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는 경남에서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다문화 도시다. 이주 노동자가 늘면서 '그들만의 공간'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대다수 시민들은 잘 모르는 이주민들의 쉼터, <김해뉴스>가 그 공간 속으로 들어가 봤다.
 

 

 

▲ 서상동의 이슬람사원 알 바로카에서 예배를 마친 인도네시아인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다. 김해에는 이슬람사원 외에도 종교, 문화별로 각종 분야의 이주민 모임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장 기숙사 외엔 딱히 쉴 곳 없어
종교별 사원·법당·컨테이너 예배당 등
유일한 안식처이자 소통의 장
시설 열악하고 유지비용 등 부담 커
보다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 절실


서상동 탑마트 뒤편에 이슬람사원인 알 바로카가 있다. 2010년 몇몇 인도네시아인들이 힘을 모아 마련한 장소다.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무슬림 이주 노동자 수가 평균 100명에 이른다. 큰 종교 행사가 있을 땐 200명 이상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사원 내부는 264㎡(80평)로 제법 넓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사무실과 방, 부엌, 화장실, 샤워실 등이 있다. "슬라맛 시앙?(안녕하세요?)" 미리 연습해 둔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를 건넸더니,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이 돌아왔다. 한국어에 능숙한 사원 관리인 수립토(38) 씨다. 사원에 있던 인도네시아 무슬림 50여 명은 인도네시아 음료수와 과자를 주며 반갑게 기자를 맞이했다.
 
사원을 찾는 이주 노동자들은 대부분 인도네시아인들이다. 이들은 이곳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함께 장을 보고 식사도 한다. "이 사원을 처음 마련할 당시엔 면적이 66㎡(20평)에 불과했고, 찾아오는 사람은 주말에도 20~30명밖에 안 됐어요. 그런데 3년 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네요."
 
이주 노동자들은 이곳에서 함께 스포츠를 즐길 사람을 찾기도 한다. 사원에서는 자체적으로 축구, 배구, 배드민턴 클럽도 운영한다. 축구클럽 감독 카미디(43) 씨는 "이주민들이 마음 편히 이용할 수 있는 운동장과 체육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낮 12시가 지나자 이주 노동자들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예배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합동예배 전 무슬림들은 몸부터 씻는다. 손과 발을 씻고, 입안을 헹구고, 세수를 하고, 팔꿈치와 귀를 씻는다. 발목이 보이도록 바지 아랫단을 단정하게 접어올린 뒤 맨발로 예배당에 들어선다. 예배당 안에 '아잔'이 울려퍼졌다. 아잔은 하나님을 부르고 무슬림을 모으는 외침이다. 아잔에 맞춰 이들은 일제히 바닥에 엎드리고 일어나길 반복했다. 30분가량 진행된 합동예배가 끝나자 이들이 다시 바깥에 모였다. 수립토 씨는 "예배 모습을 보거나 아잔을 들었을 때, 자신들의 문화와 다르다면서 불편해 하는 한국 사람들도 있어요. 우리가 한국말을 배우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듯 한국 사람들도 우리의 문화를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알 바로카 외에도 김해에는 이슬람사원이 3곳 더 있다. 외동의 알 마티나, 서상동의 알 따끄와, 안동의 알 히다야가 그것이다. 또 읍·면지역에는 컨테이너로 만든 무슬림들의 쉼터 겸 예배당이 10곳 정도 더 있다고 한다.
 

 

 

 

▲ 부원동에 위치한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는 불교법당 해국사.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는 불교법당 해국사로 향했다. 부원동에 위치한 이 법당은 2007년 해국(39·스리랑카) 스님이 마련한 공간이다. "주말이면 20~30명 정도가 이곳을 찾습니다. 스리랑카는 불교국가이지만 한국의 불교문화와는 많이 다르죠. 이곳에서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은 기도를 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가기도 합니다."
 
해국스님은 공장 기숙사 외에는 딱히 쉴 곳이 없는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법당을 쉼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김해에는 1천400명의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그들을 위한 쉼터로는 해국사가 유일하다. "재정난 탓에 법당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에 문을 닫지 않고 있습니다."
 
법당에 모인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이 부처님께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엎드린 채 손바닥을 펴 머리 뒤로 올리는 한국식과 달리 이들은 바닥에 합장한 손을 대고 검지손가락을 코와 입에 댔다. 기도가 끝난 뒤 해국스님은 스리랑카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서둘러 법당을 빠져나갔다. "진례면의 한 사찰을 방문할 겁니다. 도자기 빚는 체험을 하면서 템플스테이를 할까 해요. 평일에 하루 종일 공장 안에서만 사는 사람들, 숨통 좀 틔워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부원동 옛 김해관광호텔 맞은편에 위치한 미얀마 이주 노동자들의 쉼터다. '미얀마 도서관'으로 불리는 이곳은 2011년 일부 미얀마인들과 부산 주례동 '담마야나 선원'의 스님이 힘을 모아 마련했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미얀마 이주 노동자 20여 명이 낮은 밥상 앞에 동그랗게 둘러앉아 한글을 공부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인도 3명이나 되었다. 한글교사 이윤희(52) 씨는 "미얀마인들이 한글공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말 오후마다 이곳을 찾아 교육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안마 도서관 관리인 민랏(30) 씨는 한국말에 능숙했다.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국어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평일에 수업이 있어 이주 노동자들은 참여하기 힘듭니다. 그래서 미얀마 도서관을 만들고, 일요일 오후에 두 시간씩 한국인 봉사자들로부터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지요. 많을 때는 40명 씩 수업을 듣습니다. 법회 등 행사가 있는 날에는 미얀마인 100명 정도가 모입니다."
 
책장이 있는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도서관이라고 하기에는 책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또한 미얀마 책이 대부분이었고, 한국 관련 서적은 30여 권에 불과했다. 도서관측은 월세를 내는 것도 빠듯한 실정이라 책을 더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킨투자(33) 씨는 "여기서 수업을 받은 미얀마인들이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도서관의 위치를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준다. 그런데 책이 적어서 오는 사람들마다 아쉬워 한다"고 전했다.
 
휴일에 한국어 공부를 한 뒤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미얀마 도서관에 머무는 사람도 1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새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외국인고용지원센터에 서류를 넣어놓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겐 한국어 공부보다 당장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쉴 자리가 필요하다고 도서관측은 전했다.
 
알 바로카, 해국사, 미얀마 도서관 외에도 김해에는 이주 노동자들의 공간이 적지 않다. 동상동엔 네팔 공동체 쉼터와 방글라데시 이슬람사원이 있다. 또 주촌면에는 인도네시아 쉼터, 서상동에는 우즈베키스칸과 캄보디아 쉼터. 상동면에는 옌벤 출신들이 대부분인 중국인 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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