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로왕릉 앞에 있는 연신루.
이제는 김해의 가장 중심이었던 김해읍성 안으로 간다. 처음 만날 곳은 김해 행정의 중심으로서 부사가 고을의 일을 처리하던 김해부 동헌(東軒)이다. 동헌은 김해읍성의 서문에 가까운 지금의 서상동(西上洞)에 있었다. 지금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다음은 조선조 전기 시인 홍성민(洪聖民·1536~1594)의 것이다.


산빛은 예로부터 푸르렀으니 
숲속의 꽃은 몇 번이나 붉었던가 
바람과 안개 일부러 그런 것 아닌데 
처연한 마음 속에서 저절로 일어나네

삼차강과 칠점산은 저쪽 밖 
둘러진 산천에 붉은 누각 하나 
생학이 때때로 목매고 
저 아득한 속에 구름 어린 창  

山色古來碧(산색고래벽)
林花幾度紅(임화기도홍)
風烟非作意(풍연비작의)
悽感自由中(처감자유중)

三叉與七點(삼차여칠점)
襟帶一樓紅(금대일루홍)
笙鶴時時咽(생학시시열)
雲窓縹緲中(운창표묘중)

 

 
<홍성민, 차김해동헌 고조운(次金海東軒 高祖韻)>  


홍성민은 한때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를 지냈던 고조부 홍경손(洪敬孫·1409~1481)의 시를 차운하고 있다. 첫 번째 시에서 그는 고조부를 추억하고 있다. 고조부가 왔던 이 자리에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오니 자연스럽게 그에 대한 감회가 떠올라 처연해진다는 표현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시에서는 김해의 대표적인 경관인 삼차강과 칠점산을 배경으로 솟아 있는 동헌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남쪽 나라 산하는 형승을 모았구나
높은 성 흐릿한데 탑은 우뚝하여라
가야금과 제비는 자줏빛에 빛나고
밝은 들 흐릿한 꽃은 푸른빛에 비치네
연못 풀에 빠진 혼 봄비 흐리고
옥매에 놀란 피리 해질녘 강에 걸쳤네
석 잔 술에 씻어질 듯 맑은 시름 다하니
석양에 한껏 취하여 깨고 싶지 않구나 

南國山河摠勝形(남국산하총승형)
高城隱隱塔亭亭(고성은은탑정정)
繞梁語燕光飜紫(요량어연광번자)
照野烟花暈倒靑(조야연화훈도청)
塘草迷魂春雨暗(당초미혼춘우암)
玉梅驚篴暮江橫(옥매경적모강횡)
三盃擬洗淸愁盡(삼배의세청수진)
沈醉斜陽不願醒(심취사양불원성) 

 

 
<홍성민, 次東軒韻(차동헌운)>  


동헌에서 바라보는 김해의 역사와 풍경을 읊고 있다. 직접 보이는 것은 김해의 가장 오래된 상징 가운데 하나인 제비루, 즉 연자루(燕子樓)이며, 가야를 상상하는 시인의 시청신경에 느껴지는 것은 가야금이다. 옥매화(玉梅花)가 피고 피리 소리가 저 멀리 황혼의 강 너머까지 울리니 술에 취한 듯, 가락국의 역사와 풍광에 취한 듯 시인은 깊이 젖어들고 있다. 그는 같은 제목으로 또 한 수를 읊고 있으나 다음에 감상하기로 하자.
 
▲ 동상동의 연화사. 김해객사가 호계 주변의 아름다운 누정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터이다.
다음은 지금의 김해시 동상동(東上洞)의 연화사(蓮華寺) 자리에 호계(虎溪) 주변의 아름다운 누정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었던 김해객사(金海客舍)로 간다. <동국여지승람>에 객관은 정통(正統) 계해(癸亥·1443)년에 부의 관청 건물과 함께 화재로 소실되자 당시의 김해 부사 박눌생(朴訥生·1374~1449)이 중건하고 안숭선(安崇善·1392~1452)이 기문을 지었다고 하였다. 고려 말 전녹생(田祿生·1318~1375)은 그의 문집 <야은일고(壄隱逸稿)>에 '정당(政堂) 김득배(金得培·1312~1362)가 김해 객관에서 시를 읊어'라고 하였는데, 다음의 시가 그것이다.


분성에 와서 관리 노릇한 지 스무 해 전
당시의 어른들은 반이나 티끌 되었네
서기로부터 시작해 원수가 되었나니
손가락 꼽아보자 지금까지 몇 명이었나  

來管盆城二十春(래관분성이십춘)
當時父老半成塵(당시부로반성진)
自從書記爲元帥(자종서기위원수)
屈指如今有幾人(굴지여금유기인)

 

 
<김득배, 제김해객사(題金海客舍)>  


김득배는 20년 전 김해에서 관리로 근무하였다고 했으니, 1337년경 그는 전녹생이 그러했듯이 마산 합포(合浦)에서 근무하였다. 이후 그는 원수(元帥)인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었으나, 마지막에는 간신 김용(金鏞·?~1363)의 모함에 연루되어 효수(梟首)를 당하였다. 20년 전 당시 만났던 많은 이들이 돌아가신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한편 원수가 된 사실에 스스로도 놀랍다는 듯이 표현하여 세월과 인생의 무상함을 표현하였다. 그의 인생을 보면 이것은 김해의 당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다음은 이보다 500년이 지난 조선조 말 허전(許傳·1797~1886)의 시다.


김해는 옛 수도요
수로 신령께선 우리 집안 선조
연대가 선통기와 같고
후손은 무수하여 항하사 같구나
구산의 진산 북쪽 하늘이 험요처 마련했고
명해가 남쪽을 경계 지어 땅이 끝 닿았네
회로당과 초선대 남은 터가 있고
지금은 가을 대가 봄꽃과 더불어 있네

盆城自是舊京華(분성자시구경화)
首露神靈肇我家(수로신령조아가)
年代有如禪通紀(연대유여선통기)
雲仍無數恒河沙(운잉무수항하사)
龜山鎭北天成險(구산진북천성험)
鳴海經南地盡涯(명해경남지진애)
會老招仙遺址在(회로초선유지재)
秖今秋竹與春花(지금추죽여춘화)

 

 
<허전, 차분성관판상운(許傳, 次盆城舘板上韻)>  


▲ 김수로왕을 비롯해 조상의 제의 때 마을 원로들이 모여 음복하던 부속건물 회로당.
허전은 김해 객관의 모습보다는 김해에 들어서서 느낀 자신의 감회에 대해 읊고 있다. 김해는 가락국의 수도였으며, 그의 선조인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탄강한 곳이다. 그는 이들이 이루어낸 가락국의 역사가 대단히 깊음을 선통기와 같다고 하고, 후손들이 대단히 번성하였음을 항하사(恒河沙)라고 하였다. 선통기는 중국 역사서 <춘추(春秋)>의 위서인 <춘추위(春秋緯)>에서 중국 고대의 역사를 구두기(九頭紀), 오룡기(五龍紀), 섭제기(攝提紀), 합락기(合雒紀), 연통기(連通紀), 서명기(序命紀), 수비기(脩飛紀), 회제기(回提紀), 선통기(禪通紀), 유흘기(流訖紀) 등 열 개로 구분한 시대 가운데 하나다. 항하사는 인도 갠지스강의 모래라는 뜻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수다. 시인은 주를 달아 '회로(會老)는 당의 이름이고, 초선(招仙)은 대의 이름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두 곳을 강조한 것 또한 초선대 또는 초현대가 김수로왕의 왕통을 이은 아들 거등왕(居登王)과 관련되어 있고, 회로당 역시 김수로왕의 제례(祭禮)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에 회로당은 '성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으며, 홍치(弘治) 신해(1491)년에 고을 원로들이 건립하였다'고 하였다. 원래 유향소(留鄕所)로서의 기능을 하였던 곳으로, 향안(鄕案)을 보관하고 삼향임(三鄕任·좌수·좌별감·우별감)이 상시근무하던 청사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김수로왕의 후손이기도 한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회로당기>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워낙 긴 글이라 여기서는 전체를 모두 인용하지 않고 요약해서 살펴보자. 이 당의 이름을 회로라고 한 것은 고을 원로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지역의 원로들은 이곳에 모여서 술을 마시거나 활을 쏘고 법도를 강습하는 한편, 고을의 옛 풍습을 이어나가고 고을 사람들의 풍속을 순후하게 하는 데 앞장서는 노력을 하였다. 아울러 김수로왕을 비롯한 조상의 제의(祭儀) 때 모여서 음복하는 등 부속 건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당은 성의 북쪽에 있는데, 10년 동안 김순손(金順孫)이 오래 전에 빈 집으로 남아있던 것을 옛날에 있던 곳에 새로 세웠다.
 
김일손은 기문의 끝에 당시 모인 원로들과 함게 불렀던 연신가(延神歌)를 얹어두었다.


붉은 끈 땅에 드리워
그 전통이 면면하였소
구간이 주장 없어
하늘에서 떨어졌다오
바다 위에 나라 정하여
4백 년을 드리웠소
편호에 사는 백성
모두가 그 자손들
세시되면 제사 올려
부로들이 모여들었소
신령한 까마귀 울어 흩어지자
거친 언덕엔 고목 뿐
변두는 고요하고 아름답고
서직은 향기롭소
퉁소와 북 울리니
보도 듣도 못하건마는
신은 구름인 양 오시리다
술 취하고 배불러 양양히 내리시니
어찌 우리 백성에게 복을 아끼리오
우리 백성 복을 받아
즐기고 평안하였다오
학발이 삼삼하고
구장이 장장할 제
춤과 노래 해마다
길이길이 쉬지 않으리

紫纓墮地兮 (자영타지혜)
垂統綿綿 (수통면면)
九干無主兮 (구간무주혜)
有隕自天 (유운자천)
海上定鼎兮 (해상정정혜)
垂四百年 (수사백년)
編戶居民兮 (편호거민혜)
晜雲遠孫 (곤운원손)
歲時報事兮 (세시보사혜)
父老駿奔 (부로준분)
神鴉啼散兮 (신아제산혜)
古木荒原 (고목황원)
籩豆靜嘉兮 (변두정가혜)
黍稷其芬 (서직기분)
簫鼓鳴兮 (소고명혜)
不見不聞 (불견불문)
神之來兮如雲(신지래혜여운)
醉飽洋洋兮 (취포양양혜)
何不福我元元(하불복아원원)
我民受賜兮 (아민수사혜)
於以樂康 (어이락강)
鶴髮鬖鬖兮 (학발삼삼혜)
鳩杖鏘鏘 (구장장장)
歌舞年年兮 (가무년년혜)
其永無疆 (기영무강)

 

 
<허전, 차분성관판상운(許傳, 次盆城舘板上韻)>  


김수로왕신의 내력을 소개하고, 원로들이 모여 회로당을 새로이 결성한 것에 대해 고유(告由·중대한 일을 치른 뒤에 그 내용을 사당이나 신명에게 고함)하는 한편 후손들이 누릴 만대의 복을 기원하는 뜻이 잘 표현되어 있다. 지금 김해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엄경흠 부산 신라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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