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등 먹이 풍부한 엘베강 인근
매년 20여 쌍 마을 곳곳 둥지에 새끼
주민들, 습지 보전·농업 교육 등 활동
“관광객 늘면 개발 안 해도 경제 도움”

 

 

독일 베를린에서 북서쪽에 있는 베드휠스넉까지 기차를 타고 1시간 30분, 다시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하면 브레덴부르그의 '뤼슈테트 유럽황새마을'이 나타난다. 곧게 뻗은 다리, 빨간 부리의 황새 팻말이 마을 입구에 서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황새 한 마리가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머리 위로 날아갔다. 이곳이 황새마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려는 듯 했다.
 
뤼슈테트는 한 두 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곳이 황새마을로 불리기 시작한 건 뤼슈테트 서쪽의 엘베 강 덕분이다. 엘베 강은 폴란드와 체코의 국경지대에 있는 스테티 산에서 발원해 체코 북부, 독일 동부지역을 지나 함부르크에서 북해로 흘러가는 1091㎞ 길이의 하천이다. 황새들은 엘베 강 일대의 범람원에서 작은 벌레, 미꾸라지, 개구리 등 다양한 먹이를 구한다. 그 덕분에 엘베 강 인근에서는 황새 19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 황새 한 마리가 독일 뤼슈테트의 한 가정집 지붕 위에 꼿꼿이 서 있다.

뤼슈테트는 1996년 황새 22쌍이 찾아온 일이 계기가 돼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았다. 같은 해 '유럽 황새지역 평가재단'은 뤼슈테트를 유럽황새마을로 지정했다. 매년 2월이면 황새 50~70쌍이 남아프리카에서 뤼슈테트로 날아온다. 이중 20여 쌍이 마을 곳곳에 있는 둥지에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른다.
 
황새마을 탐방은 환경보호시민단체 나부(NABU·자연생명다양성보존연맹)가 운영하는 방문자센터 '글로버트로터 아베바'에서 시작된다. 면적 80㎡의 방문자센터에는 엘베 강 일대에 살고 있는 검은목두루미, 검은황새, 유럽황새 등의 서식처, 이동 경로, 먹이 등이 소개돼 있었다. 인근 초등학교에서 현장학습을 하러 온 학생들로 센터 안은 시끌벅적했다. 삼삼오오 모인 어린이들은 저울 위에 추를 올려 실제 크기로 만든 황새의 무게를 재어 보기도 했다. 센터 한쪽에는 센터 지붕에 살고 있는 황새 가족의 모습이 실시간 영상으로 비치고 있었다.

▲ 뤼슈테트의 한 가정집 지붕 위에서 황새 한 마리가 둥지를 지키고 서 있다.
▲ 마을 급수탑 위의 둥지에서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황새.

황새와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삶, ‘친환경농업’이 비법

센터 직원 레나타 하이더 씨는 "하루 1000여 명이 센터를 찾는다. 센터에서는 방문객들에게 자연의 가치,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을 보호하는 방법 등을 알린다. 더불어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양질의 토양을 만드는 방법 등을 조언해 준다"고 말했다.
 
방문자센터 지붕에 있는 둥지에서는 황새 두 마리가 서로의 몸을 다듬어주고 있었다. 방문객들은 황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이더 씨가 "마을을 돌아보면 더 많은 황새를 만날 수 있다"며 황새탐방길이 그려진 지도 한 장을 건넸다. 지도에 표시된 황새 둥지만 40여 개였다. 지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 환경보호시민단체 '나부'가 운영하는 방문자센터.

뤼슈테트의 귀족 집안인 자고우 가문의 성 옆에 우뚝 솟은 급수탑이 있었다. 그곳에 자리잡은 황새둥지가 눈에 띄었다. 회색 털옷을 아직 벗지 못한 새끼들이 목을 빼고 어미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고 있었다. 성을 지나가자 제비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한 슐로스 연못이 나타났다. 빨간무당개구리, 뱀 등 각종 생물이 살고 있어 황새들에게 먹이 공급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시 마을 안쪽으로 걸어가자 황새 한 마리가 붉은 지붕 위에 미동도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새끼 키우기에 여념이 없는 황새 부부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 한 가족이 매년 마을을 찾아 온 황새 수를 기록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황새마을을 둘러보던 관광객 알 카포네(43·베를린) 씨는 "황새와 사람들이 조화롭게 살고 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다. 마을을 거닐며 황새 둥지 수를 세어보는 것도 재미있다"며 웃었다.
 
마을 주민들은 황새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나부는 황새 지키기 방범대로 나섰다. 습지 보존, 친환경 농업교육, 전통건축 보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들이 참여하는 황새모임 스토헨 클럽을 만들었고, 더 많은 황새가 찾아올 수 있도록 친환경농업을 하고 있다. 나부와 함께 해마다 황새축제를 열고 있다. 덕분에 한 해에 10만여 명의 관광객이 뤼슈테트를 찾고 있다.

▲ 방문자센터를 찾은 초등학교 학생들이 황새 배설물을 관찰하는 모습.

나부에서 활동하는 나딘 바우어 박사는 "지주가 토지를 무분별하게 개발하지 않고 농부가 친환경농법으로 땅을 보호한다면 황새를 비롯한 각종 동·식물을 보호할 수 있다. 친환경농업은 황새 개체 수를 늘리고 사람과 황새가 더불어 사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열쇠"라고 말했다. 그는 "뤼슈테트 주민들은 황새와 함께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황새를 보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마을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굳이 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면서 "한국의 김해에서도 소외받는 농촌이 새로운 생태관광지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김해뉴스 /뤼슈테트(독일)=김예린 기자 beaurin@gimhaenews.co.kr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