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 유선방송의 '책을 삼킨 TV' 프로그램에 소설가 김원일(69·서울 거주)이 출연했을 때, 몇 해 전 고혈압으로 쓰러졌다 회복한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빽빽한 백발만이 그가 70을 앞둔 '노인'임을 말해줄 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터뷰 요청을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그의 목소리에는 다소 힘이 빠져 있었다. 그는 "나이가 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했다.
 
김원일을 '분단문학의 거장'으로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붓을 꺾지 않은 소설가들 중 6·25전쟁을 체험한 이는 그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단지 6·25를 체험했기 때문에 그 앞에 '거장'이란 수식어를 헌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단 현실을 보편성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빼어난 소설로 승화시키며 분단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일곱 살에 겪은 전쟁과 월북한 아버지로 인한 아픈 가족사는 그의 소설을 관통하는 문학적 화두로 작용했다.
 
지난 2005년 그의 고향인 김해시 진영읍 금병공원에 '김원일 문학비'가 세워졌다. 김원일 문학비는 임종찬 시조시인, 신진 시인, 박홍배 문학평론가 등 지역의 문인들이 뜻을 모아 추진했으며 김해시가 재정 지원을 했다. 이 문학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해방·분단·전쟁으로 얼룩진 민족사적 시련을 문학혼으로 승화시켜 우리 문학사의 한 봉우리로 우뚝 솟았다.'
 
그는 고령임에도 컴퓨터로 글쓰기를 즐겨 하는 편이다. 그래서 이메일 사용에도 매우 익숙하다. 오전에 이메일로 인터뷰 질문지를 보냈는데, 오후에 벌써 답변이 들어와 있었다. 전화로 추가했다.
 
 
-최근 작품 '전집' 작업을 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만.
 
▶'김원일 소설 전집'을 만들고 있어요. 나이 70에 들어서면 좋은 글을 쓰기가 힘들다고 봐요.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신이 살아 있을 때 지금까지 내놓은 작품들을 다시 가다듬어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총 30권으로 계획되어 있는데, 1차분으로 2009년 서울문단 등단작인 장편 '어둠의 축제'와 '바람과 강', '김씨네 사람들' 3권을 '강' 출판사에서 출간했고, 작년에 장편 '불의 제전' 전 5권을 출간했습니다. 이 소설은 나로서는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작품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초판 7권을 이번에 5권으로 줄였습니다. 고향인 진영읍이 작품의 주요 무대지요. (불의 제전은 시간적 배경은 1950년 1월부터 10월까지, 공간적 배경은 진영과 서울, 평양을 무대로 6·25전쟁의 참상을 그려낸 작품으로, 김원일 문학의 정수로 꼽힌다.) 오는 4월에 3차분으로 '슬픈 시간의 기억' '푸른 혼' '사랑의 길'이 나올 예정입니다. 죽기 전에 좀 더 완벽한 작품을 남기려 한 해 3권의 수정 작업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각고의 작품인 '불의 제전'을 이렇게 팍 줄였는데, 아깝지 않습니까?
 
▶개작은 주로 덜어내는 작업이었습니다. 요즘은 '토지'나 '아리랑'이 유행하던 때와는 다릅니다. 숱한 매체가 넘쳐나는데 독자들이 책을 그렇게 오래 잡고 있지 않아요. 소설이 너무 지리하게 길어서는 안 됩니다.
 
-분단문제에 천착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 자신이 6·25를 톡톡히 체험했기 때문이겠지요. 진영에서 태어나 대창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이사갔고 2년 뒤 전쟁을 만났습니다. 전쟁 와중에 아버지는 단신으로 월북했습니다. (그의 부친은 남로당 당원이었다.) 우리 가족은 진영으로 피난을 나와 말할 수 없이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훗날 문학을 하게 되면 어릴 때 겪은 전쟁의 기억을 꼭 써보겠노라고 결심했었지요.
 
-다시 태어나도 작가가 되실 생각입니까. 좋아 하시는 작가는요?
 
▶허허, 학교 다닐 때 수학 외국어 암기력이 모두 부족하고 공부를 못해 좋은 대학 가기는 아예 걸렀다고 생각했지요. 손재주와 상상력(공상력이랄까요)은 좀 있기에 문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문학을 안 했다면 아마 화가가 되었을 겁니다. (기실 김원일은 미술에 상당한 조예가 있다. 미술 관계 책을 두 권이나 펴낸 적이 있다. 그는 피카소 평전인 '김원일의 피카소'가 원고지 2천500장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라며 우쭐해 했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가난과 어린 시절에 겪은 소외, 그리고 빈곤에 따른, 사회에 대한 항의 때문일 것입니다. 문학청년 시절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 만, 까뮈를 좋아했지요.
 
-고향이란 무엇입니까. 종종 들르시는지요.
 
▶진영에는 지금 아무 친척도 살고 있지 않아요. 할아버지 적에 울산에서 진영으로 이사했는데, 고모님이 계시다 돌아가셨어요. 1년에 2~3차례 고향에 들르면 제 문학비나 돌아보고 제 문학을 좋아하는 지인 몇 명을 만나곤 합니다. 주로 부산에서 숙식을 하지요. 고향은 나에게 아픈 소년시절의 기억이 묻힌 만큼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땅입니다.
 
-김해시에 바람이 있습니까.
 
▶김해시가 내 문학비를 세워준 것은 참 고마운 일이죠. 일을 추진한 문인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제 문학비 근처에 '김원일 도서관'이 하나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제 소설의 이야기가 대부분 진영을 무대로 펼쳐지지 않습니까. 도서관이 지어지면 제가 가진 책을 모두 이곳에 가져다 놓으면 좋겠습니다.
 


소설가 김원일은 ──────
1942년 김해시 진영읍에서 태어났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거쳐 영남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66년 매일신문에 '1961·알제리'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1967년 제1회 현대문학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의 축제'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8살에 겪은 6·25전쟁과 아버지의 월북은 40여 년에 걸친 그의 소설 작업을 관통하는 화두로 작용했다. 소설집으로 '어둠의 혼' '오늘 부는 바람' 등과 장편소설 '어둠의 축제' '겨울 골짜기' 등 숱한 작품을 남겼다. 현대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대통령상, 요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등 웬만한 문학상은 죄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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