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생림면 봉림/ 지금 사는 집 지붕 밑에서 평생을 살고/ 십리길 학교 가는 것이 무서워 밥도 못 먹었지/ 우리 영감님 먼저 보내고 외롭고 쓸쓸 했어/ 뭘 하면서 인생을 보낼 꼬/ 고마우신 성원학교 선생님들/ 70년 만에 연필 잡아 까막눈 깨치고/ 처음 쓰는 글에 얄궂게 생각은 안 나도/ 마당 장독대 옆 화단 꽃을 보며 썼지/ '얘들아 나 학교 갔다 온다 너그들 보면 나는 외롭지 않다'/ 세월 가니 가슴속에 담고 있는 이야기/ 이렇게 글로 쓰고 하는 날이 오니/ 내 다리로 걸어 다니는 동안 내 할 일 다 하고서/ 그거 하나면 소원이 없지 후회 안 할 내 인생 일기 한편"
<권복련 할머니가 2006년 지은 시 '무제'>
 
일제강점기 때 국민학교 다닌 탓에
한글 배우지 못한 채 70평생 살아오다
김해여성복지회관 성원학교에서 공부
예쁜 글씨로 일기 쓰고 시도 적어
입원치료 받으면서도 '80대 모범생'

정말이지,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칠십 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권복련(84) 할머니는 2004년 김해여성복지회관(관장 장정임) 부설 성원학교에서 한글을 깨우쳤다. 지금은 중학교 과정을 배우고 있다. 그러면서 권 할머니는 예쁜 글씨로 일기를 쓰고, 컴퓨터를 이용해 시를 적고 있다. 그동안 '말'로만 털어놓았던 가슴 속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권 할머니는 요즘 부원동의 모 병원에 입원 중이다. 3주 전 성원학교에 가다가 시내버스에서 발을 헛디뎌 허벅지를 다쳤기 때문이다. 부산의 큰 병원에 입원하라는 자식들의 권유를 마다하고 권 할머니는 김해여성복지회관과 가까운 병원에 입원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 김해여성복지회관 3층에 있는 성원학교에 가기 위해 고집을 부린 것이다. 권 할머니의 집은 생림면 봉림리이다.
 
권 할머니는 실제로 입원해 있으면서도 병원 측에 외출증을 내 빠짐없이 학교에 출석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권 할머니는 성원학교의 '최고령 모범생'이다.
 
"농사지으며 사느라 글을 모르고 살았지. 영감이 글을 읽을 줄 아니까 내가 까막눈이어도 불편한 게 없었어. 내가 69세 되던 해에 나보다 6세 많던 영감이 세상을 먼저 떠났어. 영감이 이른 아침이면 자전거로 밭까지 태워다 주고 어둑어둑해지면 데리러오고 그랬는데, 영감이 없으니까 적적하고 글을 모르니까 답답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더군. 할 일도 없고 영감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글을 배우기 시작했지."
 
권 할머니는 1946년에 생림국민학교(현 생림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당시 할머니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일본말과 글 그리고 일본 동요였다. "우리 집에 딸이 다섯이었는데, 아버지가 나만 학교에 보내주더군. 농사지어 먹고 살기 바쁜 시절이었으니까 보통 딸들은 학교에 안보냈지. 일제강점기만 없었으면 한글을 배웠겠지. 그 당시 학교에 여학생이 4명 있었는데, 한 명은 양반집 딸이었고, 또 한 명은 면장 딸이었어."
 
어린 시절이 문득 생각났는지 권 할머니가 '졸업식 노래'(윤석중 작사·정순철 작곡)를 부르기 시작했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 합니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국민학교 졸업할 무렵 해방이 됐는데, 졸업식을 앞두고 선생님이 가르쳐주셨지. 학교에서는 처음 배운 한국 동요였어. 졸업식 날 여자아이들과 울면서 이 노래를 불렀던 게 기억이 나. 한글은 못 익혔지만, 이 노래는 지금도 3절까지 다 부를 수 있어."
 
▲ 권복련 할머니의 일기장. 손 때 묻은 일기장에 꾹꾹 눌러쓴 글씨가 정겹다.
권 할머니의 병원 침상 머리맡에는 항상 손때 묻은 공책과 필통이 놓여 있다. 일기장을 구경시켜 달라고 부탁했더니, 부끄러운 듯 잠시 주저주저하더니 이내 일기장을 반듯하게 펼쳐보였다. 또박또박 정성들여 쓴 글씨들이 정겨웠다.
 
"오늘 기자 양반이 왔다갔다고 일기를 써야겠구먼. 한 살 더 먹어서 그런지 요즘엔 연필 잡은 손이 떨려서 글씨가 삐뚤삐뚤해. 그래도 한참 써놓고 읽어보면 재미가 있어. 몇 년 전에 내가 쓴 시가 성원학교 문집에 실렸을 때는 어찌나 신기하던지…. 성원학교 박명수(성원학교 교장), 윤영애(김해여성복지회관 이사)선생님이 없었으면 평생 까막눈으로 살았을 게야. 고마운 분들이지. 그분들께 감사한다는 말을 꼭 넣어주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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