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4일 삼계나전지구 도시개발사업 예정지에서 폐기물 불법 매립의혹을 밝히기 위한 시추조사가 진행됐다. 지난해 9월 의혹이 제기된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의혹을 밝히려는 환경단체와 어떻게든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고 봉합해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려는 시행자·매립의혹업체 사이의 갈등으로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시추조사 닷새 동안의 현장 모습을 생생히 기록한다.


환경단체·시의원·언론 몰려 관심
우여곡절 끝 “토양오염분석 합의”
상황 악화되자 업체 측 폭언·폭행
허 시장 “의혹 없이 진실 밝힐 터”



 

▲ 환경단체 관계자 등이 시추조사에서 나온 시료를 살펴보고 있다.

■ 극적인 합의 이룬 첫 날
김해시와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은 지난 3일 삼계나전지구에 10곳 이상 구멍을 뚫어 토질을 조사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시와 김해양산환경연은 토양오염분석을 놓고 의견 차이를 보였다. 시는 육안 확인을 거친 뒤 분석을 하자는 입장이었고, 김해양산환경연은 육안조사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처음부터 분석을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시는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자 20일 일방적으로 시추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날 시추현장에는 김해양산환경연 관계자들, 김해시의회 이영철(무소속) 의원이 참석했다. 그동안 보도에 소극적이던 상당수 언론사 기자들도 찾아가 취재 경쟁을 벌였다. 이날 시추작업은 김해양산환경연 관계자들과 이영철 의원이 몸으로 저지하고 나서 초반부터 난항을 겪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김해양산환경연 박재현(인제대 토목도시공학부 교수) 공동대표가 나서 시와 태광실업을 설득했다. 그는 "현재 불법 매립의혹이 불거진 곳은 초등학교 예정지다. 반드시 오염 여부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수천억 원짜리 사업을 하면서 비용 수천만 원을 이유로 내세워 시민의 건강과 직결된 의혹을 해소하지 않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상태로 사업을 추진한다면 시가 (시민보다) 이해관계자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태광실업 측이 "시가 수용하는 방법을 무조건 따르겠다"고 밝히면서 협의는 급진전됐다. 결국 3시간 동안 줄다리기 끝에 김해양산환경연과 시, 태광실업은 토양오염분석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현장을 찾은 낙동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도시개발사업 환경영향평가서 본안에 시추조사 결과가 포함되는 것으로 안다. 본안이 들어오면 (환경오염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첫 시추조사에서 슬러지 발견
21일 오전 9시, 시는 전날 김해양산환경연이 지목한 지점에서 시추를 시작했다. 첫 시추에서 어떤 시료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졌다.
 
시추 드릴로 땅을 뚫은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진한 회색빛의 슬러지 의심물질이 지표 밖으로 나왔다. 석산개발 절개면 인근 공구를 15m 가량 시추하는 과정에서 자갈, 흙, 폐콘크리트와 함께 슬러지 의심물질이 발견된 것이다. 이어진 시추에서도 폐기름 등이 섞인 것으로 의심되는 검은색 슬러지와 폐아스콘 등이 계속 채취됐다. 김해양산환경연 관계자는 "첫 시추에서 슬러지 의심물질이 발견된 만큼 보다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는 22일 보도자료를 배포해 '지금까지 나온 채취시료 대부분이 적합판정을 받은 순환골재와 슬러지로 불법폐기물이 아니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시 관계자는 "채취시료 운반을 매립의혹 업체가 맡는 건 어떠냐"고 말했다. 

 

▲ 폐기물 불법매립 의혹업체 관계자가 이영철 시의원의 목을 조르며 때릴 듯한 자세를 하고 있다.

갈등이 커진 시추현장
시추조사가 진행될수록 현장의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불법매립이 의심되는 각종 폐기물과 재생처리가 안 된 슬러지가 계속 나왔기 때문이다.
 
전날 시의 보도자료 배포에 불만을 품은 김해양산환경연은 23일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시가 불법 매립 의혹을 사고 있는 해당업체를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김해양산환경연은 "시 공무원들은 업무 과다 핑계를 대며 (시추조사에서)채취한 시료를 불법매립 의혹을 받는 업체가 직접 (토양오염분석 기관인)경남환경연구원으로 이송하도록 한다고 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시는 업체를 대변하는 기관인가"라고 비판했다.
 
김해양산환경연은 또 "아스콘, 폐비닐, 폐유리 등은 육안으로 봐도 매립할 수 없는 폐기물이다. 그런데도 '석산 개발 당시 공사차량 때문에 몇 개 들어간 것'이라고 하는 불법매립 의혹 업체의 말을 별 이견없이 받아들이는 시의 태도는 참으로 가관이다. 시는 지금까지 나온 채취물이 '불법 폐기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직 토양분석도 하지 않았는데 시가 보여주는 행동은 절차의 합리성을 상실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막바지에는 충격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불법 매립 의혹을 사고 있는 석산개발 업체인 경부공영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에 끼어들어 김해양산환경연 회원들에게 폭언을 퍼부으면서 위협했다.
 
경부공영 관계자들은 "이게 땅 속에서 나온 거냐. 종이컵, 담배꽁초 등 쓰레기들도 널려 있는데 뭐가 문제냐, 법적으로도 문제없다"며 폐콘트리트 조각을 땅에 내동댕이쳤다. 이들은 이영철 의원에게는 "왜 비아냥거리고 지랄이야", "새끼야" 등의 욕설을 퍼부었고, 급기야 때리려는 듯한 시늉을 하며 멱살을 잡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경찰 등이 제지해 상황은 악화되지 않았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해양산환경연 허문화 공동의장은 "시의원을 밀치고 돌로 시민단체 회원들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앞으로 (시추현장에서) 기자회견이나 제대로 열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KBS, MBC, KNN, CBS 등 방송에서는 연일 시추조사 사실을 보도했다. "시가 특정업체를 편든다" "거짓 해명에 커지는 특혜의혹" "도시개발지구 지정 초기부터 특혜 의혹" "박연차 특혜의혹 땅 폐기물 조사…시가 업체 편들어"라는 기사를 쏟아내며 시에 비판을 퍼부었다.
 

▲ 허성곤 시장이 시추조사 마지막날 현장을 방문해 시료를 들여다보고 있다.

허 시장 현장 전격 방문
시추 마지막 날인 24일, 전날 기자회견 파행 여파로 현장의 경찰 인원도 늘었다. 기간연장이 안 돼 활동을 종료한 김해시의회 삼계나전특위의 우미선(자유한국당), 엄정(바른정당) 의원도 현장을 찾았다.
 
지난 나흘 간 그랬듯이 11, 12공 시추는 분주히 진행됐다. 그런데, 열두 번째 공 시추가 잠깐 멈췄다. 허성곤 시장이 도시관리국 김홍립 국장 등과 함께 시추조사 현장을 전격방문한 것이다. 폐기물 불법 매립 의혹을 둘러싸고 여론이 악화되자 현장방문이라는 '깜짝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허 시장은 시추과정을 지켜본 뒤 채취한 슬러지 오염의심 물질 등을 살펴봤다. 이어 김해양산환경연 강을규 공동의장, 이영철 의원 등에게서 의견을 청취했다. 김해양산환경연 관계자가 폐기물 매립의 심각성을 이야기하자 허 시장은 "문제를 일으킨 측(불법매립 업체)의 자업자득이다. (위법사실이 발견되면)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시장은  "사업자를 두둔할 이유는 없다. 의혹이 없도록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라고 지시했다. (폐기물 및 토양분석) 결과에 따라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시장은 언론에서 시의 행정이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쏟아내는 것에는 서운한 감정을 나타냈다. 그는 "시가 중립적으로 법대로 (시추조사 관리)하는 걸 지켜보면 된다. 언론이 너무 앞서 가서 밤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그는 30여 분간 현장상황을 지켜보고 자리를 떠났다.
 
닷새 간의 시추조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남은 것은 토양오염분석을 통한 진실 뿐이다.
 
한편, 시, 김해양산환경연, 태광실업, 경부공영은 27일 시추 현장에서 채취시료의 봉인을 풀어 분석조사 방법을 결정했다. 전체 60개 시료 가운데 경남보건환경연구원에서 7개 시료에 대한 지정폐기물유해물질기준조사를 하고, 동의과학대 이정만 교수팀이 37개 시료에 대해 토양오염분석을 진행하기로 했다.

김해뉴스 /심재훈 기자 cyclo@gimha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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