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기웃거리다 조그만 책을 만난다. '신화의 역사'. 저자는 카렌 암스트롱. 낯선 이름이다. 책 뒤를 재빨리 훑어본다. 2005년 처음 나와서 2007년 1판 2쇄. 그런대로 괜찮은 책일 것이라 느껴진다. 옮긴이는 이다희. 감수는 이윤기. 옮긴이의 말을 읽으니 이다희는 신화학자 이윤기의 따님이다. 인문학이 조롱거리가 된 시대에 부녀가 함께 신화를 공부하고 번역하고 있다니 부럽고 놀랍다.
 
책 앞의 차례를 보니 신화의 역사를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 초기 문명시대, 기축시대, 탈기축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다. 옮긴이는 무려 1만 2천년 동안의 역사가 서울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두어 바퀴 돌 만한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짧은 분량의 책 속에 담겨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화의 역사를 이렇게 세분해서 살피는 것이 가능한지 놀랍기도 하면서 낯설었고, 내가 잘 모르는 신화를 다루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깨뜨려야 한다. 사람은 그러나 늘 자신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자신의 견해와 다른 글이나 모르는 내용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이런 부정적 감정을 견뎌내야 한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기분으로 책을 천천히 읽는다. 책을 읽으면서 카렌이 다루는 신화가 대단히 방대하며 깊이가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는다. 저자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난다.

카렌 암스트롱. 1944년 영국 위체스트 주 출생. 로마 가톨릭의 성스러운 아기 예수회에 들어가 수녀가 되기 위해 엄격한 수련을 하지만 수녀가 되는데 실패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며 수석으로 졸업하지만 박사학위 논문 통과에 실패한다. 런던대학의 시간강사 생활을 그만 둔 그녀는 생활을 위해 여자 고등학교 교사가 되지만 지병인 간질병 때문에 학교를 떠나게 된다. 실업자 신세로 지내다가 자신의 재능이 글쓰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종교와 관련된 책을 출판하며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된다.

카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녀가 쓴 책을 구입해 읽다가 학생들을 위해 도서관에 그녀의 책을 신청한다. 기독교와 이슬람에 대한 책뿐만 아니라 불교에 대한 책도 있다.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2003년 10월에 첫판 1쇄, 같은 해 11월에 2쇄가 나왔다고 되어 있다. 그녀의 책이 상당히 인기가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 자신의 전공에 갇혀서 지내다 보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는다.

카렌은 자신의 수녀원 체험을 통해 붓다의 인간적인 삶과 깨달음을 탐구하고 있다. 죄의 문제. 그녀는 깨어 있는 마음을 훈련하는 것은 신경증적인 내성과 다르다고 말한다. 붓다의 체계에서 폭력, 거짓말, 도둑질, 음주, 성교 등과 같은 행동을 금지한 것은 그것이 죄이기 때문이 아니라 깨달음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의 약점을 닦아세우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 본성을 다듬는 것에서 나온다는 카렌의 지적은 불교를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카렌은 여성이 바라보는 불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오른손으로 땅을 짚는 붓다의 자세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에 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고타마가 마라(죽음의 신이며 붓다의 유혹자)의 황폐한 남성주의를 거부했음을 상징할 뿐 아니라, 붓다가 사실상 세상에 속해 있다는 심오한 주장을 담고 있다." 나는 왜 이런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을까? 남자라는 사실이 나를 남자의 틀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카렌의 책에 대해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한 것은 아닐까? 카렌의 책을 자신의 방식대로 읽고 싶은 사람을 위해 나는 그만 입을 다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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