껑충 뛴 물가에 가격 물어보기도 겁나요
그래도 명절인데 준비 안할 순 없고…


28년차 알뜰주부 대동면 최은실 씨와 남편 김성대 씨의 명절 장보기
"장을 보는 건 주부에겐 즐거운 일이에요. 내 가족의 먹을거리를 챙기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껑충 뛰어오른 물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철렁해요. 요즘은 가격 물어보기가 겁날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비싸다 어떻다 말을 못합니다. 상인들 말이, 자신들도 높은 가격에 들여오기 때문에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거예요. 당장 안 먹어도 되는 건 가격이 쌀 때 구입하면 되지만, 양념 같은 필수품은 어쩔 방법이 있어야지요."
 

▲ 베테랑 주부 최은실 씨가 남편 김성대 씨와 함께 부원동 새벽시장에서 추석 맞이 장을 보고 있다.

최은실(52·대동면 조눌리) 씨는 28년차 주부이다. 스물 다섯에 결혼해 7년 동안은 직장엘 다녔고, 7년 동안은 시부모를 모셨다. 시부모와 함께 살 때 보다는 준비할 게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다. 친오빠 가족 등 올 추석에 찾아올 손님과 가족들을 위해 이달 초부터 이것저것 쟁여놓기 바쁘다.
 
추석은 아직 멀었지만 최 씨의 머릿속은 이미 음식 장만 문제로 분주했다.
 
'이름값 하는 생선은 너무 비싸니까 이번 추석 때는 수조기 찜으로 만족하자. 콩나물, 시금치, 무로 밑반찬을 만들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호박볶음도 해야지. 과일은 값이 오르기 전에 사두는 게 좋겠어. 미꾸라지를 좀 사다가 추어탕을 만들고, 묶은 김치를 씻어서 쌈을 싸먹으면 좋겠다….'
 
최 씨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지난 20일 부원동 새벽시장을 찾았다. 최 씨의 장보기에는 남편 김성대(56) 씨와 <김해뉴스>가 동행했다.
 
김 씨는 아내를 새벽시장에서 가장 가까운 큰길 가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익숙한 듯 자신은 차를 몰고 양파나 배추를 파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부부는 필요한 물품을 먼저 산 뒤 가장 나중에 무게가 많이 나가는 양파 한 포대를 살 요량이다.
 
집어들었다가 이내 덥썩 내려놓고
같은 값에 줄어든 양에 또 놀라고
헌데 명절은 명절이니 어쩌겠어요
사랑하는 가족과 즐겁게 보내야죠


추석명절은 멀었지만 이미 새벽시장에서는 제법 명절 분위기가 났다. 잘 익은 과일선물세트가 좌판의 한 자리를 지켰고, 나물, 생선, 밤, 대추 등도 선택을 기다렸다. 최 씨가 팔을 걷어붙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주부 본성 발동입니다.(웃음)" 최 씨의 '추석 장보기 작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최 씨는 가장 먼저 경전철 부원역 인근 노점상한테서 고사리 3천 원어치를 구입했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대목 때는 양을 적게 주거나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미리 사두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무 한 개(2천 원)와 콩나물(2천 원)도 샀다. 평소와 가격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이어서 미역국에 넣을 삼천포산 개조개 9마리를 샀다. 만원짜리 지폐 두 장이 소요됐다. 외형이 크고 내용이 듬직해 흡족하다. 마늘가게 앞에 선 최 씨는 1㎏짜리 마늘 한 봉지를 집어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가격이 비싼지 그대로 내려놓고 만다. 배는, 미리 사두었지만 좀 부족할 것 같아 가격을 물으니 5개에 1만 원이란다. 일주일 전보다 1개가 적다. 그래도 앞으로 더 오를 것 같아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최 씨의 이날 장보기는 양파 한 포대를 사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렵니다. 이번 추석 땐 튀김요리는 하지 않을 생각이예요. 평소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잖아요. 대신 육고기를 조금 준비할 건데, 그건 며칠 뒤에 사러 올 겁니다."
 
돌아보면 최 씨에게 추석은 늘 즐겁기만 한 명절은 아니었다. 친정어머니가 오랫동안 병을 앓아 가세가 많이 기울었고, 그만큼씩 추석다운 추석을 보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어릴 적에 튀김 해 먹는 다른 집이 너무 부러워 튀김해 달라 조르고, 옷 사달라 때를 쓰던 기억이 납니다. 한 번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심각하게 체하기도 했어요. 사경을 헤맸죠. 결혼 후 어느 추석 때는 모기만한 소리로 "어머니 친정에 잠시 다녀올게요"라고 했는데, 조금은 탐탁지 않아 하셨어요. 내심 상처가 되기도 했죠. 또 며느리이다 보니 모든 뒷처리를 도맡아 해야 했는데, 뭐냐, '명절증후군'도 겪었어요. 그래도 어쨌든 즐겁습니다. 추석이잖아요. 여기 손과 발이 되어주는 남편이 있고, 딸과 아들도 엄마 아빠가 고생하는 줄 아니 뭘 더 바라겠어요. 즐거운 추석명절 되세요."
 
김성대·최은실 부부의 낡은 봉고차는 새벽시장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멀어지는 차를 향해 오른손을 흔들었다. '최은실 씨! 가족과 함께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보름달 보면서 소원도 비시고요.' 

Tip >> 최 씨의 추석 장보기 비법
▶한 달 전부터 미리미리 준비한다.
▶대목에 몰아서 사면 가격이 오르거나 양이 줄어 낭패를 볼 수 있다.
▶시장마다의 특성을 파악하라.
▶어떤 시장은 어떤 것이 싸다는 걸 숙지하는 게 중요하다.
▶덤을 노려라. 재래시장을 공략하고, 덤을 요구할 땐 애교를 부려라.
▶남편과 함께 장을 봐라. 데이트 하는 기분이 들고, 물가가 올랐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게 해 살림하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 내라.
▶너무 오른 물품은 참았다가 가격이 쌀 때 구입하라.
▶명절이라고 해서 구색 갖추기에 몰입하면 지갑은 얇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 여자들 명절 때 고생한다더니 겪어보니 맞더군요 …
음식준비? 자신있어요!

한국생활 5년차 베트남 며느리 이경미(팜디엠푹) 씨의 추석 맞이
한가위를 앞두고 달이 점점 차오르고 있다. 주부들은 벌써부터 추석 상차림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의 아내·며느리가 된 이주여성들의 마음도 덩달아 분주해진다.
 
베트남 출신으로, 한국 생활 5년차인 이주여성 이경미(팜디엠푹·24) 씨. 이젠 모국어인 베트남어보다 한국어가 편하고, 전 부치는 솜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추석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이경미 씨는 자신보다 먼저 한국으로 시집 온 언니의 소개로 남편 이석수(49)씨를 만났다. 그때 나이는 19살. 비교적 어린 나이였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익혔고, 1년 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슬하에 아들 강민(4) 군을 두고 있다.
 
고향에선 추수감사절 '쭝투' 지내
잔치 분위기 비슷해도 처음엔 어색
기름냄새? 명절증후군? 다 알죠 이젠 어엿한 한국 주부인걸요


"한국에서 처음 추석명절을 맞았을 때요? 그다지 어색하진 않았어요. 베트남에서도 음력 8월 15일은 명절이거든요. 이 명절을 베트남에선 '쭝투'라고 하는데, 추수감사절이면서 어린이날이기도 하지요. 쭝투가 되면 각양각색의 연등이 호수나 강변을 밝힙니다. 그리고 축제가 열려요."
 
쭝투가 오면 베트남 사람들은 연등을 강에 떠내려 보내며 행운을 빌기도 하고, 사자탈을 머리에 쓴 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춤을 추기도 한다. 집 주인은 춤추는 이들에게 사례비나 먹을 것을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춤추는 이들은 집 앞을 떠나지 않는다.
 

▲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이경미 씨가 추석을 맞아 지난 21일 동상동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다.
"한국에선 추석때 가족들이 송편을 만들어 나눠 먹더군요. 베트남에서도 계란이나 돼지고기 속을 넣은 잉어나 국화 모양의 빵을 만들어 이웃들과 나눠 먹어요. 이 빵을 '빤 쭝투'라고 하는데, 좀 비싼 편이지만 추석 선물로 인기가 높아요."
 
베트남의 명절과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질적인 한국의 명절 문화. 이 씨는 결혼 후 처음 경험한 한국의 추석 풍경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한국에서 처음 추석을 맞았을 땐 '추석 준비'라는 게 있는 줄 몰랐어요. 추석을 앞두고 형님이랑 장을 보러갔는데, 음식 재료를 너무 많이 사서 깜짝 놀랐었어요. 모두 차례상에 올릴 거라는 형님의 말에 한번 더 놀랐지요. 베트남에서도 추수감사절때 차례를 지내긴 하지만 물, 술, 과일, 꽃만 올려놓고 간단하게 지내요. 별로 준비할 게 없죠. 첫 추석 때는 한복을 입었는데 너무 예뻤어요.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을 땐 너무 기분이 좋았지요. 올해는 안 입을 거예요. 이젠 새색시가 아니잖아요. (웃음)"
 
이번 추석때 이 씨는 집에서 직접 차례상을 장만할 생각이다. 결혼 전만 해도 요리 한번 해보질 않았던 이 씨이지만, 결혼 후에는 한국 음식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이젠 혼자 차례상을 차릴 수 있을 정도로 요리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하지만, 하루 종일 기름 냄새 맡을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이제 '명절증후군'이 두려운 평범한 한국 주부가 됐다.
 
"언니 말이, 한국에서는 명절이 되면 여자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더군요. 언니 말이 맞았어요. 추석 대목 장을 볼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복잡해지네요. 곧 남편과 함께 진영 5일장에 가서 장을 볼 생각이에요. 고사리와 도라지를 사야 하고, 탕국에 넣을 재료들도 사야 해요. 나물 무칠 줄 아느냐고요? 당연하죠! 남편은 제가 만든 나물 반찬이 제일 맛있다고 그래요. 아직 탕국 끓이는 실력은 조금 부족한데, 그래도 이번엔 지난 추석때보다는 맛있게 끓여볼 생각이에요."
 
이런 이 씨지만 추석때 고향과 친정 식구들이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휘영청 둥근 달이 뜨면 베트남에서 같은 달을 바라보고 있을 친부모가 하염없이 그리워진다. 차례상을 준비할 때면 친부모에게 음식을 맛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남편과 함께 1년에 한번 베트남에 다녀오긴 하지만, 인지상정,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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