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니 낼 모레면 추석인디요/ 반월과 구로동 나간 동생들 다 돌아올텐디요/
봉당 흙마루 걸터앉아 송편도 빚고 옛이야기 빚노라면/ 달빛은 하마
어무니 무릎 위에 수북수북 쌓일텐디요'.
시인 곽재구는 '우이도 편지'에서 추석을 기다리는 설렘과 정취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새삼, 어머니 무릎을 베개 삼았던 어릴 적 추석 풍경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 보름달과 한옥체험관 합성 이미지. 그래픽=김정은 kimjjung@gimhaenews.co.kr

태풍 '볼라밴'과 '산바'로 세상이 한바탕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낙동강 물이 넘쳐 흘러 어부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습니다. 가을걷이를 목전에 두었는데, 감들이 땅바닥에 나뒹굴었을 때는 눈물이 다 났습니다. 목 꺾인 풀죽은 벼들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태풍 탓에 하마터면 한가위를 거꾸로 쇨 뻔 했습니다.
 
해반천 끝자락에 걸린 김해평야는 황금색으로 염색을 한 양, 금빛 물결들이 바람에 출렁입니다. 조만강의 윤슬이 자꾸 눈을 시리게 합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른 걸 보니, 영락없이 '김해 촌놈'인가 봅니다.
 
바야흐로 추석입니다. 괜스레 실실 웃음이 납니다. 가락로 좌판 할머니들의 덤이 넉넉해졌습니다. 어물전 부부의 넉살은 '대형 마트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구김이 없습니다. 내외동 재래시장 과일가게 노총각의 너털웃음이 오늘따라 더 멋스럽습니다. 마을버스 운전기사의 어깨너머로 콧노래가 들립니다. 안동공단 근로자들의 호주머니가 제법 불룩합니다. 동네 이발사 아저씨의 손놀림이 바빠집니다. 바로 옆집 미장원에서는 온종일 재잘대는 소리가 가위질 소리에 섞여 나옵니다. 목욕탕 주인아저씨는 대목 손님 덕에 주름살이 펴졌습니다. 동네 꼬마들은 하릴없이 화약총을 허공에 쏘아댑니다. 아파트 숲 사이로 불꽃들이 날아오릅니다.
 
시인 김사빈은 "추석은 고향집 뒷마당 감나무에 매달린 보름달이며, 달밤에 넘어져 울던 일곱 살이자, 고향 생각나면 달려가던 뒷동산에 만나던 첫사랑"이라고 읊었습니다.
 
먹고 사느라 숨가빴던 날들을 잠시 잊고, 양껏 졸라맸던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어봅시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 형 누이의 손을 살며시 잡고, 한 시름을 잊어봅시다. 오랜만에 응석을 부린들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식구끼리 오순도순 모여 경제 얘기도 하고, 대통령 후보들을 안주 삼아 밤새 막걸릿잔을 기울여도 좋겠습니다. 대통령감으로 누가 좋은지 입씨름을 해도 상관이 없겠습니다.
 
바야흐로 추석입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기도 합니다.
 
이번 추석엔 날씨가 쾌청해 보름달을 연휴 내내 볼 수 있답니다. 문득, 백제 가요 '정읍사'의 첫 소절이 생각납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달님이시여 높이높이 돋으시어. 멀리멀리 비춰 주십시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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