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 편안해도 주최 측은 힘든 축제
행사 준비하느라 모두 바쁘게 허둥지둥

연희단거리패 청춘 결혼식에 웃음 가득
넉넉한 음식 인심 덕 모두 배불리 점심

수지타산 신경 안 쓰고 감자 주제로 잔치
연극인 강한 연대감이 축제 성공 원동력


서로 아끼는 순수한 마음 깊이 스며 있어다섯 번째 '도요마을강변축제'가 지나갔다. 지난해에는 난데없는 메르스 사태로 축제가 두 달 연기되었었다. 그러다 보니 일 년 내내 빡빡한 스케줄이 잡혀 있는 연희단거리패는 도요마을의 작은 축제를 치르기 위해 곤욕을 치렀었다. 올해는 축제에 딱 맞춰 약간의 스케줄 여유가 있었단다. 수십 명의 단원들이 무대에 올릴 연극 두 편을 연습하고, 틈틈이 짬을 내서 현장을 준비했다.
 
때아니게 찾아온 더위 때문에 텐트를 치고 무대를 만드는 단원들은 땀을 많이 흘렸다. 햇볕에 그을리지 않으려고 선크림을 바르고, 팔토시를 하고 나름 발버둥을 치더니, 막상 축제가 다가오고부터는 모두들 자포자기한 모습이었다. "겨울이 되면 하얘질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마."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는 웃어야 할지 어째야 할지 몰랐다. 한창 외모에 신경을 쓸 청춘들이 아닌가 말이다.
 
축제라는 게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별스럽지 않아 보여도 치르는 쪽에서는 여간 일이 많은 게 아니다. 일가친척 모여 먹고 마시는 잔치를 여러 번 치러냈기에 웬만한 일쯤은 별로 걱정을 하지 않는 성미지만, 축제가 다가오면 사뭇 긴장될 수밖에 없다. 평소에는 어른이랍시고 차려주는 밥 먹고 심부름도 곧잘 시키고 하지만 축제 때가 되면 뭐라도 거들어야 한다. 마침 절기로는 부지깽이도 일어나서 거든다는 모심기철이 아니던가.
 
연희단거리패 식구들만 해도 수십 명인데, 거기 손님들까지 합하면 가히 이백 명은 족히 되는 사람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두고 밀양 살림을 맡은 둘이 선생과 며칠을 두고 의논에 의논을 했다. 나도 명색 맏며느리이기는 하지만 종갓집 맏며느리에다 큰살림을 오래 맡아온 둘이 선생한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건 이렇게 하면 되고요, 저건 저렇게 하면 됩니다." 명쾌하게 판단하고 곧 결정을 내린 둘이 선생이 재숙 씨까지 대동하고 하루 전부터 식당을 접수하는 바람에 나는 할 일이 없어졌다. 거기다 식당에 배정된 단원들이 어찌나 부지런하고 일머리가 있는지, 느긋하게 공연 두 편을 관람하는 호사까지 누렸다.
 
올해 축제에서 연희단거리패 청춘남녀가 결혼식을 했다. 결혼식은 축제 주무대에서 진행되었는데, 꼭두쇠 이윤택 선생께서 집전하고 단원들에게는 대선배가 되는 미숙 선생과 동식 선생이 사회를 보았다. 세상에, 이런 호사가 어디 있담. 몇 년 전 내 아들이 결혼할 때도 흔쾌히 주례를 맡아주셨던 꼭두쇠는 내부결혼(?)이 마냥 흐뭇하신 듯 시종 진지한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또 연희단거리패를 떠났던 많은 배우들도 이들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어서, 넓은 스튜디오 곳곳에서 눈물겨운 상봉들이 있었다. 몸은 비록 떠났지만 서로 껴안고 반가워하는 모습들을 보니 한솥밥을 먹는다는 게 어떤 관계인지 다시 생각하게 했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는 넓은 마당에 야외 뷔페가 차려졌는데, 우리가 초대한 마을사람들과 축하객들은 물론이고 일찌감치 축제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까지 모두 배불리 점심을 먹었다. 잔치집에는 원래 손님이 많아야 좋은 법이다. 지나가는 사람까지 불러들여 밥 한 끼 먹이는 것이 우리 잔치 인심인 것이다. 축의금 낸 사람만 식권 받아서 밥 먹고, 축의금 안 낸 사람은 식권도 안 주고 돌려세우는 도회지 결혼식을 생각해 보라. 축의금 접수 창구 앞을 지나다니면서 꼭두쇠가 자꾸 챙겼다. "식권 아끼지 말거라. 오는 사람 다 먹여 보내야 된다." 워낙에 사람이 많아 나는 차려진 음식이 혹 모자라면 어쩌나 은근 걱정이 됐는데, 신랑과 신부가 인심이 후한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먹고도 음식은 좀 남았다. 이렇게 인심을 썼으니 신랑 신부 탈없이 잘 살 것이다.
 

▲ 김해 생림 도요마을에서는 매년 연출가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 단원들이 주최하는 '도요마을강변축제'가 열리고 있다.

불볕 더위에도 불평 한 마디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축제를 치러낸 단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연극이라는 장르의 오묘함을 다시 깨달았다. 골방에서 혼자 머리를 싸매는 문학과 달리 공동체가 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장르가 곧 연극이다.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동료와 소통하고 협조해야만 가능한 작업이 연극이기에, 그들은 이렇게 모여서 사는 것이 가능하겠지. 그리고 시골마을에서의 이런 축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연극하는 사람들의 그런 강한 연대감 덕분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도요마을강변축제는 시에서 주는 예산으로는 도저히 어림도 없는 축제이다. 조용한 강변마을에 둥지를 틀고, 직접 도요림을 지어 터전을 잡은 꼭두쇠가 용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 마을에 감자가 많이 난다면서? 그렇다면 감자를 주제로 하는 축제를 열자. 그냥 놀고 먹는 축제가 아니라 우리가 여기서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축제를 말이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축제여서 처음부터 수지타산은 따지지 않았다. 도요마을 주 생산물인 감자는 그러니까 우리가 이곳에 있는 모티브이기도 했다. 일 년에 두 번 감자 심고 벼를 심으며 조용히 살아가는 마을사람들처럼 우리도 이곳에서 창작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문학이나 연극이라는 예술은 이미 대중으로부터 밀려난 장르다. 그러나 도요마을 감자는 감자칩이나 감자튀김용이 아니라 포슬포슬한 속살을 그대로 즐기는 삶는 감자용으로 여전히 유효하듯이 이곳에서 연극 작업을 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업이 전통적인 유용함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제작된 연극이 전국에서 쇄도하는 순회공연과 해외 원정공연까지 이어지는 성과를 거두어도, 수수한 옷차림과 소박한 말투,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깊게 스며 있다. 그것은 해마다 감자를 심고 거두며 묵묵히 살아가는 도요마을 사람들에게 감자가 가지는 의미와 같을 것이다.
 
모든 프로그램이 끝나고 관객이 돌아가고 나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게릴라극장 대표인 소희 선생이 단원들을 모아 놓고 축제를 관람한 소감을 말하다가 결국 눈물을 보였다. 불볕 더위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축제를 치러낸 단원들을 통해서 함께 산다는 것, 연극을 한다는 것, 그리고 삶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잠시 숙연했던 분위기는 곧 "이제 우리 놀아도 돼죠?"라는 질문으로 웃음바다가 됐다. "그래. 노세요. 놀아야죠. 내일 저녁까지 연습 없습니다." 꼭두쇠의 결정에 이야호! 환호가 터졌다. 연습이 많기로 소문난 연희단거리패다. 하고 또 하고, 밤을 새우기도 하는 연습의 왕국. 연극 배우는 하루도 연습을 쉬면 안 된다는 것이 철칙인 줄 알았는데, 그 연습을 하루 쉬어도 된다니, 대단한 결정인 셈이다. 젊음이란 참 부럽다. 하루종일 불볕 더위 속에서 그렇게 뛰어다니고도 놀 힘이 남아 있다니. 이런 축제를 치러내는 힘은 바로 저들의 저런 신명 덕분이었을 것이다.
 
감자를 다 캔 유월의 도요마을 들판은 벌써 모내기를 끝냈다. 이곳에서의 우리들의 삶도 다시 계속이다. 그러니까 감자는…감자인 것이다.


 

 

>>조명숙/김해 생림에서 태어남. 김해여고 졸업.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소설집 <조금씩 도둑><댄싱맘> 등 다수. mbc창작동화대상, 향파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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