실감 속에 포로 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동료들과는 달리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무언가에 대한 신념을 잃지 않고 버티는 태도'를 견지했기에 8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고도 무사히 석방됐다.
 
고난의 세월이 지속됨에도 용기를 잃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에리히 프롬이 '희망의 혁명'에서 말한 '능동성(activeness)'이다. 능동성은 활동성(activity)과는 다르다. 겉보기에 매우 활동적인 사람이 전혀 능동적이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활동들이 제약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제약과 제한이 능동성의 회복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그토록 목숨을 걸고 몰입했던 것들이 불필요한 충동에 내몰려서 이루어진 수동적인 활동이었음을 깨닫고 일상의 거품을 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했던 활동이나 관계가 너무도 절실하고 그립게 다가오면서 평범한 일상, 평범한 관계의 소중함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들과의 만남, 진정한 나와의 만남으로 가는 길로 인도해 줄 것이다. 코로나가 안겨 준 뜻밖의 선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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