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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숲 깊은 계곡에 몸 씻고 마음 씻으니 선계는 어드메뇨(48) 장유 팔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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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3.07.30 10:26
  • 호수 134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 산아래에서 바라본 팔판산. 예부터 삼정승과 여덟 판서가 나올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져 내려올 만큼 산세가 거방하고 육덕과 풍채가 대단하다.
장유의 산들은 낙남정맥이 융기하고 분출하며 만들어놓은 거대한 마루금을 가지고 있다. 큰 물결이 출렁이며 지리산을 향해 끝없이 이어가는 산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도 부산의 마루금을 이어받아 불모산, 용지봉으로 연결하는 곳이 굴암산~화산 능선이다. 이번 산행은 굴암산~화산 능선 사이에서 신안마을로 산줄기를 뻗은 팔판산을 오른다. 신안마을을 품고 있는 산으로, 마을입구를 들머리로 초록나라어린이집, 장유터널 공사현장, 분성배씨 묘, 119표지목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다, 팔판산 산등성이를 타고 정상에 오른 뒤, 팔판산 산줄기를 타고 하산하는 코스이다.


장유 신안마을. 새로이(新) 편안한(安) 동리. 오래 전, 이 마을은 그릇을 굽던 곳. 그래서 한 때 사기점(沙器店)골이라 불렸던 때도 있었다. 웅천에서 '소사재'라는 고개를 넘어, 사기그릇이나 다양한 수산물을 지고 나르며 늘 만나던 마을. 하여 마을 입구에는 '갈판산 사기점골 신안(新安)마을'이라는 큰 빗돌이 서 있기도 하다.
 
갈판산. 지금의 팔판산을 이르는 말인 듯한데, 예전에 이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나 보다. 팔판산은 예부터 삼정승과 여덟 판서가 나올 명당자리가 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산이다. 그만큼 산세나 풍수지리가 거방하다는 뜻이겠다.
 

   
▲ 신안마을 입구 등산로. 멀리 팔판산이 보인다.
마을입구에서부터 큰골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자못 크다. 신안다리 건너기 전 오른쪽 음식점 주차장 방향으로 길을 오르면, 장유터널 공사장 도로와 맞닿는 곳에 집이 몇 채 옹기종기 모여 있다. 초록나라어린이집이 보이고, 생태학습장에서는 고추, 옥수수, 토마토, 호박 등속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산불초소 못가서 옆으로 난 작은 길로 방향을 잡는다.
 
길을 오르다 보니 멀리 계곡 물소리가 들리고, 그 소리 따라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수풀이 짙어 사위가 컴컴하다. 새벽녘부터 쓰르라미 소리가 시작되더니, 지금은 온 산이 떠나갈듯 쨍쨍하게 요란스럽다.
 
길을 조금 오르자니, 도로개설 현장과 맞닿는다. 여러 차례 덤프트럭과 이리저리 만나고, 뿌연 먼지도 하얗게 뒤집어쓴다. 뙤약볕에 흘러내리는 땀과 먼지가 범벅이 되어 산행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곧이어 터널공사 현장엘 닿는다. 벌써 터널은 관통이 되어 반대편 터널 입구가 환하다. 트럭이 부지런히 흙을 실어 나르고, 공사인부들은 터널 안을 들락거리며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다. 가끔씩 들리는 공사장 굉음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 갈라진 바위 틈새로 산이 품었던 물이 흐르고 있다.
공사 중인 흙길 사이로 희미한 물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보니 도로 밑으로 계곡이 흐르고 있다. 조심스레 계곡 사이에 숨어있는 산길을 찾아 오르기 시작한다. 주위에 제피나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바람에 진한 제피향이 강하게 풍겨온다.
 
길은 터널 절개지 쪽으로 이어진다. 나팔꽃 같은 담홍색 '갯메꽃' 군락이 지천으로 피었고, 군데 군데 '닭의장풀'도 짙은 남색 꽃을 한창 피워 올리고 있다. 절개지와 산이 맞닿는 곳에서 왼쪽으로 희미한 길이 나있다.
 
물길이 막혀서인지 걷는 길마다 물이 흘러 질척인다. 칡넝쿨도 길을 덮고, 가시덤불도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안달이다. 스틱으로 덤불을 헤치며 겨우겨우 길을 내며 산으로 오른다. 아침 이슬에 등산복이 축축하게 젖어 흥건하다.
 
곧이어 대나무 터널이 나오고, 이곳을 빠져나오니 제대로 된 임도가 시작된다. 어느 정도 임도를 따르니, 본격적인 팔판산 산길이 시작된다. 곧이어 분성배씨 묘가 나오고, 유택 뒤로 홍송(紅松) 군락이 병풍 치듯 둘러서 있는데, 생김생김이 하나같이 참 잘~ 생겼다.
 
계곡을 따라 물소리가 시원하다. 물소리 들으며 길을 계속 오른다. 새들이 사람 앞을 휙휙~ 지나다닐 정도로 숲은 자유롭고 평화롭다. '팔판산 아래'라는 119표지목이 서있는 임도까지 오른다. 임도를 건너 산길을 계속 이어간다.
 
   
▲ 들머리 계곡을 따라 오르면 119표지목이 나타난다.
숲이 다시 짙어진다. 계곡과 만났다 헤어졌다 하던 길은, 본격적인 된비알로 오르기 시작한다. 발치에서 까투리 한 마리 후드득 날아오르고, 깊은 계곡의 물소리는 장쾌하게 쏟아지고 있다.
 
비탈길을 오르며 숨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가슴은 터질 듯 힘이 든다. 습기가 많아서인지 땀이 비 오듯 한다. 산세가 보기보다 험하다. 악전고투다. 힘겹게 오르다 발길이 풀잎에 닿으면, 나방 떼가 하얗게 흩어지며 날아오른다.
 
바위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얼려온 물을 꺼내 한 잔 마신다. 물맛이 꿀맛이다.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고 나자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 비로소 물소리가 편안하게 다가온다. 물 한 잔 더 마시며 한참을 물소리 들으며 앉아서 쉰다.
 
다시 길을 나선다. 상부로 가면서 길은 더욱 비탈이 지고, 물소리마저 끊겨버렸다. 계곡 밑으로 숨어 물이 흐르는 모양이다. 갑자기 끊긴 물소리 대신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다시 크게 들려온다. 그 사이로 풀벌레 소리도 코러스(합창) 넣듯 시끄럽다.
 
길이 굴암산 방면에서 팔판산 쪽으로 방향을 튼다. 곧 바위암벽이 불쑥불쑥 다가오고, 그 위로 산죽이 지붕을 얹듯 빽빽하게 자라고 있다. 솔가리가 수북하게 쌓여있는 길은 점점 더 된비알을 이루며 오르기가 힘들어진다.
 
멀리 팔판산 능선이 어렴풋이 보일 때쯤, 길은 계곡 위로 절벽을 이루며 위태롭게 능선으로 향한다. 모기떼는 끊임없이 사람 뒤를 따르며 극성을 부린다. 다시 계곡과 길이 만난다. 써늘한 기운에 잠시 청량해진다. 바람마저 불어와 이마의 땀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계곡에서 길이 잠시 끊긴다. 그 주위로 수목이 밀집해 있고, 그 아래로 하얀 별꽃이 낭자하게 떨어져 있다. 향기로운 꽃향기가 진동을 한다. 고개를 들어 나무를 쳐다보니, 산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떨어진 그 꽃잎 사이로 희미한 길을 찾는다.
 
길이 끊긴 곳에서 사람이 남긴 흔적을 좇아 산을 오른다. 앞서간 자가 드문 길은, 뒤를 이어 걷는 자들에게는 '힘든 길 걸음'이다. 그 길을 따르며 가야 할 길을 가늠한다. 짐승길인지 사람길인지 모를 길을 '사람의 길'로 만들며 오르는 것이다.
 
   
▲ 때죽나무. 숲은 한낮에도 어두울 만큼 빽빽하다.
비가 오면 물길이 되는 길을 따르며, 한소끔 깔딱 고개를 넘는다. 바위와 바위 사이, 수풀과 덤불을 헤치며 팔판산 능선으로 향한다. 서서히 하늘이 보인다. 좀체 능선길을 내어주지 않던 팔판산 능선에 드디어 올라선 것이다.
 
능선에서도 길은 희미하다. 이미 굴암산 능선이 잘 정비되어 있어, 팔판산 능선은 바야흐로 길이 유실되고 있는 상태이다. 등산로로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산행은 거의 개척 산행 수준이다.
 
곧이어 제일 높은 봉우리에 오른다. 봉우리 주위 바위 몇 개 앉아있고, 잘 자란 다복솔 한 그루, 튼튼하게 바위 위에 버티고 서있다. 팔판산 정상(673m)이다. 정상 주변에는 수풀이 수북하게 우거져 있어, 생각 없이 걷다보면 그냥 스쳐지날 수도 있겠다.
 
정상에서 주위를 돌아본다. 보이는 건 바위와 나무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 흔한 산 아래 조망도 없다.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화산 봉우리와 그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는 군부대의 건물 몇 채 보일 뿐이다.
 
현재 등산객 사이에는 큰 계곡 너머 보이는 저 화산이, 팔판산이라 널리 통용되고 있다. 등산지도에도 화산과 팔판산을 병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화산 아래의 산봉우리를 팔판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안마을에서도 마을 뒤에 앉아있는 산봉우리가, 지금 서있는 봉우리임을 알 수가 있다.
 
어쨌든 팔판산은 육덕과 풍채가 대단하다. 숲이 짙어서 전망은 없지만, 계속되는 오르막과 큰 물줄기의 계곡, 촘촘하게 솟아있는 바위 암벽 등, 꽤 규모 있는 산줄기가 수려하고, 화산과 이어지는 능선 또한 편안함을 유지하고 있다.
 
   
▲ 하산길에서 만나는 큰 바위 절벽에 서면 발 아래로 장유시가지가 환하게 조망된다.
하산 길을 내린다. 푹신한 부엽토길이 편안하다. 길을 올랐던 계곡 반대편으로 길을 낸다. 다시 산딸나무 꽃잎들이 낭자하게 떨어져 길을 따르고 있다. 흰 꽃잎을 밟을 때마다 산길은 진한 향기를 내며 나그네 마음을 기껍게 한다.
 
갑자기 큰 바위 절벽이 사람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섰다. 바위 위에 서니, 장유시가지가 환하게 조망된다. 아파트 단지가 성채처럼 굳건하게 하늘을 받치고 있고, 반룡산, 칠산, 장유벌이 차례로 펼쳐진다. 하늘에는 일필휘지 하듯 흰 구름들이 날렵하게 흐르고 있다.
 
산줄기 따라 끝도 없이 내리는 길. 가도 가도 앞 봉우리 능선이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한참을 깊숙이 내려가며 길을 따른다. 한참 후에야 묘지가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다. 유택들이 사람 사는 동네에 가까워졌음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유택의 상태가 허술하다. 곳곳의 묏등이 흘러내리고, 붉은 흙들이 언뜻언뜻 비친다. 파묘 상태의 유택이 한두 기가 아니다. 관리가 안됐는지, 전체 산에 이장공고가 난 것인지, 가늠이 안 된다. 풍수지리학 상으로 삼정승, 여덟 판서가 난다는 팔판산의 유택들이라 더욱 마음이 짠해진다.
 
조금 더 길을 내리자 도로공사 소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서서히 속세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곧이어 임도를 만난다. 장유 시가지와 반룡산 조망이 다시 활짝 열린다. 햇빛 아래 시가지는 역광에 비치어 눈이 부시다.
 
   
▲ 큰골계곡. 산길 나그네의 피로를 풀어준다.
조금 더 내려오니 큰골계곡과 만난다. 시원한 물소리가, 힘들게 하산한 나그네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작은 소에서 등산화 끈을 푼다. 양말을 벗고 맨발을 계곡물에 담근다. 뼛속까지 시원하다.
 
머리를 씻고 손과 목덜미를 씻는다. 그리고 발가락 사이를 꼼꼼하게 씻는다. 거풍(擧風)을 하듯 마음 속까지 세심(洗心)을 하는 것이다. 몸이 씻기고 마음이 씻긴다. 그렇게 씻고 씻으니 마음까지 없어진다. 신선의 경계가 이러할까? 그렇게 마냥 마음을 씻으며, 남가일몽(南柯一夢)의 하루를 하릴없이 보내고 있는 것이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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