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당면 안 들어간 것 하나, 들어간 것 곱배기 하나!" 김해시 동상동 전통시장 안 칼국수타운.
총 9곳의 칼국수 가게들 중 유난히 바쁜 곳이 있다. 김해균(44) 씨와 최정희(43) 씨가 운영하는 '손칼국수 1호점'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도 손님은 끊일 줄 모른다. 열 명이 앉으면 꽉 차는 테이블에 다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칼국수 그릇에 고개를 파묻고 먹기 바쁘다. 김 씨와 최 씨는 반죽을 하고 면을 썰고 삶느라 쉴새 없이 움직인다. 그러는 중에도 김 씨는 손님들에게 한 마디씩 농담을 던진다. 김 씨의 농담에 손님들 사이에서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날은 춥지만, 이들의 칼국수 가게에는 훈훈함만이 감돈다.


사실 김 씨와 최 씨가 손칼국수 1호점을 전면적으로 맡은 지는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 전까지 이 가게는 김 씨의 어머니인 임의순(76) 씨가 40여 년 동안 혼자 꾸려오고 있었다. 손님들 중에는 아직도 "원래 하시던 주인 아주머니는 어디 갔습니꺼?"하고 물어오거나 "어렸을 때 먹었던 그 맛이 생각나서 왔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누구나 배고프고 어렵던 그 시절, 임 씨는 "우리 식구들 배라도 안 곯게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칼국수 장사를 시작했다. 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먹는 장사를 하면 가족들이라도 항상 배불리 먹일 수 있지 않겠냐는 목적이었다. 임 씨는 당시 동상시장 근처에 있었던 사충당 담 앞에 자리를 잡았다. 대나무로 기둥을 만들고 비닐로 지붕을 씌운 간이 가게였다.
 
임 씨의 여섯아들 중 막내인 김 씨는, 예닐곱살 때부터 임 씨가 장사를 하는 동안 그 옆에 꼭 붙어있었다. 유치원을 다니지 못했고, 집에는 돌봐줄 사람이 없어 달리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동상시장이 내 놀이터였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사충당에서 뛰어놀고, 시장을 휘젓고 다니면서 자랐지예. 국자로 칼국수 국물을 막 퍼먹다가 어머니께 혼나기도 했고요."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그는 가게일을 돕기 시작했다. 밀가루를 나르고 반죽도 하는 자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어머니를 돕는 일보다, 친구들을 데리고 와 음식을 먹어치우는 일이 훨씬 더 잦았다. 그의 다섯 형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임 씨는 싫어하는 기색 한번 없이 먹성 좋은 남학생들을 다 거둬 먹였다.
 
임 씨의 칼국수는 시장 근방에서 유명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김 씨가 동광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점심시간이면 선생님이 "해균아, 니 어무이 가게 가서 밥 묵고 오고, 올 때 주전자에 칼국수 담아 온나"하고 교내방송을 할 정도였다. 그러면 김 씨는 국물을 가득 담은 주전자와 면이 담긴 그릇을 들고 학교로 쫄래쫄래 돌아갔다.
 
그 후 성인이 된 김 씨는 부산으로 나가 10년 정도 보디빌더 생활을 했다. 그러다 김해로 돌아와 잠깐 직장을 다니다가 8년 동안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때까지도 임 씨는 여전히 칼국수 가게를 하고 있었다.
 
"택시운전을 하다보니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하루는 어떤 여자 손님이 탔는데, 자기가 고생하던 시절에 동상시장에서 칼국수를 자주 먹고 힘을 많이 얻었대요. 그때 칼국수가 이삼백원 할 때 였어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우리 어머니 얘기인기라요. 그래서 '저희 어머닌 것 같네예' 했더니 손님이 눈물을 막 흘리시대요. 어머니가 누구든 배불리 먹이는 걸 하도 좋아하셔 가지고 항상 국수를 넉넉히 주셨지예."
 
▲ 동상동시장 칼국수타운 '손칼국수 1호점' 주인장 김해균(왼쪽) 씨와 아내 최정희 씨가 손님들이 주문한 칼국수를 만들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김 씨가 칼국수 가게를 물려받게 된 데는 아내 최정희 씨의 공이 컸다. 최 씨가 10여 년 전부터 임 씨를 도와 가게를 꾸리기 시작했던 것. 한창 멋부리는 것 좋아하고 힘든 일 싫어할 삼십대 꽃다운 나이였으니, 처음에는 너무 하기 싫다고 많이 울기도 했단다. 그래도 다른 벌이가 없었으니 조금씩 임 씨를 돕고 받은 돈을 생활비에 보태야 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칼국수 만드는 일을 배우게 된 것은 5년 전이었다. 장사하는 데 지친 임 씨가 "장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생활이 넉넉지 않았던 김 씨는 가게를 이어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돈도 돈이었지만, 어머니가 쌓아온 시간이 아깝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김 씨는 "칼국수 장사 하기 싫다"는 아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며 "같이 가게를 꾸려보자"고 부탁했다. 이런 노력 끝에 임 씨가 최 씨에게 육수 끓여내는 방법부터 계절 따라 고명 얹는 법까지 모든 일을 '제대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 2008년, 임 씨는 손을 떼고 이들 부부가 가게를 맡게 됐다.
 
김 씨는 "장사를 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가 물려주신 것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사를 잘 하셨다기보다는 인생을 잘 사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이랑 대화도 많이 하셨지예. 그때는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 1시간씩 손님들이랑 속 깊은 이야기를 하고, 같이 눈물 흘리고 그랬다 하시대예. 집에 돌아오셔서 손님들이 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한테도 들려주시곤 했었는데…."
 
임 씨가 가게를 그만둬야만 했던 것은 일을 하면서 심장도 안좋아지고, 다리에 커다란 하지정맥류도 생겨 수술을 여러 차례 하는 등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김 씨는 "어머니 고생하시는 것도 모르고, 내가 너무 철이 없었다"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어 그는 "아내도 어머니만큼 고생하는 것같아 미안하다"고 털어놨다. 최 씨 또한 하루종일 밥을 한 끼도 못 먹는 날이 대부분일 정도로 바쁘게 일한다. 오전 7시에 면을 끓이며 맛을 보는 것이 아침식사, 손님들이 면을 남기면 먹어보는 것이 최 씨의 점심식사다. 김 씨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집에 가면 저녁이라도 먹으라고 밥을 챙겨 주거나 다리를 주물러 주는 것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하는 도중에도 혼자 서서 일하고 있는 최 씨가 안쓰러운지 내내 곁눈질을 했다.
 
이들 부부는 적어도 60세까지는 칼국수 가게를 계속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재미있게, 행복하게, 건강하게 하고 싶다"며 웃었다.
 
"어머니가 그래 하셨듯이, 저도 손님들한테 재미있는 말 많이 건네면서 계속 장사 해야지예. 우리 가게에서는 국수만 먹고 홀랑 일어서는 손님은 아마 한 명도 없을 낍니더. 왜냐하면 제가 그래 말 한 마디 없이 가시도록 안 놔둘 거거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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