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처음 마당 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 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 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 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밭 울타리/ 탱자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한 번도/ 꽃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
<안도현의 시 '순서' 전문>


▲ 신록이 푸르른 숲을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면 온산이 불타듯 진달래 군락이 붉은 구름을 이루고 있다.
봄은 김해 들판에서부터 슬며시 오더니, 이제는 산 밑 마을 어귀까지 다복다복 찾아와 따뜻한 햇볕을 맞고 있다. 아무래도 봄은 화사한 꽃으로 현신하여 찾아오는가 보다. 장유면 장유마을에도 예외없이 알록달록 지천으로 꽃들이 피어 자지러진다. 마을 어귀의 매화꽃이 지면서 개울가의 벚꽃, 개나리가 절정이다. 마을 집집마다 사과나무, 복사꽃이 흐드러지고, 밭둑에는 개불알풀, 애기똥풀, 냉이꽃들이 앙증맞게 작은 손들을 흔들어대고 있다. 그야말로 누가 먼저인지 순서도 모를 정도로, 서로 앞다투어 꽃들은 펑펑, 팡팡 피어난다.
 
이번 산행은 여인의 넓은 치마폭처럼 산줄기가 두루 펼쳐져 있는 옥녀봉을 오른다. 능선길과 옥녀봉 정상부의 전망이 시원하게 터지면서 연두색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산행이다. 특히 산행 내내 진달래꽃길이어서, 꽃구름 속을 걷듯 진달래와 함께 하는 '진달래 산행'이 될 것이다.
 
장유마을 회관에 차를 세운다. 온 마을이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에도 연둣빛 이파리들이 초롱초롱 매달려 싱그럽다. 할아버지 댁에 놀러 왔는지 집집마다 울려 퍼지는 꼬마들 웃음소리가 해맑기만 하다.
 
마을을 통과하는 개울을 따라 길을 거슬러 오른다. 개울물은 봄바람에 신나게 돌돌거리며 흐르고, 개울 위 동백나무에서는 붉은 동백꽃 하나씩 뚝뚝 떨어지고 있다. 그 비장한 낙화에도 아랑곳없이, 물길은 떨어진 동백꽃을 물에 띄워 간질이고 희롱하며 춘흥에 겹다.
 
마을을 지나자 멀리 옥녀봉이 보이고, 그 아래로 장유터널 연결도로 공사현장이 보인다. 연결도로 밑 터널을 통과하여 오른쪽 대나무 숲을 끼고 계속 길을 오르면, 산쪽으로 친 철조망이 나오고 철조망 터진 곳에 산행 들머리가 있다.
 
숲은 이미 신록이 시작되어 푸르고 밝게 빛나고 있다. 산책로 따라 햇살 한줌 비집고 들어와 길을 비춰준다. 곳곳에서 진달래꽃들이 분홍꽃잎 살랑대며 봄 마중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한적한 마음으로 산길을 즐기며 설렁설렁 길을 오른다.
 
편안한 길을 따라 산초향이 그윽하다. 길섶으로 온통 산초나무 밭이다. 산초 어린 잎들이 가지마다 송알송알 맺혀 싹을 틔우고 있다. 한 잎 떼어 입에 넣으니 싱그러운 향과 함께 아릿함이 혀끝에 오래도록 남는다.
 
수풀바람에 오리나무 꽃들이 후드득 떨어진다. 도랑으로 떨어진 꽃잎들이 연두색 배추잎벌레처럼 꿈틀거린다. 그 위를 파란나비 한 쌍, 서로 희롱하듯 너울너울~ 현란한 춤사위로 날아오르고 있다.
 
길게 이어지던 오솔길이 끝나고, 부부 유택에서부터 급경사를 탄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때죽나무 군락의 이파리가 파랗다. 연둣빛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파랗게 빛이 난다. 그 등불 사이로 시야가 잠시 트인다.
 
진달래꽃밭 사이로 장유벌이 보이고 신도시 아파트도 열을 지어 앉아 있다. 산을 오를수록 진달래꽃밭은 더욱 짙어져 온통 붉은 구름 속에 갇힌 느낌이다. 온산이 진달래로 만발한 것이다. 길 위로 진달래꽃들이 뒹군다. 그 붉은 꽃들을 '즈려밟으며' 산을 계속 오른다.
 
길은 오래도록 오름세를 탄다. 옻나무 군락에서 옻 이파리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옻나무 군락 아래로는 진달래꽃들이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다. 돌무지를 지나 때죽나무 부드러운 목피를 잡고 산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옥녀봉 능선길과 만난다.
 
능선 길섶에는 '금병산 생태숲길' 팻말이 설치되어 있다. 옥녀봉 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향한다. 잘 자란 소나무 숲과 진달래꽃길이 사람 마음을 느긋하게 한다. 돌무지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급박한 오름세의 비탈을 한동안 오르니 봉우리가 하나 나온다.
 
주위로는 온통 '진달래 바다'다. 가쁜 숨을 가라앉히며 진달래꽃 한 잎 입에 넣어 씹어본다. 향긋한 꽃내음과 함께 달콤함이 가득 풍겨온다. 화사한 향기가 내내 그윽하게 감도는 것이다. 잠시 길을 내리는가 싶더니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비탈을 급하게 오르자 다시 또 한 봉우리. 다시 경사를 거푸 탄다. 주위로는 참나무와 진달래뿐이다. 전망이 열리며 골바람 속에 태정산 능선이 눈앞에 크게 펼쳐진다. 능선이 소잔등처럼 편안하게 누웠다. 마치 소가 '음~메'하고 일어설 것만 같다.
 
▲ 옥녀봉 정상 부근의 전망바위. 바위에 올라서면 아래로 지사과학단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길을 오른다. 정상부쯤에 전망바위가 하나 서 있다. 바위에 올라 조망을 하니 지사과학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도 한창 공사 중이라 기계소리가 '쿵쿵' 크게 들려온다. 공장건물과 아파트 건물이 함께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조금 더 오르자니 등이 휠대로 휜 소나무 하나가 하늘로 가지를 뻗고 있고, 그 옆으로는 벤치가 하나 놓여 있다. 정상을 앞두고 벤치를 만든 이의 배려가 가상하다. 벤치에 앉는 일은 정상을 오르기 전 몸가짐, 마음가짐을 뒤돌아보고, 정상에서의 희열과 내려올 때의 허전함을 추스르기 위한 것, 그 일련의 준비과정을 예비하는 일이다.
 
옥녀봉 정상을 앞두고 큰 암벽의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이 호활하다. 지사과학단지 전체가 발아래로 보이고, 그 뒤로 보배산과 봉화산이 조망이 된다. 그 사이로 지사천이 흘러흘러 서낙동강과 합류를 한다.
 
오르던 능선을 바라보니 왔던 봉우리들이 열을 지어 산줄기를 이루고, 멀리 마봉산, 굴암산 연봉 사이로 아스라이 시루봉이 보인다. 봄 여인의 치마폭 같은 옥녀봉 정상부에서 여인의 젖꼭지 같은 시루봉을 바라보니 묘한 감흥이 푸른 생명력처럼 치솟아 오르는 느낌이다.
 
전망대에서 한참을 신선처럼 해바라기 하고 있다가, 정상으로 오른다. 늙은 억새풀 군락을 지나 옥녀봉(333m) 정상에 도착한다. 주위로 잘 생긴 소나무 몇 그루 시원하게 뻗어있고, 소나무 기둥에 정상 팻말이 걸려 있다.
 
옥녀봉 앞으로는 녹산지역의 전망이 시원하다. 녹산벌과 경마공원, 서낙동강과 지사천이 흐르고, 봉화산의 능선이 여유롭게 뻗어있다. 왼쪽으로는 멀리 금병산 줄기가 길게 열을 지어 달리는 형국이다.
 
▲ 정상 부근의 벤치. 하늘을 향해 용트림 하듯 뻗은 소나무와 함께 운치를 더한다.
나무계단 길을 따라 하산을 한다. 내리는 길에도 벤치가 하나 놓여 있어, 하산의 의미를 곱씹어 보라는 의미로 읽힌다. 인생에서도 오르는 일보다 내리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 내리는 일이 일생을 마무리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곧이어 길이 급박해 진다. 태정고개 쪽으로 길은 깊이 떨어진다. 그 와중에도 진달래꽃은 지천으로 피고지고 있다. 진달래꽃 따라 깊숙이 길을 내린다. 한참을 길을 좇다보니 어느새 태정고개 갈림길. 이 길을 계속 가면 금병산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난 길이 하산길이다.
 
왼쪽으로 길을 내린다. 이때부터 참나무 낙엽들이 버썩거린다. 평화롭고 안락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마른 계곡을 따라 길을 이리저리 휘돌아 들다가 곤 임도와 만난다. 곧게 뻗은 임도는 호젓하기 이를 데 없다.
 
오리나무들이 임도 쪽으로 가지를 뻗어 초록빛 터널을 만들고, 그 밑으로 자잘한 풀꽃들이 바람에 살랑이며 사람들 눈빛을 시리게 한다. 임도는 산허리를 크게 돌고 돈다. 산모롱이 돌 때마다 산은 각각의 다른 향기로 다가온다.
 
향긋한 꽃냄새부터 싱그러운 풀내음, 그윽한 나무냄새와 구수한 흙냄새까지… 산은 그의 내밀한 속살의 냄새를 아무렇지도 않게 나그네에게 보여준다. 산의 진한 체취를 잊지 말라며 연신 온몸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한참을 임도에 반해 '서라벌의 처용'처럼 임도와 노니다가 보니, 어느새 다시 장유터널 연결도로 공사현장인 날머리로 빠져나온다. 아까 들머리의 터널입구와 만나는 것이다.
 
멀리 장유벌을 바라본다. 아직까지 장유마을에는 벚꽃이 난분분 난분분 흩날리고, 어디선가 닭 홰치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래, 그렇게 생명의 봄은 형형색색, 올망졸망, 재잘재잘, 지지배배 찾아오는 것이리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또 이마저도 소란스럽지 않으면 될 법이나 한 일이던가?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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