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제경,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IOC 선수위원), 독일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이승형(미국태권도연합 회장), 스페인 세계선수권 금메달리스트 강창모, 카타르 태권도 대표팀 감독 지재기, 쿠웨이트 태권도 대표팀 감독 최종국, 상무 태권도부 감독 강동국….

한국 태권도계에서 이름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 면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동아대학교 태권도부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럼 동아대 태권도부가 왜 이렇게 강할까? 바로 이 대학 태권도학과 김우규(64) 교수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게 체육계의 일치된 견해이다. 김 교수는 지금은 학문을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고 있지만, 몇년 전까지 20년 이상 태권도부 감독을 맡아 동아대 태권도부를 반석 위에 올려 놓은 장본인이다.

김 교수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인터뷰 '깜'이 되느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정작 그를 아는 사람들은 대단한 '내공'을 가진 진정한 태권도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태권도인으로서는 달인의 경지라 할 만한 태권도 9단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의 제자들은 "선생님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정말 인간적인 면에서 존경할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는 지난 2004년 스포츠과학대학 내에 태권도학과가 신설되면서 감독에서 교수로 변신, 제2의 태권도 인생을 살고 있다.

전화로 그와 인터뷰했다.
 

- 수가 된 이후 생활이 많이 달라졌죠. 어떻게 지냅니까.
 
▶ 후진을 양성한다는 측면에선 별로 달라진 건 없습니다. 감독 때는 기술을 주로 가르쳤다면 지금은 학문을 가르치는 게 차이점이죠. 최근 대학원 박사 과정에 국내 처음으로 태권도학과를 설치하는 데 성공해 국내·외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태권도 종주국으로서 세계 최고의 연구 중심대학이 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어요. 정년까지 1년 정도밖에 안 남았지만, 대학 스포츠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정진할 계획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잘 훈련된 인력을 지역사회와 해외에 배출하여 한국 태권도와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설 생각입니다. 태권도는 뭐니뭐니 해도 금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 문화상품이 아니겠어요!
 
-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훌륭한 제자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특별한 지도철학이 있습니까.
 
▶ 평소에 학습(트레이닝)의 과정을 결과 이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학습의 과정에서 형임(形臨)과 의임(意臨), 배임(背臨)의 흐름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는 형임, 즉 형식을 모방하는 겁니다. 지도자의 지시대로 생각하고 읽으라는 책을 읽고, 본을 뜨는 거죠. 훈련을 어느정도 하면 의임, 즉 뜻을 모방하게 합니다. 이 사람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시대적·역사적·공간적 배경이 뭐길래 이런 글을 썼을까를 생각하도록 하는 겁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가 형임 과정이라면 석·박사는 의임 과정입니다.
 
그 다음이 배임, 즉 지금까지 읽은 것과 모방한 것을 완전히 등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창조는 배임의 단계에서 이뤄지는 거니까요. 배임은 스스로 도달해야 하는 경지이며 이를 위해서는 충실한 형임과 의임 과정을 거쳐야 하지요. 스포츠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절제, 트레이닝이 필요한 영역인 만큼 이러한 학습의 과정을 통해 스스로 일어서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평소의 언행이나 복장, 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스포츠맨십을 키우고 실천하도록 끊임없이 권유하고 있습니다.
 
- 태권도인으로서 느끼는 보람이 있습니까.
 
▶ 흔히 스포츠는 예에서 시작하여 예에서 끝난다(禮始禮終)고들 하지 않습니까. 저는 선수들에게 이 점을 특히 강조합니다. 제 제자 중에 인간적인 면에서 일탈행위를 하거나 조직에서 갈등을 겪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물론 문대성 같은 세계적 선수를 육성한 것도 큰 보람입니다만, 저는 메달리스트보다 이렇게 인간적으로 성숙한 선수들을 육성했다는 데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제 스스로 게으런 삶을 살았다면 제자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없었을 겁니다. 태권도는 어떻게 보면 매우 개인적인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축구나 당구 등 단체운동을 함께 하면서 제자들에게 팀웍과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려 애썼습니다.
 
-  김해에 얽힌 추억이 있습니까?

▶ 고향이란 항상 마음 속 그리움과 따뜻함을 선사하는 원천이 아니겠습니까. 최근 김해는 인구 50만 명의 대도시로 발전하고 있지만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 산천이 생생하게 그려지지요. 김해평야의 농수로를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던 가물치 가족들의 모습도 생각나고, 고향 친구들은 늘 그립지요. 어느 시인의 시 구절처럼 '나를 키운 8할은 김해평야의 바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삶의 좌우명이나 철학이 있습니까.
 
▶ 영국 속담 'Better late than never'(아예 안 오는 것보다 늦게라도 오는 게 낫다는 뜻)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어떤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여 빨리 포기하는 것보다는 다소 시일이 걸리더라도 하나씩 하나씩 풀어 나아가는 것이 긴 인생에 있어서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정년이 1년밖에 남지 않아 아쉽다"면서 "많은 제자들이 해외에 나가 도장을 운영하거나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아 일하고 있는 만큼 본교 졸업생과 이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며 전화를 끊었다.


김우규 교수는 ─────
1947년 김해시 동상동에서 태어나 동광초등학교, 김해중학교, 부산공고, 동아대학교 졸업 후 동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으며 1969, 70년 해병대 소속으로 출전, 대통령기 대회에서 우승했다. 1983년~2005년까지 동아대 태권도부 감독을 지내며 무수한 스타들을 육성했다. 2004년 3월 스포츠과학대학 내 태권도학과가 신설되면서 교수로 변신했다. 2004년 태권도 9단을 땄다. 체육훈장 백마장, 체육포장을 수상했으며 '태권도 입문' '태권도 품새의 이해' '운동 치료 처방론'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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