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름 속에 있지만 난 아직도 추운 겨울 한복판에 있는 느낌이다. 이 스산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찬 공기에 갈피를 못 잡고 헤매고 있다.
어린 시절 들판에 나가 소 풀을 먹일 때, 소는 어디든 마음대로 가지만 사람인 나는 한낱 미물인 소만 바라보고 움직이지 못하는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소만 바라보며 소가 어디 가는지 눈앞에서 사라지면 나 역시 깜깜한 어둠 속으로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배가 부른 소는 이동하는 반경이 줄어든다. 그때쯤이면 석양이 붉은색으로 물든다.
"이랴 이랴"
고삐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때의 기분이란 참 좋았다.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도 아버지도 식구들 모두 한시름 놓고 된장찌개와 나물 반찬으로 사랑의 배를 채운다.
이제는 부모님도, 그때 같이 밥을 먹던 식구들도 다 각자의 가정을 꾸려 떠났다. 그렇지만 그 시절 추억은 오롯이 나에게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풀을 먹일 소도 없는데 고삐를 잡고 들판으로 나가야 할 것 같다. 자꾸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방황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깜짝 놀란 십 대 소녀에서 오십 대 중년이 된 아줌마를 발견하고 말이다.
아마도 그리운 것이리라. 푸른 초원과 된장찌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밥상이었던 그때가.
나이 오십이 넘어가며 흰머리 눈에 확실히 보인다. 아이들은 집에서 머무는 시간보다 자신들의 시간이 더 많아졌다. 큰 딸아이는 독립하여 나가고 둘째, 셋째 각자 머리를 싸매고 독립할 궁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고삐 놓아 풀을 마음대로 뜯어 먹던 소들처럼 언제가 나가고 사라지는 때가 올 것이다.
왔다가 사라지는 당연한 시간과 인연, 때로는 긴 이별까지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까지 오게 되었다. 아직 붉은 빛으로 물든 저녁노을까지는 안 되었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오늘은 여러 가지 나물 반찬을 준비하여 식구들을 기다려 봐야겠다. 구수한 된장찌개도 빠짐없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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