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만 명을 넘어선 김해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시다. 역동적인 김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뿌리는 도시화 이전에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자연마을'에 닿아 있다. 수백 수십 년에 걸쳐 시간의 퇴적물로 생겨난 자연마을들은 김해의 원형질과 같다."

<김해뉴스>가 지난 2011년 11월 23일 '김해의 뿌리-자연마을을 찾아서' 연재를 시작하면서 왜 이 기사를 싣는지 설명한 글의 일부다. 앞으로 10~20년 뒤면 사라지거나 변하게 될 김해의 현재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게 취지였다. 그동안 소개했던 자연마을 100곳 가운데 자연마을들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몇 곳을 다시 살펴본다.

▲ <김해뉴스>는 지난 2011년 11월 23일부터 지난 17일까지 김해의 자연마을 100곳을 소개했다. 사진은 1회 '진례면 시례리 상촌마을', 50회 '장유면 응달리 용곡마을', 100회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을 소개한 신문 지면.

마을마다 오늘을 있게 한 역사의 비밀
개발에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실 담아
도시화 이전의 뿌리로부터 근원 찾아내

"사람들은 장유 무계리 만세운동이 대단했다는 것만 기억하지, 그 시작이 범동포마을이라는 것은 몰라. 마을 앞이 강이었고, 주변은 온통 갈대였어. 혹시 일본경찰이 들이닥치면 갈대에 몸을 숨겨 배를 타고 달아날 수 있도록 범동포에서 만세운동을 계획했던 거야."

자연마을 취재를 다니면서 여러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기자의 마음도 두근두근했다. 장유 신문동 범동포마을의 이상용 마을노인회 회장은 마을 앞 포구에 드나들었던 큰 배의 모습까지도 세세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회장은 "김해의 마을마다 역사가 없는 마을은 없다. 이제는 자기 마을 이름의 뜻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마을의 역사를 들려줄 어르신들은 다 세상을 떠났다"고 아쉬워했다. 기록으로 남아있든 남아있지 않든 김해의 자연마을들은 오늘날 김해를 만든 비밀스러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삶을 위해 마을이 조금씩 바뀌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공장이 들어서는 바람에 별안간 바뀌어버린 마을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한림면 퇴래리 퇴은마을은 옛 모습을 가장 많이 잃은 마을이었다.

퇴은마을은 원래 영남지방에서도 유명한 마을이었다고 한다. 수로왕릉 숭전전의 김병진 참봉이 이 마을 출신이다. 그는 "영남지방에서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문중마을 8곳을 일러 '영남팔명촌'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퇴은마을이 으뜸이었다. 실제 역사는 700년 이상 된 유서 깊은 마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고 찾아간 마을에서는 집보다는 공장이 더 많이 보여 충격을 받았다. 집들이 보이는 높은 곳을 찾아 한참을 헤매다 산중턱에 들어선 공장에서 겨우 마을 전경을 찍고 돌아서야 했다.

2012년 6월 13일자에 소개한 장유면 장유리 모산마을 기사의 첫 대목은 이랬다. "자연마을 취재를 하면서 큰 도로에서 마을로 접어들기까지 공장 하나 안 보인 곳은 이 마을이 처음이지 싶다." 모산마을은 사계절이 아름답다. 특히 다른 곳으로 단풍놀이를 갈 필요가 없을 정도로 빼어난 가을풍경을 자랑한다.

하지만 모산마을은 율하2지구 택지개발사업에 포함되는 바람에 곧 사라지게 된다. '자연마을'에 등장한 마을 중 처음으로 없어지는 마을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해 모산마을의 마지막 추수기사가 지면에 실린 기억이 떠오른다. 고향을 잃은 마을 주민들의 고충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보상 문제를 둘러싼 LH공사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마을 100곳 중에서 무려 24곳이 대동면의 마을들이었다. 이 지역 마을들은 대부분 농사를 계속 지어왔다. 집들은 현대식으로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인정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대동면의 마을들에서는 40대 후반의 젊은 이장들을 더러 만났다. 이장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 옆에 앉아 진지한 눈빛으로 마을 이야기를 경청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대동면의 마을들은 도로, 터널 건설 등 각종 공사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연재에 처음 등장했던 진례면 시례리 상촌마을에 최근 다녀온 적이 있었다. 3년 전 기사에는 '나지막한 돌담, 고목, 기와지붕이 있는 상촌마을의 고풍스러운 골목길'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상촌마을의 골목길은 표정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돌, 기와를 켜켜이 박아 쌓아올린 흙담은 무너져 내리고, 다시 쌓은 담이 몇 곳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바뀔 수밖에 없는 게 세상살이의 당연지사다.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길손과 출향인들을 위해 언제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고집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김해의 자연마을들은 조금씩 바뀌어 왔고, 또 앞으로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김해뉴스 /박현주 기자 phj@gimhaenews.co.kr
 



취재 후기

힘들었던 마을 섭외…"어디 아는 마을 없나요?"

"할 만한 곳은 다 한 것 같은데" 일쑤
 발로 뛰며 취재한 55곳 아직도 어른


"어디 아는 마을 없나요."

지난 3년 동안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자연마을 취재를 끝내고 나면, 그 다음에 "이장님, 다른 마을 소개해주세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시리즈를 계속 하면서 "할 만한 마을은 다 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마을을 추천받으면 이미 소개됐던 마을이기 일쑤였다. 자연마을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마을 섭외였다.

'자연마을 기획시리즈'를 이렇게 오래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김해뉴스>가 소개한 100개의 마을 중에서 직접 다녀온 마을이 절반이 넘는 55개였다. 그 마을의 모습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근처를 지날 때면 마을의 안부도 궁금해진다.

시리즈를 처음 시작했을 때 독자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내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오늘날 김해를 떠받쳐 온 마을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반갑다"는 말들이 쇄도했다. 그래서 아무도 "마을 시리즈를 이쯤에서 끝내자"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자연마을 시리즈를 100회까지 이끌어올 수 있었던 것은 기사를 아껴주었던 독자들의 성원 덕분이었다. 힘들 때마다 들려오는 독자들의 말 한 마디에 다시 신발끈을 매고 마을로 출발했던 것이다.

예순 넘은 '청년 이장'과 고충 토로하던 어르신들

기자 처음 만난다며 음식 내오던 따듯함
정겨웠던 인심과 안타까운 사연들 소중


2011년 11월에 갔던 주촌면 천곡리 천곡마을에서부터 지난달 다녀온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까지 혼자 또는 선배, 후배와 함께 수십 곳의 자연마을을 방문했다. 시내에서 벗어나 읍·면 지역의 자연마을을 찾았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따뜻해진다.

경로당에 모여 있던 어르신들은 "살아 생전 기자를 처음 본다"며 떡과 막걸리를 내어주며 마을의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마을에서 가장 젊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마을이장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마을 하천에서 멱을 감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마을을 오가는 시내버스가 없어 무릎이 아파도 택시비 때문에 병원에 자주 못 간다며 하소연하던 진영읍 마을의 할머니들, 마을 주변에 공장이 들어선 뒤 덤프트럭이 좁은 길을 질주하는 바람에 걸어서 마을 밖으로 나서기 겁난다는 상동면 마을의 할아버지, 도시개발로 논과 집터가 모조리 수용돼 한평생 가족 같이 지낸 이웃들과 생이별을 하게 됐다며 울상이던 장유 마을의 이장…. 이렇게 마을 어르신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고충을 듣고나면 취재를 마치고도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향이지만 '자연마을 시리즈' 취재가 아니었다면 김해를 둘러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시민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담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김해를 알게 해준 '자연마을 시리즈'가 참 고맙다.

외할머니께서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처럼 다가와

마을회관에 모여 기억의 조각 맞추며
시간여행 하듯 즐거워하던 모습들 생생


어렸을 때 추운 겨울 외할머니 댁에서 하룻밤 묵는 날, 잠자리는 따뜻한 아랫목 아래 외할머니 옆이었다. 다정한 원앙 한 쌍이 수놓인 두터운 이불을 이마까지 끌어당겨서는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곤 했다. 일본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과 한국전쟁 때 겪었던 피난민의 삶.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옛 이야기는 영사기를 틀어놓은 듯 꿈속에서 재생되기도 했다.

자연마을 취재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품안에서 듣던 옛 이야기와 같았다. 맨 처음 자연마을 취재를 위해 찾아간 곳은 한림면 병동리 어병마을이었다. 마을 뒷산에는 녹지 않은 하얀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도랑 옆에는 누런 창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코끝이 시린 날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일회용 커피를 내놓으며 옛 마을을 회상했다. 어르신들은 갑론을박으로 토닥거리며 기억의 조각을 맞춰갔다. 옛 마을의 흔적이 남아 있는 빨래터, 공동우물, 당산나무 등을 둘러볼 때면 시간여행을 하는 듯 즐겁기만 했다.

자연마을 취재를 다녀온 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자연마을 시리즈가 100회로 마무리됐다. 뒤늦게 취재에 합류한 탓에 어르신들과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시원함보다 아쉬움이 더 크다. 외할머니가 들려주던 옛 이야기를 풀어내듯 다시 독자들과 함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그날을 기약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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