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유시장 무계떡방앗간 네 번째 사장 정인석 씨가 정성스럽게 가래떡을 뽑고 있다. 박정훈 객원기자
"떡이 간이 맞다고들 하세요. 글쎄요, 자주 오시는 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구요."
떡방앗간 안주인의 말에 그렇구나 하고 바로 수긍이 갔다. 습관적으로 음식 맛을 말할 때 맛있다, 맛없다로 표현하기 쉬운데 모든 음식이 그렇듯이 떡도 간이 맞아야 하는 것이다. "떡방앗간 모습은 그 동네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 가게에는 모양도 예쁘고 색도 고운 그런 떡보다는
시루떡, 찰떡, 절편을 찾는 분들이 많습니다." 떡방앗간은 그 동네 사람들을 닮고 있는 것이다.


사람 사는 모습이 변하면서 방앗간의 모습도 바뀌어왔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추수가 끝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방앗간에서 수확한 곡식을 도정하고 빻았다. 말린 곡식은 미숫가루로,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새라 한톨한톨 털고 말린 깨는 고소한 참기름으로, 고춧가루는 겨울부터 이른 봄까지 밥상을 책임져 줄 김장 양념으로 준비되었다. 철철이 찾아오는 명절과 제사, 동네를 들썩이게 하는 잔치상에 올리는 떡도 방앗간에서 준비되었다. 그러니 그 때는 방앗간에 가면 누구네 논이 수확이 좋은지, 어느 집에 제사가 돌아왔는지, 잔치가 열리는 집은 어딘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상의 풍요로움과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모이던 방앗간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을지 궁금했다.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삼각주 평야인 김해평야를 가지고 있는 고장이기에 김해는 방앗간도 많았고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한때 농사를 짓고 사는 동네에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며 그들의 살림살이를 갈무리하던 방앗간은 이제 시장 상가의 한 쪽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방앗간이라는 이름 앞에 '떡'이라는 글자를 하나 더 붙이고 말이다. 곡식을 빻는 것보다 떡을 만드는 일이 더 커진 것이다.
 
장유시장에서 주인이 4번 바뀌었지만 처음의 방앗간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무계떡방앗간(055-314-2257)을 방문했다. 정인석(41) 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떡방앗간에서 9년 간 일을 배운 뒤, 무계떡방앗간을 이어받아 새주인이 되었다. 매달 월급이 나오던 일을 그만두려는 남편을 말리던 부인 김명숙(40) 씨도 떡방앗간 안주인이자 직원이 되었다.

떡방앗간 젊은 부부 주인장보다 떡에 대해 더 훤히 꿰고 있는
할머니 손님들의 얘기 보따리가,
알록달록 예쁘고 고운 떡보다 더 먹음직스러운 시루떡 찰떡 절편이,
떡 익는 냄새 뭉게뭉게 떡시루가 동네 사람들의 삶과 참 닮아 있다 

▲ 정인석 씨와 아내 김명숙 씨가 떡시루 앞에서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뭐, 별다를 게 있겠습니까. 떡방앗간이 다 비슷해요." 정인석 씨 말마따나 기자 역시 처음 취재를 해보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와는 다르게 조금은 주눅이 들고 있을 때쯤, 할머니 한 분이 작은 손수레를 끌고 방앗간으로 들어섰다. 주문한 가래떡 한 되를 찾으러 오신 거다. 설명절 지난 지 이미 오래인데 왠 떡국을 찾으시는지 궁금했다.
 
"우리집 양반이 떡국을 좋아해. 나도 그렇고. 우리는 떡국 자주 끓여 먹어. 밥 만큼 떡국을 자주 먹지. 그래서 두 식구 먹을 떡국거리는 일 년 내내 있어야 되거든. 여기 떡이 맛있어서 내내 사먹었지. 그런데 철이 지나가면 더 이상 만들어 팔지를 않어. 그러니 어떡해. 주문해서 먹어야지." 할머니 이야기가 재미있다. 원래의 취재원인 떡방앗간 부부를 제쳐두고 할머니 옆에 서서 받아쓰기를 하고 싶어졌다.
 
"온 김에 떡 주문 좀 하고 가야겠다. 내일은 집에 손님들이 좀 올낀데, 송편 한 되는 있어야겠다. 그라고 그 다음 날이 제사라, 찰떡이 한 되는 있어야 되겠고." "찰떡 고물은 뭐로 할까예?" "날이 좀 풀맀으니까 노란 콩고물이 안 낫겠나?" 할머니의 주문을 받아 적는 안주인의 손길이 바쁘다. 주문을 하던 할머니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참, 참기름 한 병도 주라. 언제 짠기고? 참기름은 금방 짠 거여야 되는데." 하시며 손수레 안에 떡국 한 되와 참기름 한 병을 얌전하게 놓으신다. 그리고 또 다시 문득 생각난 듯이 "배달도 되나?" 물으신다. "요즘 배달 안 하는 가게가 어디 있습니까. 당연히 해 드리지예." "나는 여태까지 떡 사러 오면서 그것도 안 물어 봤다 아이가. 그라모 인자 여까지 손수레 밀고 안 와도 되겠다. 내일 떡도 집까지 배달해주는기제?" 대동아파트에서 손수레를 끌고 찾아오던 할머니는 반색을 하신다.
 
떡방앗간에서 떡을 만들어 파는 젊은 부부보다, 할머니들이 방앗간이며 떡에 대한 일은 훤히 꿰고 있을 것 같다. 그분들은 나락을 털고 보리를 찧어 밥을 하고, 장정이 안반에 놓인 떡을 떡메로 칠 때 떡을 뒤집고 고물을 직접 묻혀가며 떡을 만든 진짜 수작업 장인들이 아닌가. 그런 분들이 '젊은 사람들이 떡방앗간을 하네' 반가워하고, '떡이 간이 맞다'며 찾아와주니 더 고맙다고 한다.
 
▲ 떡 주문 내용이 빼곡히 적힌 장부.
한 세대 전의 어른들이 하는 말씀은 오래된 대사이지만 식상하지 않다. 잔소리가 아니라 삶이 담긴 따뜻한 참견 같은 거랄까. 그러니 모녀처럼 다정해 보였던 안주인과 할머니의 대화는 김해의 모든 떡방앗간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취재를 하는 동안 떡이 다 쪄졌는지, 흰떡을 덮은 떡보 위로 더운 김이 피어올랐다.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잘 익은 떡을 기계에 넣고는 길게 뽑고, 차지고 쫀득하라고 한 번 더 넣어 뽑아낸 길고 매끈한 가래떡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남편을 대신해 아내는 속마음을 살짝 털어놓는다. "남편이 서른에 떡방앗간 일을 배우겠다고 말했을 때는 당황했죠. 반대도 많이 했구요. 하지만 술도 담배도 끊고, 힘든 일을 하려면 체력도 필요하다고 저녁에는 운동까지 하러 다니는데 말릴 재간이 있어야지요. 지금은 많이 적응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이 배워야지요."
 
토박이보다 더 많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자리 잡고 살아가고 있는 김해. 그러다 보니 새로 이사를 오는 이, 개업을 하는 이들이 이사떡과 개업떡이며 팥시루를 주문하는 일도 많다. 긴 세월 변함없이 떡방앗간을 찾아 오는 세대와 새로운 삶의 모습을 가진 세대가 함께 이용하는 떡방앗간은 세월이 더 흐른 다음 어떻게 변해갈까. 케이크와 빵에 익숙해져 가는 신세대들에 맞추어 새로운 형태와 맛으로 떡이 진화해갔듯이, 떡방앗간도 우리가 사는 모습에 맞추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인터넷에는 떡방앗간 기계를 만들고 있는 회사, 중고로 사고 파는 거래, 고철로 넘기는 사연이 동시에 올라와 있다. 현재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사진 한 장 찍자는 제의에 내내 뒷모습만 보이며 바쁘게 일하던 남편이 아내 옆에 와서 선다. 아내의 어깨 위에 슬며시 손도 올려 놓는다. 떡방앗간 일을 평생 할 일로 결정한 젊은 부부의 모습을 보며, 김해 지역 곳곳에서 영업 중인 떡방앗간들이 자기 동네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도와 모습에 발맞추어 그들의 일상을 풍성하게 하고 축제이게 하는 삶의 공간으로 오래 함께 하기를 바래본다.
 


◆ Tip 속담 속 방앗간과 떡

참새와 방앗간은 왜 항상 붙어다닐까

방앗간과 떡이 우리네 일상과 얼마나 오랫동안 함께 해 왔는지는 속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어느 때, 어디서,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나 그것이 주위 사람들의 마음속에 동감을 얻고 널리 퍼져서 온 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속담이다. 누구나 알아듣는 속담의 주인공이라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삶에 오래도록 함께 해 왔다는 말이기도 하다. 방앗간과 떡은 속담 속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눈치가 참새 방앗간 찾기'(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지나랴'(자기가 좋아하는 곳은 그대로 지나치지 못하는 것을 말함), '참새가 방앗간을 그저 찾아오랴'(목적없는 행동은 없다), '참새가 방앗간에 치여 죽어도 짹 하고 죽는다'(자기의 본성을 쉽게 버릴 수 없다) , '방앗간에서 울었어도 그 집 조상'(집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방앗간에서 조상했으나 형식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라는 의미), '어느 집 방앗간에 겨 한 줌 없겠는가'(설마 그만한 것도 없겠는가). 방앗간 속담에는 주로 참새가 함께 등장한다. 우리 민족이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떡도 떡같이 못 해 먹고 찹쌀 한 말만 없앴다'는 '노력이나 비용만 헛쓰고 손해를 본 것'을 비유한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우연히 온 좋은 기회에 생각하던 일을 해 치운다'는 뜻이고,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일이 제대로 이루지기도 전에 지레 짐작으로 성급하게 서두르는 것'을 경계하는 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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