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랑-역사의 하늘에 뜬 별' 출간

"김해가 낳은 참 군인, 김오랑 중령을 아십니까?"
 

▲ 고 김오랑 중령
'12·12사태'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던 제3공수여단 공수부대원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순직한 고 김오랑 중령을 재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김오랑-역사의 하늘에 뜬 별>(이원준·김준철 지음/책보세)이다.
 
'12·12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가 중심이 되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을 말한다. 당시 소령이었던 김오랑 중령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직을 맡고 있었다. 김오랑 소령은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이 휘하 공수부대원들을 동원, 정 특전사령관을 체포하려 하자 교전을 벌인 끝에 자정을 막 넘긴 13일 오전 0시 20분께 6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김오랑-역사의 하늘에 뜬 별>은 김오랑 중령의 삶과 군인으로서의 의기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김오랑 중령 추모회' 김준철 대표와 이원준 작가가 공동 집필했다.
 
김준철 대표는 <김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법원이 '12·12사태'를 명백한 '군사반란'으로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희생자인 김오랑 중령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신군부세력에 동조했거나 눈치를 본 군인들이 다수였던 상황에서 자신보다 국가의 안위를 먼저 생각한 김오랑 중령의 군인정신은 후배 군인들의 귀감이 될만 하다"고 주장했다.
 
김오랑 중령은 1944년 김해읍 삼정동 119에서 아버지 김종수, 어머니 임순이 씨의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삼성초등학교 시절에는 또래에 비해 체구가 작았지만 6년동안 줄곧 반장을 맡았다. 김 중령은 가정형편 탓에 시장에서 잔심부름을 하며 집안일을 돕느라 한해 늦게 김해중학교에 입학했다. 김 중령은 중학생 시절에도 통솔력이 뛰어났으며 학업성적이 우수했다. 김해농업고등학교로 진학한 뒤에는 몸을 단련하면서 남다른 정신력과 가치관을 지녀야 한다는 자각을 키웠다. 고 3때 박희양 담임교사의 권유로 육군사관학교 진학을 결심, 1965년에 제25기 육사 생도가 됐다.
 
그는 1969년 강원도 양구 육군 제2사단 32연대 수색중대에서 초급장교로 군인 생활을 시작했다. 1970년 7월에는 베트남에 파병됐으며, 이듬해 10월 귀국했다. 베트남에서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인연을 만든 부산의 여대생 백영옥 씨는 평생의 반려자가 됐다. 그후, 1979년 3월 특전사 행정장교로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을 맡았다.
 
김 중령은 1980년 2월 28일 서울 현충원에 안치됐으며, 1990년 1월 백영옥 씨의 노력에 힘입어 소령에서 중령으로 추서됐다.

2009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김정권 당시 국회의원의 대표발의로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건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으나 신군부측 인사 등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민주통합당 민홍철 국회의원이 관련 법안을 다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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