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는 언제나 배울 거리, 놀 거리가 넘친다. 자연은 거기 있기만 해도 좋은데, 갈 때마다 새로운 걸 보여준다. 가슴이 뛰는 까닭이다. 설레는 까닭이다. 그런 자연의 품에서 놀다 오면 몸과 맘에 숲이 채워진다. 생명이 채워진다.
-'숲에서 놀다(지은이 이영득/ 황소걸음 펴냄)' 서문 중에서.
 
4월, 어느새 봄이 왔다. 김해시 장유면 대청리 장유사로 향하는 숲 길 양쪽에는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뭇잎과 알록달록 예쁜 꽃이 가득하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에도 저마다 이름이 있는데 제대로 알지도 못 하고 그저 보고만 지나치려니 미안하기 짝이 없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저 꽃 이름을 누가 알려줬으면….
 

▲ '풀꽃지기' 이영득 씨가 장유폭포 인근 숲에서 야생화를 촬영하고 있다.

온라인카페 '풀과 나무 친구들' 운영 후
10년 넘게 풀꽃 찾아다니면 사진 기록
동화작가로 책 펴내며 식물도감도 10권
생태교육자는 애착 많은 또다른 직업

동화작가 이영득(47·여·장유면) 씨는 자신을 '풀꽃지기'라 부른다. 지기는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1999년부터 온라인카페 '풀과 나무 친구들(cafe.daum.net/flowerville)'을 운영하면서 매주 한 차례씩 카페회원들과 산과 들로 풀꽃을 찾아다니고 있다. 장유사 인근 숲에서 풀꽃을 찾고 있던 그를 만났다.
 
"마음이 허전하면 숲으로 가고, 기분이 울적해도 숲으로 가요. 심지어 몸살이 나면 몸이 살려고 몸살이 났다 해서 숲으로 가죠. 살아갈 힘을 일주일에 한 번 자연에서 받아 오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도 부족하다 느낄 때면 언제든지 숲으로 다시 달려가곤 하죠."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아이들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사명이죠"


10년 넘게 풀꽃을 찾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도감을 찾아보면서 그는 평범한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풀꽃의 이름과 특징을 깨우쳤다. 생태교육자는 그의 또 다른 직업이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노란 꽃이 가득하네요. 저 나무는 생강나무예요. 왜 이름이 생강나무일까요?" 이 씨가 먹어보라며 생강나무 잎 하나를 따서 건넨다. 입에 넣고 씹어보았더니 생강 향이 입속에 가득 퍼진다. "꽃에서도 생강 맛이 나지요, 이 꽃을 따다 말린 뒤 차를 우려내도 된답니다."
 
작은 바위 틈새에서 새끼손톱보다 작은 풀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씨가 몸을 낮춰 꽃과 눈높이를 맞추더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해가 지면 꽃잎을 접어요. 시시각각 꽃이 피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지금 사진을 찍어 놓아야 해요."
 
그가 찍은 숲속 식물과 새, 곤충사진은 그가 만드는 책에 실린다. 2001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작가로 등단한 그는 '풀꽃 친구야 안녕(2004년/황소걸음 펴냄)' 등 동화와 식물도감 10권을 펴냈다. 가장 근래에 그가 출간한 책은 '숲에서 놀다(2010년/황소걸음 펴냄)'. 계절별로 볼 수 있는 동식물에 대한 소개와 함께 그의 단상이 담겨 있다.
 
▲ 이영득 씨가 생강 향이 진하게 나는 생강나무 잎을 보여주고 있다.
해가 뉘엿뉘엿 지자 비로소 그는 걸음을 멈추고 바위 위에 앉아 말을 잇기 시작했다. "제가 태어난 곳은 경북 울진군의 산골이었어요. 중학교 때 부산으로 이사를 왔는데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면서 매연냄새 때문에 고역을 치렀죠. 하루는 속이 메스꺼워 운동장에 앉아 있으려니 괭이밥이 보이지 뭡니까. 잎을 몇 장 뜯어 먹었죠. 시골에서 먹은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그러고 나니 속이 조금 편안해지는 거예요."
 
딸이 통학을 힘들어하는 것을 눈치 챈 아버지는 걸어서 학교를 오갈 수 있는 산길을 가르쳐줬다. 그는 산길에서 풀꽃과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아버지가 일러주신 길이 처음에는 낯설었죠. 어떤 때는 고향이 그리워 길바닥에 앉아 펑펑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앉은 자리에 양지꽃이 예쁘게 피어 있더군요. 어릴 때 시골에서 보던 그런 꽃이 주변에 널려 있는 거예요. 그때부터는 편안한 마음으로 통학을 했답니다."
 
그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뒤, 아이들이 자연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제대로 답을 주지 못하는 것을 뉘우치며 풀꽃과 자연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고 말했다. "숲 속을 거닐다보면 발아래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땅속에서는 싹이 올라오고 곤충들은 거기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어요. 무심코 내려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 모든 일이 기적 같지 않나요? 아이들에게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제가 할 일입니다. 동화작가와 생태교육가라는 직업은 평범한 주부였던 제게 숲이 준 선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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