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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하나 훌렁 던져놓고 산바람·새소리에 몸과 마음을 내려놓다(49) 안산(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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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재 2013.08.20 11:40
  • 호수 136
  • 12면
  •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report@gimhaenews.co.kr)

생림과 상동의 경계이자
마당재~석룡산 능선 초입에 위치

들머리~송전철탑 지나 정상 249m봉~241m봉~광재고개 지나
석류봉 오르다 석룡산 등산로 만난 뒤 무척산 들머리 여덟말 고개로 하산

풀섶과 나무숲에 둘러싸여 스쳐지나가도 모를 듯한 정상
시원한 바람과 아늑함이 인상적


오래도록 김해의 산을 오르면서 느낀 점인데, 김해의 산들은 하나같이 안산(安山)의 기운을 가지고 있다.
산 하나하나마다 부드러운 능선을 가지고 있고, 능선 사이사이 산줄기마다 김해의 마을을 하나씩 품고 있다. 그 앞으로는 너른 평야와 풍부한 수량의 강줄기가 산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평야는 산에 기대어 온갖 생명들을 키워내고,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평야의 젖줄로 흐르다, 큰 바다와 합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김해의 산은, 김해의 모든 것들에게 편안한 어미의 품이다.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그 넉넉한 품을 내어준다. 그래서 김해의 산들은 서로 닮았다. 안산(安山), 편안한 산들인 것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이름으로 불릴 때는 제각각 제 이름을 가진다. 마치 잘 어울리는 옷들로 갈아입고, 우리가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신어산이 그렇고, 무척산이 그러하며, 불모산이 또 그렇다. 각각의 전설과 설화를 품고, 그들의 기나긴 세월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다. 화려한 적멸의 왕국 '가락국'과 함께, 김해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면면히 우뚝 서 있는 것이다.

김해에는 편안할 안(安), 안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이 하나 있다. 생림과 상동의 경계, 마당재에서 석룡산 오르는 능선 초입에 있는 산이다. 용지봉과 무척산을 잇는 '무척지맥' 중, 편안한 능선 구간의 중심에 있는 산이기도 하다.
 
이번 산행은 무척지맥 중에 있는 '안산(安山)' 주위 능선을 탄다. 마당재에서 송전철탑, 안산으로 해서, 249m봉, 241m봉, 광재고개를 지나 470m봉(일명 석류봉) 쪽으로 오르다, 석룡산 등산로와 만난 후, 무척산 들머리 중에 하나인 여덟말 고개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근 한 달여를 찜통 속 더위가 계속된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날 지경인데, 정오의 시간에 산을 오르겠다고 상동으로 향한다. 국도를 달려 상동면 표지기둥 앞에 서니, 아스팔트의 열기가 온몸을 데울듯 펄펄 끓는다.
 

   
▲ 나뭇잎 사이로 멀리 석룡산과 무척산 마루금이 보인다.
'마당재'의 마루금에 안산으로 오르는 들머리 임도가 나있다. 이 불볕더위 속에서도 길 주위의 풀과 나무들은 푸릇푸릇 싱싱함으로 자지러진다. 임도 초입에 석룡사 이정표가 붙어 있고, 길 옆 공장에서는 기계소리가 한창 시끄럽게 울린다.
 
잘 닦인 임도가 편안하게 산으로 안내하고 있다. 산으로 들자마자 참매미, 말매미, 쓰르라미 등속의 우는 소리가 귀에 쨍쨍하다. 일주일여 남은 온 생애를 죽을 힘을 다해 울어댄다. 처절한 자손 번식의 몸짓들이 짠하기만 하다.
 
길을 오르다보니 유난히 졸참나무들이 많다. 나뭇가지 사이로 도톰한 도토리가 탐스럽게 열렸다. 옛 사람들 말로는 흉년이 들면 도토리가 많이 열린단다. 대견하게도 흉년을 알아보고, 사람을 구황하기 위해 알아서들 조랑조랑 열린다는 것이다. 나무 한그루에도 넉넉한 품성이 눈에 보여 고맙기만 하다.
 
임도 사이로 소나무 숲이 편안하다. 넓은 임도는 황톳길이어서 길이 붉디붉다. 그래서인지 길섶의 초목들이 해맑고 건강한 것 같다. 임도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으로 난 임도로 오른다.
 
길이 서서히 급해지기 시작한다. 미국자리공의 넓은 잎과 한 키 높이의 옻나무들이 지천으로 길을 따르고 있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땀을 연신 닦으며 오르다보니, 철탑이 떡하니 서 있고, 곧이어 무덤 하나 나온다. 무덤 주위로 고사리들이 부챗살 펼치듯 펄럭펄럭 제 잎들 활짝 열고 섰다. 유택의 주인장, 이 더운 여름 시원~하게 잘 나실 것 같다.
 
무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른다. 간벌한 나무 둥치들이 군데군데 뒹굴고, 그 사이로 길을 내며 오른다. 소나무 밑으로 제피나무들이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이사이 제피 꽃이 노랗게 피었다. 발길 닿는 데마다 제피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더운 날씨에도 허브 향에 잠시 청량함이 느껴진다.
 
   
▲ 그냥 스쳐가도 모를 만큼 허허로운 공터 모양을 한 안산의 정상. 잡초들만 무성하지만 나무 숲에 둘러싸여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안산 정상 주변으로 담쟁이덩굴을 감은 나무들이 눈에 띈다. 바람에 펄럭이는 담쟁이 잎들이 손바닥처럼 보인다. 그 푸른 손바닥이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며, 무엇인가 자꾸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옆에 슬쩍 기대어 담쟁이덩굴의 아우성에 잠시 귀 기울여 본다.
 
곧이어 정상에 오른다. 정상에는 허물어진 무덤 하나 초연히 누워있고, 주위로 잡초들만 무성하게 바닥을 쓸고 있다. 그냥 스쳐 지나도 모를 정도의 공터, 그러나 나무 숲에 둘러싸인 작은 이곳이 '어미의 자궁'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잠시 배낭을 내리고 마음을 편히 한다. 온갖 바람이 시원하게 몰려와 나그네의 이마를 식혀주고, 갖은 새소리들이 지지배배~ 지지배배~ 지저귀며 귀를 청량하게 씻어준다. 오랫동안 산새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그저 그렇게 앉아만 있는 것이다.
 
다시 길을 나선다. 멀리 비탈 쪽으로 떡갈나무 하나 참 실하게 서 있다. 족히 5~6m는 되겠다. 한참을 떡갈나무 밑에서 서성이다가, 산죽 길을 계속 따른다. 두 번째 봉우리까지 편안한 능선은 계속된다.
 
세 번째 봉우리서 바람이 터진다. 가슴 속이 다 시원하다. 그 바람 속에 원추리 꽃 딱 한 송이 피었다. 산봉우리 정상에서 외로이 바람을 맞고 서있는 것이다. 주위에는 온통 푸른 물이 들었는데, 노랗고 큼직한 꽃 한 송이가 꽃 브로치를 단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241m봉 정상 주위로는 돌무더기가 많다. 이리저리 공깃돌을 던져놓은 듯하다. 그 옆에는 고욤나무 한 그루, 큰 바람에 열매 몇 개 산신령에게 고수레 하듯 툭툭~ 던져주고 있다. 고욤나무는 '감나무 과' 나무로 감처럼 생긴 열매가 손톱 크기 정도로 열린다.
 
먹을 것이 궁했던 시절, 가을에 익은 열매를 항아리에 저장해 두었다가 겨울에 꺼내 먹기도 했다는데, 맛이 떫고 먹고 나면 입안이 텁텁하여 식용으로는 어렵겠다. 그래도 구황식품으로 귀하게 여겨진 터이고, '감의 조상'으로도 인정을 받으니, 안산(安山) 능선에 머물러 있음직도 하겠다.
 
산길이 급히 떨어진다. 곧이어 광재고개. 왼쪽으로는 하사촌, 오른쪽으로는 광재마을로 내려가는 고개이다. 앞서간 산꾼들의 말로는 고갯길이 희미하게 보인다더니, 더 이상 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다시 가던 길로 향한다. 갑자기 가팔라진 길을 오른다. 한참을 그렇게 오르니, 숨이 턱턱 막힌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잠시 쉬기를 여러 번. 그 사이로 벽오동 큰 잎들은 나그네에게 그늘도 만들어주고, 뜨거운 이마도 쓰다듬어 주곤 한다.
 
오르막이 잦아지는가 하면 또 급한 오르막이 앞을 가로막고, 또 잦아지는가 하면 다시 급경사가 시작된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산길에서 한참을 주저앉아 목만 축이고 있자니, 또 엄청난 오르막이 나그네를 기다리고 있다. 470m봉 안부에서 온몸의 맥이 탁 풀리는데, 깊은 계곡 비탈의 때죽나무 군락이 자꾸 내려가자 손짓하는 듯하다. 위태롭게 자리 잡고 있는 계곡 쪽으로, 하산길이 있을 것만 같은 유혹에 은근하게 시달린다.
 
큰숨 한번 쉬고 다시 길을 나선다. 잠시 길이 왼쪽으로 기울며 등성 길을 탄다. 워낙 경사가 심해 산등성이를 돌아 길을 낼 모양이다. 왼쪽은 급격한 비탈이고 길의 폭은 사람 하나 겨우 운신할 정도이다.
 
   
▲ 석룡산 갈림길.
한참을 오르니 갑자기 시야가 트이고 곧이어 석룡산 등산로와 만난다. 이 길은 여덟말 고개에서 470m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석류봉이라고도 불리는 봉우리로, 석룡산 가는 길에 거쳐서 가는 산이다. 정상으로 향하는 산세가 꽤나 힘들고 험하다.
 
주위로 온갖 풀벌레 소리가 사람 귀를 멀게 할 태세다. 여덟말 고개 쪽으로 길을 내린다. 내리는 길에 건장하게 잘 자란 금강송 한 그루 눈에 들어오고, 멀리 나뭇가지 사이로 석룡산과 무척산의 마루금이 아스라하다.
 
내리는 길 곳곳으로 작은 바위들이 길을 따른다. 심심치 않은 동행을 만나 함께 하산하는 기분이다. 계속되는 바윗길. 길과 담소하듯 자갈길을 자갈거리며 내려간다. 곧이어 산불초소가 나오고 주위 전망이 시원하게 터진다.
 
발 아래로 나전고개와 나전농공단지가 보이고, 그 뒤로 무척지맥의 제 봉우리들이 도열하듯 따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하사촌과 멀리 생림벌도 펼쳐진다. 실타래처럼 흐르는 도로에서는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다.
 
다시 길을 내린다. 키 높이의 덤불을 헤치며 길을 낸다. 칡덩굴과 가시덤불이 가는 길을 가로막고 떼를 쓰기도 한다. 한참을 길과 승강이를 하다 보니, 온몸에 불이 붙듯 몸이 펄펄 끓는다.
 
조심스레 그 길을 헤치고 나오자, 굽이굽이 오솔길이 휘돌아 내린다. 온갖 나비가 나풀대고, 시원한 바람소리는 나그네를 반가이 맞이하고 있다. 얼핏 여덟말 고개가 보인다. 석룡산으로 향하는 임도와 찻길도 보인다. 반갑다. 참 반갑기도 하다.
 
폭염 속 산행은 구도의 길에 다름 아니다. 몸은 소신공양하듯 불타오르고, 마음은 그저 돌아가고픈 일념밖에 없다. 그래도 일단 길을 나선 후에는 다른 길이 없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가는 길을 계속 가거나….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시험하기 위해 산을 오른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계속해서 갈 수 있을지 가늠하기 위해서 말이다.


   
 




최원준 시인 /문화공간 '守怡齊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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