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실존적 한계를 안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 인류는 생로병사나 전쟁, 기근 등의 재난을 다양한 상징적 형식을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신화나 종교, 문학, 예술, 과학 등 인간이 만든 문화가 그런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들 상징적 형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고전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런 데 있다.
 
고대 한국인이 창조한 신화를 보면 곰이나 뱀, 개구리, 닭, 거북이 나온다. 이들 신화적 동물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거나 빛과 어둠을 가르는 경계적 동물이며, 바다와 땅을 오가는 생태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달동물이라고도 불리는 이들 동물들은 달이 차오르고 이지러지는 것처럼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는 흔히 생로병사, 혹은 삶과 죽음이란 말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태어났다 죽는 인간의 역사적 시간과 관련된 것이다. 역사적 시간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신화에서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인 죽음을 극복하고자 한다. 죽음-재생의 신화적 시간은 기독교의 부활이나 불교의 니르바나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초월하고 싶은 인류의 소망이 깃든 것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봄의 의례를 살펴보면,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을래' 하고 노래하면서 춤을 추면 대왕을 맞이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달동물인 거북이 머리를 감추거나 내놓는 것은 음과 양, 겨울과 봄, 죽음과 재생의 순환을 상징한다. 거북이 머리를 내놓는 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는 것이며, 죽었던 생명이 다시 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그와 같은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가 대왕맞이 의례일 것이다. 고대의 의례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죽음을 극복한 삶을 기뻐하는 고대인의 종교였던 것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향가가 결핍-탐색-해결의 희극적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은 한국인이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인간의 실존적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상여의 연꽃 문양이 귀한 자식을 얻고자 하는 기원을 담고 있는 것이나, 무덤이 탯줄을 지닌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 민족의 문화적 창안이라 할 수 있다.
 
향가를 사뇌가라고도 하는데, 사뇌가는 오늘날 메나리란 말로 바뀌어 전해졌다는 것이 필자의 관점이다. 강원도 아리랑이나 전라도 육자백이에서 잘 느낄 수 있듯이 메나리조는 울음소리와 같은 선율과 창법을 지니고 있으며, 상여소리나 아리랑은 대표적인 메나리조 노래다. 이청준은 〈서편제〉란 소설에서 한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온다며 딸에게 한약을 먹여 눈을 멀게 한다. 이와 같은 소설적 허구는 구슬픈 노래를 즐겨 부르는 한국인의 정서를 한으로 보았기 때문이겠지만, 향가의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소리 메나리는 한의 소리가 아니라 한을 푸는 소리인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김소월은 조선혼을 되살리기 위해 〈초혼〉이나 〈산유화〉 같은 민요시를 쓴 민족시인이지만, 그의 민요시는 전통적인 시의 구조와 달리 결핍된 상태로 시를 끝내고 있다. 한민족의 정서를 한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 생각되지만, 소월시의 비극적 구조는 한국시의 희극적 구조와 다른 것이다. 김소월과 달리 한용운의 시는 님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님이 다시 돌아올 것을 믿고 있다. 전통적인 시의 구조와 일치하는 이와 같은 구조는 한용운이 시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망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을 보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풀이 무성할 것이라고 노래하고 있는데, 이것은 죽음-재생의 신화적 모티프가 윤동주의 무의식 속에서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고대신화의 구조가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대신화를 알면 현대시도 잘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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