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의 맛은 벼린 칼끝에서 나온다. '벼린 칼끝'은 요리사의 오랜 수련과 철학의 결과물이다.
더불어 칼을 다루는 일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직업이다. 순간의 방심은 생선회의 맛을 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몸을 버리기도 한다. 따라서 생선회를 오래 다룬 요리사들은 때로는 날카로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뚝뚝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을 헤아리다 보면 웅숭깊은 맛을
발견하게 된다. 생선회의 맛 또한 그런 요리사의 품성을 닮는다.


▲ 삼계동 파도횟집 임형민 대표가 도다리와 감성돔, 볼락을 담은 회 접시를 내오고 있다.
조사 시기나 기관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해도, 한국인이 선호하는 외식메뉴 조사 결과들을 보면 돼지고기 요리, 생선 및 해물요리, 소고기 요리가 항상 선두를 차지한다. 동네방네 고기집과 횟집이 넘쳐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난 14회 까지의 <김해뉴스> 맛면에서 다룬 음식을 살펴보니 이런 음식이 전혀 없다. 슬슬 데스크에서 '대중성'에 대한 권유와 압력이 들어올 시점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은 고기집이나 횟집도 좀 추천해달라는 독자들의 요구 또한 적잖이 들려온다.
 
그런데 김해에서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다루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우선 김해에는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에서는 유일하게 도축과 가공, 경매가 일괄적으로 처리되는 공판장이 있다. 그것도 두 곳이나. 더불어 양돈과 축산 농가의 비율 또한 높다. 생산과 유통기지를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비량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김해에서 섣부르게 '고기맛'을 논하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축산농가-공판장-음식점을 두루 살펴야 했다. 그러던 와중에 '구제역 사태'가 벌어졌다.
 
고기집을 다루는 것을 잠시 미룬다면, 우선은 횟집이라도 소개해야 할 것 같았다. 마땅한 횟집을 발견하지 못해 주변에 추천을 부탁했다. 추천 받은 몇 곳 가운데 유독 관심을 끄는 집이 있었다. 취재 동의를 구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오시는 것은 상관 없지만, 취재라고 특별히 준비해 드릴 것은 없습니다."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였다. '이집이다!' 싶었다.
 
삼계동 롯데마트 뒷편 후미진 곳에 위치한 파도횟집. 이름도 식상한데 원색으로 알록달록 꾸며논 간판이며 외관은 더 식상하다. 보통은 가상(家相)만 봐도 음식의 격(格)이 짐작되기 마련인데 이집은 짐작은커녕 선택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왕 나선 걸음, 맛은 봐야겠다 싶어 자리를 잡았다.
 
회가 나오기에 앞서 10여 가지 전채부터 깔렸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하나같이 생기가 돈다. 풋콩은 솜털이 보송보송 살아있고, 게불은 쉼 없이 꿈틀거리고, 멸치회무침의 멸치는 탄력이 제법이다. 재료가 신선한 까닭이다. 아귀튀김이나 도다리로 끓인 미역국은 별미라 해도 좋을 만큼 각별하다. 특히 참가자미나 도다리가 물이 안좋을 때는 아예 내지 않는다는 미역국은 깊고도 단맛을 낸다. 여느 횟집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젓가락이 고르게 바삐 움직이는 걸 보니 어느 것 하나 허투르게 만들지 않았다.
 
잠시후 요리사인 임형민(42) 대표가 자연산 회 한 접시를 들고 들어 온다. '포'와 '세꼬시'로 나눠 뜬 도다리에 감성돔과 볼락 등 세 종류의 생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의 밀도로 봐서 그리 씨알이 굵은 녀석들은 아니지만 일단 땟깔이 곱다. 회 접시를 내려 놓는 임 대표에게 잠시 포즈를 취해 주십사 부탁하고 사진 몇 컷을 찍고 나니, "일단 드십시오. 저는 음식으로 말합니다" 하고는 휑하니 나가버린다.
 
슬슬 오기가 생겼다. 대단한 친절을 바란건 아니지만 상대가 저렇게 나오면 이쪽에서도 마음 단단히 먹을 수밖에 없다. 회를 뜬 상태를 뚫어지게 쳐다 봤다. 날이 살아있고 결을 제대로 읽었다. 생선회의 맛을 흔히들 '칼맛'이라고 한다. 칼 솜씨가 서투르면 회의 가장 자리는 뭉개지고, 칼날이 무디거나 속도가 더디면 세포가 망가진다. 이러면 육즙은 온데간데 없고 제맛을 내지 못한다. 또한 생선에는 저마다의 결이 있다. 이 결을 적당한 선에서 끊어 주지 않으면 질기기만할 뿐 각각이 가진 질감을 느낄 수 없다. 생선을 결대로 썬다는 것은 결국 결을 죽여 맛을 살리는 방편이다. 도다리는 고소한 맛과 감칠맛이 적당히 조화를 이루고, 감성돔은 찰지고 기름지며, 볼락은 씹을수록 단맛이 돈다. 각각의 생선이 가져야될 질감과 맛을 온전히 살리 셈이다. 뭐 이만하면 어지간한 무뚝뚝함 정도는 이해할 수밖에 없다.
 
여느 요리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일식요리 혹은 생선회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사를 평가하는 기준에는 실력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장보기'다. 직접 시장을 보지 않는 요리사는 신뢰하기 어렵다. 자신의 경험과 감각으로 좋은 재료를 선택함은 물론이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계절감을 요리를 통해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장을 보는 임 대표의 요리는, 그래서 계절과 시장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이런 그에게는 한 가지 독특한 원칙이 있다. 고기집이나 횟집 등 살아있는 재료를 다루는 음식점에서 항상 논란이 되는 부분은 단골과 비단골의 차별이다. 단골에게는 싱싱하고 좋은 것을 내고 비단골에게는 못한 음식을 내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쉽게 결론날 것 같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임 대표는 명쾌하게 말한다.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시장은 그날 나갈 양 만큼만 봅니다. 단골 비단골 가리지 않고 그 순간에 가장 좋은 재료를 먼저 냅니다." 적어도 파도횟집에서는 타이밍이 문제일뿐 단골이 아니라 해서 질이 떨어지는 음식을 먹을 염려는 접어도 좋을 듯 싶다.
 
음식도 그렇고 요리사도 그렇고 화려하고 사근사근하지는 않지만 웅숭깊은 맛이 난다. 누가 김해 출신 아니랄까봐 그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어딘가 김해 사람들의 기질과 맞닿은 부분이 많아 보인다.


■ 생선회에 대한 궁금증 몇 가지
 
생선회가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외식 메뉴이긴 하지만, 정작 생선회에 대한 정보도 제 각각이고 맛의 기준 또한 천차만별이다. 이에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보기로 했다. 최홍석(36)씨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전문가다. 2007년 블로그(http://hongn1.blog.me)를 시작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연속으로 맛집분야 네이버 파워블로그로 선정됐다.  

-활어회, 선어회, 숙성회의 차이는?
활어회는 살아있는 생선을 바로 잡은 것을, 숙성회는 활어회를 4~10시간 정도, 선어회는 10시간~3일 정도 숙성 시킨 것을 말한다. 한국인이 즐겨먹는 활어회는 적당한 탄력과 차진 식감을 즐기는 방식이다. 숙성회는 사후경직으로 인한 육질의 탄력 증가와 이노신산의 증가로 인해 맛이 짙어진다. 특히 생선은 사후 10시간부터 이노신산의 분비가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에 숙성회는 쫄깃한 식감이 떨어지는 대신 감칠맛이 강한 특징이 있다. 일본인들의 경우 선어회를 선호하고, 씨알이 굵고 지방이 많은 생선일 수록 선어회가 제맛을 낸다.
 
-생선회는 무슨 맛으로 먹는가? 혹은 맛있는 생선회는 어떤 맛인가?
개인에 따라 기호가 다르기 때문에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맛있는 생선회의 최고봉은 역시 제 철에 잡힌 싱싱한 횟감이 으뜸이다. 사계절 맛이 비슷한 양식 횟감일 경우는 횟집 수족관에 오래 머물지 않은 신선한 횟감이 좋다.
 
-좋은 횟집을 선택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면?
활어집의 경우는 수족관을 제일 먼저 살핀다. 시장에서 야채를 고르듯 선도를 보는데, 생물은 뭐든 신선해야 제 맛이다. 자연산 어종의 경우는 신선도와 더불어 조업지역을 따지는 편이다. 같은 광어라도 동해, 남해, 서해산이 다르다. 어종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찬물에 사는 생선과 물살이 쌘 지역에 사는 생선이 더 맛있는 편이다.
 
-양식과 자연산은 가격 차이 만큼이나 맛의 차이가 큰가?
맛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만 반드시 가격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자연산 횟감의 경우 계절에 따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제 철이 아닌 자연산 보다는 잘 키운 양식 횟감을 선택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특히 제주산 양식 광어나 일본산 양식 참돔이나 돌돔의 경우, 자연산에 비해 전혀 떨어지지 않는데다가 사계절 일정한 맛을 유지한다.
 
-바야흐로 봄이다. 앞으로 횟감으로 좋은 생선으로는 뭐가 있나?
봄 하면 도다리를 최고로 꼽지만 그건 잘못된 상식이다. 봄철 최고의 횟감은 역시 참돔이다. 다음으로 멸치, 보라성게알, 주꾸미, 알베기 암꽃게, 볼락 등을 추천할만 하다. 자연산 광어의 경우 지금부터가 산란기라 출하량도 많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그리 맛있는 편은 아니다. 차라리 좀 더 따뜻해지는 초여름이 좋다.

▶메뉴:자연산모듬회(6만원~12만원), 모듬회(4만원~10만원), 점심특선(1만2천원)
▶주소:경남 김해시 삼계동 1458-2
▶연락처:055-313-4350

 



박상현 객원기자
사진촬영 = 박정훈 객원사진기자 punglyu@hanmail.net
도움말 = 최홍석 맛집 네이버 파워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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