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오랑 선배님!
 

▲ 국회의원 민홍철
군사반란군이 조국을 향하여 쏘아대던 총탄을 선배님께서 온 몸으로 안고 가신 지도 벌써 서른다섯해가 지났습니다. 그 날이 억울하고 분통하여 아직도 두 눈을 감지 못하고 계실 선배님께 갑오년 새해 인사를 드리고 반가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띄웁니다.
 
1979년 그날, 선배님은 육군 소령으로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을 맡고 계셨지요. 그 해 12월 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 세력의 지시를 받은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이 부대원들을 동원해 정 사령관을 체포하려 할 때, 선배님께서는 결연히 맞서다 여섯 발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산화하셨지요. 당시 특전사령부는 반란군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정통 정부를 수호할 수 있는 유일한 군대였고, 정 사령관은 그 정점에 있는 지휘관이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누란의 위기에 서 있었고 특전사령부는 마지막 보루였던 것이지요. 선배님께서는 그 마지막 보루를 지키다가 조국의 품에 안긴 것이었습니다.
 
'군인은 죽어서 말한다'고 하였듯이 선배님께서는 죽음으로 군사반란의 반역사성을 증언하셨지만, 반란군의 위세에 눌린 당시의 현실은 그 숭고한 외침을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행은 이어서 오는 것인지, 홀로 남은 선배님의 부인 백영옥 여사께서는 선배님의 억울한 죽음을 바로잡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시다 불의의 사고로 선배님 곁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선배님께서 그 동안 얼마나 한스러운 세월을 구천에서 보내셨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조국의 안보에 총탄을 난사하고 권력을 침탈하였던 반란세력들은 그날 이후 무공훈장을 어깨에 둘러메고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유린하여 왔습니다. 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을 거쳐 군사반란이라고 역사적 단죄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그들은 반성하지 않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일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진실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국민들에 의하여 바로 잡힙니다. 선배님께 훈장을 추서하고 추모비를 건립하자는 결의안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선배님이 보여주신 조국 수호 의지와 참군인의 뜻을 대한의 젊은이들에게 널리 알리자는 게 취지였습니다. 군사반란 세력들의 보이지 않은 방해로 결의안이 두 차례나 좌절되었다가, 이번에 다행히 제가 대표 발의한 결의안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이 흔쾌히 뜻을 같이 해준 덕분이었습니다.
 
정부는 지난 14일 선배님께 '보국훈장 삼일장'을 수여하기로 공식 결정하였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에 대해 국가가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하겠지요. 이제야 선배님의 숭고한 군인 정신과 희생 정신을 대한민국이 인정했다는 것이지요.
 
추모비 건립은 진행 중입니다. 건립 장소에 대해 국방부가 고민하고 있지만 어디에 건립되든 국가가 건립해 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선배님, 이제 두 눈을 편히 감으시고 고이 잠드셔도 될 것입니다. 저희들은 할 일이 더 남아 있습니다. 그 날 선배님과 함께 순직한 군인들, 특히 병사들은 아직 올바른 명예 회복과 예우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일은 살아 있는 저희들의 몫입니다. 선배님, 대한민국의 역사는 영원할 것입니다. 선배님의 참 군인 정신도 만고에 빛날 것입니다. 선배님의 뜻은 다시는 이 땅에 군사반란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그 동안 힘써온 '참군인 김오랑 기념사업회' 김준철 사무처장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선배님의 고귀한 교훈을 깊이 새기고 길이 보전하기 위하여 앞으로 더 노력할 것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 항상 함께하여 주십시오.
 
선배님, 날씨가 참 춥습니다. 그래도 봄은 오겠지요. 35년 전의 그 날도 오늘처럼 추웠겠지요. 이제 선배님에 대한 역사적 봄은 왔습니다. 국민과 국군은 선배님의 숭고한 희생 정신을 길이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선배님 이제 안심하고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2014년 1월 22일 국회의원 민홍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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