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계약직 전환 보장 솔깃한 제안에
4년간 박봉 시달리면서도 묵묵히 일해
"불평 한마디 안했는데 … 배신감만 느껴"


지난 16일 오후 6시 40분 직원들이 대부분 퇴근하고 불이 꺼져 적막감만 감도는 김해시청. 소회의실 문을 열자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모두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김해시 환경정책과, 환경관리과, 청소과, 칠암도서관, 장유건강지원센터 등에서 무기계약직 전환만 꿈꾸며 2년 이상 일해 왔던 기간제근로자 30여 명이었다.
 
지난해 말까지 4년 간 김해시청 환경관리과에서 일했다는 이경석(36·가명) 씨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 해고 당한 한 기간제근로자가 얼굴을 숨긴 채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2009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정규직 전환을 앞둔 어느 날 지인이 시청에서 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다. 시청에서 2년만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귀가 솔깃한 제안이었다. 기업체에서 일하는 것보다 시청에서 일하는 게 더 안정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로계약서를 쓰던 날 환경관리과 담당자의 말은 그의 믿음에 희망을 보태주었다. "1년 정도 같이 일을 해본 뒤에 다시 계약하자. 무기계약직 자리가 나면 바로 알려주겠다." 근로계약서에 적힌 그의 직책은 사무보조. 실제로 하는 일을 하는 환경단속원이었다. 환경관리과 계약직 직원은 그를 포함해 모두 9명. 각각 구역을 나눠 맡아 하천의 수질오염을 점검하고 예방했다. 계약직 직원을 뽑을 때 조건 가운데 하나는 개인차량의 소유 여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업무 특성상 하천 수질오염을 감시하며 매일 40㎞ 이상을 오가야 했기 때문이다.
 
2남 2녀 중 셋째인 이 씨는 환갑이 넘은 어머니와 함께 산다. 최저임금은 4천 원이어서 손에 쉴 수 있는 기본급은 83만 원이었다. 주말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100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때론 쉬고 싶었지만 시청에서 주말 근무를 요구하기도 했다. 월급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기름값으로 쓰였지만 월급통장에 들어오는 차량유지비는 고작 8만 원이었다. 남는 돈은 고작 60만 원 안팎이었다. 빠듯한 생활비 때문에 어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끌고 경북 울진까지 식당일을 나갔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의 다리는 늘 퉁퉁 부었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식당일을 그만두라고 어머니에게 말했지만 아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던 어머니는 다시 식당일을 하러 나갔다. 적은 월급에 주말 없이 계속되는 업무. 그래도 그가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건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2009년 말 1년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담당자는 "한 달 뒤에 다시 계약하자"고 했다. 다음 해에 근로계약을 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어 한 달을 쉬어야만 했다. 쉬는 동안 수입이 없을 것을 고려한 담당자는 고용보험을 통해 실업급여를 받는 방법까지 일러줬다. 2010년 1년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났다. 2011년부터는 예전처럼 근로계약 전에 쉬는 일 없이 계속 일을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총 근로기간이 2년이 됐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을 해지한다는 해고통고를 받아야만 했다.
 
"지난 4년 동안 제가 뭘 한 건지 모르겠어요. 무기계약직 자리 하나만 보고 불평 없이 일해 왔지만 결국 돌아온 건 해고통보였어요."
 
너무 억울한 마음에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노동위원회는 김해시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중앙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해 재심신청을 했다. 그는 퇴직금을 받았다. 이 돈을 받으면 연속근로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으로 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고로 넘어져 척추를 다친 어머니를 치료하기 위해선 퇴직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물건을 쓸 때 '사용'이라는 단어를 쓰잖아요, 김해시로부터 무기계약직이라는 당근에 놀아나 4년 동안 '사용' 당한 느낌이에요. 저희는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물건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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