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대 여의각 뒤 대나무 숲이 바람에 이스스~ 흔들린다. 그 차가운 겨울바람은 점집골목을 휘젓듯 돌아다니다, 점집 대문 앞 댓가지에 똬리를 틀고 앉는다. 댓잎들이 바람에 조응하듯 수런대며 흔들린다.
 
봉황대 일대 '점집골목.' 산통(算筒)을 쥐고 흔드는 손이 가늘게 떨린다. 한때는 세상 모든 일이 그의 손에서 짚어지고, 산가지(算木)의 점괘대로 사람들의 일생이 뚜르르 꿰였으리라. 그래도 한 시절 천상대장군이나 옥황선녀 등을 몸주로 모시며, 그 위엄과 기개가 대단했을 터이다.
 
▲ 봉황동 일대에 자리잡은 점집 골목. 전국에서 유일하게 집단화돼 있어 김해시로서는 아주 가치 있는 전통 문화 및 관광 자원이다.

이제 일흔을 바라보는 세월. 젊은 무속인들이 인터넷이니 홈페이지니 하며 광고해대는 행사가, 짧은 식견으로 인기에 영합하는 것만큼이나 마뜩찮은 요즘이다. 이제 두어 평 남짓의 점집에서, 서민들의 안타까운 사연 들어주며 다독여주는 일만으로도 버거운 세월이다.
 
한때 영점(靈占) 잘 치던 연로한 점술인을 찾아 신년운수를 보던 차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것이 허허롭고 공허하다. 산통마저 무겁게 느껴지는 그의 육갑(六甲) 짚는 손이 흔들린다. 그나마 남향의 유리창으로 들어온 따사로운 햇볕이, 그를 동무해 주기에 다행스럽기는 하다.
 
봉황동 '점집골목'에는 점(占)을 치는 점집이 거의 30여 곳 넘게 자리 잡고 있다. 봉황대를 중심으로 동쪽과 남쪽으로 띠를 두르듯 올망졸망 밀집해 있는 것이다. 김해대로 2273길에서 2325길 일대의 골목이다. 범위를 좀 넓히면 분성로 쪽과 호계로 쪽도 여러 점집들이 산재해 있다. 이들까지 합친다면 김해 원도심에만 50여 집을 훌쩍 넘기는 숫자이다.
 
▲ 볼록거울에 비친 점집골목 풍경.
스쳐지나간 시대와 새로 다가올 시대가 교차하고 머무르는 봉황동 '점집골목.' 점을 보려면 으레 '당산 밑으로 가봐라' 할 정도로 김해의 대표적 점집 골목이다. 경남에서도 점괘가 용하기로 소문이 난데다, 많은 수의 점집에서 다양한 점풀이로 점괘를 맞추다보니, 그 유명세가 가히 전국적이다.
 
○○도사, ○○선녀, ○○보살, ○○장군 등, 모두들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神)의 이름을 간판에 내걸었다. ○○천신당, ○○산신궁, ○○철학관…. 제 상호를 써놓은 유리문이 덜컹덜컹 겨울바람에 속절없이 흔들린다. 그래도 연초라서 그럴까? 점집골목에 제법 온기가 돈다. 곳곳에서 점 보러 온 사람들이 드나드는 듯하다.
 
그런데 이 점집 골목이 왜 봉황대를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것일까? 원래 봉황대는 가락국 시대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는 '당산'이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위는 예부터 우리민족 고유의 전통무속신앙인 셈이다. 따라서 봉황대는 김해에서 가장 '천기를 잘 받는 곳'이고, 그렇기에 봉황대 주위로 무속인들이 널리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봉황동 점집골목의 기원을 회현리 패총의 '복골'에서 그 근원을 찾고 있다. 점을 칠 때 사용하던 동물의 뼈 '복골'이 선사시대 패총에서 출토됨으로써, 봉황대 주변에 산재해 있는 점집과의 상관관계를 유추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골목은 다른 곳과 달리 점치는 방법들이 아주 다양하고 세분화 되어 있다. 모든 점을 총망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점을 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가 있다. 점쟁이가 자기 몸에 죽은 사람의 넋을 실어 그가 하는 말을 전해주는 신점(神占)과 신의 뜻을 쌀이나 엽전 등 물건에 나타나게 하여 그 모습으로 점을 치는 영점(靈占), 그리고 점책을 풀어 점을 치는 역점(易占)이 그것이다.
 
이곳에서는 이 세 가지 점을 모두 볼 수 있어, 점 보는 이의 선택의 폭이 꽤나 넓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자그마한 점집 앞에는 욕심스럽게도 사주, 신수, 궁합, 택일, 병점, 신병, 산소택, 관재, 사업, 매매, 시험, 해몽, 이사 등 숨 가쁠 정도로 점의 내용을 가득 써 놓았다. 인간사 힘들고 불안한 일들은 모두 해결해 줄 태세이다.
 
점집 골목을 돌아다니다 이 골목을 품고 있는 봉황대에 오른다. 패총전시관 사이로 난 길을 오르다 보면 임호산이 뒤로 삿갓처럼 크게 서 있고, 그 옆으로 드넓은 김해평야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앞으로는 분성산과 만장대가 가까이 눈에 들어오고, 왼쪽으로는 경운산 능선이 소 잔등처럼 길게 누웠다. 이렇듯 작은 구릉이지만 옛 가야국 땅이 훤히 다 조망되는 '가야의 요지'가 봉황대이다.
 
▲ 봉황대는 가락국 시대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낸 천제단이 있는 곳이어서 인근에 점집이 많다.
이 봉황대를 중심으로 점집들이 마치 봉황대를 호위하듯,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을 우러르듯, 당산 밑으로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이곳의 기도영험에 날이 서 있으리라.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의 민간신앙은 미신이니 무속이니 하며 불신과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고대종교로서의 지위를 빼앗긴 채 무속형태로 남아있는 점집들은, 이제 세월의 뒤안길에서 그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선사시대 때부터 우리 민족의 정신생활을 지배해 오던 민간신앙의 갈래인 무속(巫俗)신앙. 요즘 이들의 '태'나 '짓'을 우리 전통문화의 범주에 포함시키고자 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이타적인 행위와 각 지역의 전통 굿을 우리 민속으로 보존, 계승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전국에서도 유일하게 집단화되어 있는 '봉황동 점집골목.' 게다가 이 골목이 대체적으로 양호하게 보존되고 있기에, 김해시 입장에서는 아주 가치 있는 전통문화자원이다. 경멸과 멸시의 대상으로, 또는 미신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나 귀중한 관광민속자원인 것이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이 '점집골목'을 잘 보존하고 활용한다면,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점바치 관광타운'이 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광형 행사지원 및 보존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우선 전국의 대표 굿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민속 굿 한마당을 여는 것은 어떨까? '전국 민속 굿 한마당' 쯤으로 이름을 붙여, 전국의 내로라하는 굿을 한데 모아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굿판을 한바탕 놀아보게 하는 것이다.
 
전라도 씻김굿, 동해안 별신굿, 황해도 작두굿, 경기도 도당굿, 평안도 다리굿, 한양 12거리 등 다양한 전국의 굿이 모여 김해의 새로운 무형문화행사로 가꾸어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점집골목'을 전통문화거리로 지정하여 봉황동 입구 점집골목 초입에 특화거리 아치를 설치하는 방안, 점집 간판 및 관련 설치물을 통일하고 각 점집의 특징(산통, 엽전, 작두, 점책 등의 도구)을 세련된 디자인으로 부각시키는 도시디자인 적용, 점집골목을 관광코스화 하기 위해 봉황대와 점집골목을 주제로 한 벽화 설치, 시티투어에 점집 체험 코스 추가 등 김해의 독특한 전통민속문화로 적극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점(占). 이제는 음지의 미신에서 양지의 전통민속문화로 계승, 발전시켜야 할 적기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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