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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삶과 죽음의 경계를 관통하다(31) 금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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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2.11.27 09:48
  • 호수 100
  • 21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금음산과 낙원공원묘지. 김해추모의공원을 함께 끼고 있는 금음산을 산행하는 것은 삶과 죽음이 결국 한자리라는 것을 깨닫는 여행이다.
겨울 초입, 모든 생명들이 다음 생을 위해 잠자리에 드는 시간. 종교의 윤회를 믿지 않더라도, 자연은 각 계절에게 '삶의 목적'을 부여하고, 그 삶을 기록하게 하고, 그 삶에서 다시 물러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쳤다. 그들 '생의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거든, 미련 없이 자신을 털어버리는 것이 우주의 진리이겠다. 겨울로 들며 모든 생명들은 제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이승의 삶을 던지고, 다음 생을 기약하는 것이다. 비단 겨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도 대자연의 생성과 소멸 속에 자유로울 수는 없음이다.
이번 산행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관통하는 산, 금음산을 오른다. 김해추모의공원과 낙원공원묘지를 품고 있는 금음산 산행은, 우리 인간의 삶과 죽음이 궁극에는 결국 '한자리'라는 것을 깨치는 시간이다.

김해 진례면 추모의공원을 들머리로 하여 삼각점 봉우리~금음산 정상~신천마을 이정표 갈림길~낙원공원묘지를 거쳐 덕암마을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산세가 포근하고 그리 높지도 않아, 사색하듯 걸으며 망자(亡者)들과도 교감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김해추모의공원에 선다. 수백 수천 기의 유택(幽宅)들이 즐비하다. 고만고만한 봉분들이 문패를 달 듯 비석을 세우고 따뜻한 햇볕을 받고 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죽은 자들의 집, 무덤들뿐이다. 이승의 가족들이 죽음의 저쪽에 선 가족과 마주하고 있다. 언제나 그들은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손잡을 수 없는 멀고 먼 거리에 놓여 있는 것이다.
 
북망(北邙). 그래, 이곳이 북망이로구나. 죽어서 가는 곳, 죽어야만 가는 곳. 그리하여 다시 태어나는 곳, 태어나 새로이 시작하는 곳.
 
'北邙은 홀가분한 길/그 길 따라 가면/출렁출렁 홍시 같은 등불/불 밝히고/귀 씻어 내린 계곡물 소리도/유장하다/살아있음을 장엄하게 하는 길/北邙은/모든 것 훌훌 털어버린 이의/명징한 비움/홀연한 보폭이 거침없는 곳/하여 영혼의 종소리 뎅뎅 울리고/겨울 참나무, 줄지어 함께 떠나는 곳/그래서 北邙은/산 자만이 가는 길/다시 살기 위해 가는 길' (졸시 '北邙.' 전문)
 
추모의 공원 시멘트길 따라 상단부에 오르면 산길 입구가 나오고, 길옆으로 오래된 팽나무 한 그루, 망자의 집을 내려다보며 지키고 섰다. 모든 잎 다 털어버린 앙상한 가지의 나무는, 이미 다 버렸기에 미련조차 없어 보인다. 편히 누운 망자들의 속내도 그러할까 궁금해진다.
 

   
▲ 김해추모의공원과 금음산 능선. 망자들의 세계와 산 자들의 세계를 나누는 경계처럼 느껴진다.
유택들을 감싸고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산길을 오른다. '자박자박' 낙엽 밟는 소리가 참 듣기가 좋다. 푹신하게 낙엽을 밟을 때마다 구수한 낙엽냄새가 난다. 참나무 낙엽을 밟는 적요한 시간. 새들의 울음조차 없는 망자들의 안식처 위를, 산자가 홀로이 산길을 내는 것이다.
 
다양하게 가지를 뻗은 참나무들이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通天門)을 만들기도 하고, 나그네 잠시 쉬어가라고 두 팔 벌려 의자도 만들어준다. 어느 나무는 검은 가지를 제멋대로 뻗어 괴기스럽기도 하고, 신령스럽기도 하다. 과연 나무마저도 망자의 산, 금음산 나무들이다.
 
잠시의 오르막을 오르니, 금음부락 갈림길 이정표가 있는 삼각점 봉우리(365.3m)에 올라선다. 옹골차게 자란 참나무에 '낙남정맥 365.3m' 팻말이 걸려 있고, 가지 끝에는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계속 낙엽 길을 걸으며 산을 오르내린다. 빈가지에 바람 듣는 소리와 바람에 낙엽 구르는 소리가 서로 어우러진다. 산 자와 죽은 자가 휘파람 같은 바람소리에 서로 교감하며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 금음산 정상석. 쇠금산으로 표기돼 있다.
이렇게 적요로운 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어느새 금음산 정상(376.1m)이다. 정상석에는 '쇠금산 350.8m'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석 뒤로는 한림면이 조망되는데, 한림벌과 그 중간에 봉긋 솟은 봉화산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생림면 쪽으로 무척산 능선과 여덟말 고갯길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멀리 햇빛 받은 낙동강도 윤슬에 반짝이고 있다.
 
잠시 산 아래를 일별하고 산을 내린다. 체육시설이 나오고, 걷기 좋은 길과 능선길이 교차하면서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다시 작은 봉우리 하나 오르니, 참나무 한 그루 혼자 서서 외롭다. 낮은 몇 봉우리 오르내리던 능선 길은 마지막 봉우리에서 깊은 내리막길을 탄다.
 
깊이 내리고 선 곳이 신천마을 갈림길 이정표. 낙원묘지 0.9㎞ 지점이다. 또 다른 죽은 자들의 집으로 길을 향한다. 서서히 오르막. 계속 오르니 시야가 트이며, 곧이어 낙원공원묘지 상단부에 서게 된다.
 
발 아래로 망자들의 유택이 일렬로 누워 있고, 멀리 굴암산, 화산, 불모산, 용지봉, 대암산 등으로 흐르는 낙남정맥의 마루금이 뚜렷하다. 묘지 너머로는 덕암산업공단과 쌍둥이봉 같은 소황새봉과 주주봉, 그리고 정산 골프장이 조망된다.
 
묘지 상단부에서 아래 계단으로 길을 내린다. 유택의 길은 여러 갈래로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다. 은행잎들이 길 위를 노랗게 물들이며 뒹굴어 다닌다. 그 옆으로 지폐 몇 장 함께 뒹굴어 다닌다.
 
   
▲ 쑥부쟁이와 저승 노잣돈. '명국사용'이라 돼 있다.
자세히 보니 1천 달러 지폐로 명미은행(冥美銀行)에서 발행되었는데, 명국사용(冥國使用)이라 인쇄되어 있다. 뒷면에는 기차가 그려져 있다. 명국(冥國)은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가서 사는 세계를 일컫는다. 그러니까 이 지폐는 망자가 염라국으로 가기 위한 교통비, 즉 '저승 노잣돈'이라는 뜻이다. 산 자들에게는 가을낙엽보다도 더 허무한 지폐이리라. 문득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읊조린 어느 시인의 시구가 생각이 난다.
 
그렇게 겨울 초입의 묘지를 걷는다. 망자의 유택 앞에는 울긋불긋 색색의 조화(造花)가 놓여 있다. 이 꽃들이 모여 이곳은 아름답고 화려한 정원이 된다. 그러나 정작 생명의 끈이 닿지 않는 곳의 꽃. 때문에 유택 앞의 조화는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매개체이다. 극치의 아름다움이지만 생명이 없는, 그래서 삶과 죽음조차 초월한 대상으로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 낙원공원묘지 무덤 사이에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
조금 더 내려오니 무덤 뒤로 소나무 두 그루 서 있다. 서로 비슷하게 생긴 소나무가 마주보고 있는데, 마치 이승과 저승의 표식처럼 두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두 세계를 왕래하듯 이 소나무와 저 소나무를 거닐어 본다. 그들 세계와의 '소통의 물길'을 교류하듯 묘한 감흥이 일어난다.
 
계단 길을 내린다. 망자들의 안식처에서 명부전(冥府殿) 계단을 내려오듯, 산 자들은 이승의 마을로 한 발짝 한 발짝 길을 내린다. 해가 이운다. 이제 그들을 쉬게 하고 산 자들의 길을 깊이깊이 내려야 할 시간이다. 떨어진 낙엽들은 죽은 자들의 유언. 그 많은 말씀들이 부질없이 뒹굴고, 그 위로 산 자들은 그 말씀의 소리 귀 기울이며 천천히 이승으로 내리는 것이다. 오늘이 지면 다시 내일이 우담바라처럼 환하게 벙글 터이니….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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