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명초, 가야역사탐험대 동승
24, 26일 3학년 네 반 102명



봉명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야역사탐험대' 대원이 돼 수천 년 전 조상들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 떠났다. 
 
가야역사탐험대는 <김해뉴스>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인제대학교, 김해교육지원청과 함께 지역 역사를 담고 있는 유적지를 돌며 역사 교육을 진행하는 사업이다. 지난달 24일에는 3학년 1반 25명과 2반 25명, 26일에는 3반 26명, 6반 26명이 각각 참여했다. 
 
이날 학생들이 방문한 유적지는 장유·율하 지역의 관동유적공원, 율하고인돌유적, 아래덕정유적이었다. 인제대박물관 정찬우 학예사가 학생들을 인솔해 유적지를 설명했다. 탐험대가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관동유적체육공원이었다. 정 학예사가 "우리가 걸어온 공원의 땅이 가야시대 때는 바다였다. 이 곳에 선착장, 나루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 가야역사탐험대에 참여한 봉명초 학생들이 고인돌 유적지를 관찰하고 있다.

학생들은 "여러 번 이곳에 온 적이 있었지만 그냥 체육공원인 줄만 알았다. 여기에 엄청난 유적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학생들은 "여긴 바다니깐 수영을 해서 가야 해"라며 수영하는 자세를 하며 2000년 전 관동유적체육공원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유적공원을 지나 역사탐험대 버스가 멈춘 곳은 높은 상업 건물이 들어선 율하의 번화가였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가득한 곳에 과연 유적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길 때쯤 아파트 사이에 율하고인돌유적공원이 나타났다. 이곳은 율하 신도시 개발에 따른 발굴조사에서 청동기시대 무덤과 집터 등이 나타난 곳이다.
 
정 학예사는 "1t짜리 돌을 끌기 위해서는 어른 12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돌이 클수록 힘이 있는 사람의 무덤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고인돌인 내동 지석묘의 뚜껑돌은 200t에 이른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고인돌에 관심을 나타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ㄱ'자 모양으로 된 고인돌 묘역을 보고는 "묘역이 하트 모양으로 돼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묻힌 것 같다"며 추측하기도 했다. 정 학예사는 웃으면서 "이 무덤은 한 사람을 묻은 후 수십~수백 년 후 그 옆에 묘를 다시 만든 것이다. 묘역의 돌 크기가 다른 것을 보면 다른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연인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역사탐험대는 율하유적전시관에서 고인돌의 옆면, 내부, 유물 등을 더욱 자세히 관찰했다. 학생들은 사람의 크기보다 작은 고인돌의 관 자리를 보며 의문을 나타냈다. 정 학예사가 "지금은 시신을 반듯하게 눕혀서 관에 넣지만 옛날에는 접어서 넣었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코스는 6~7세기 마을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아래덕정유적이었다. 학생들은 과거 마을회관, 우물, 고상가옥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 
 
봉명초 3학년 1반 조수연 양은 "옛날에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접어서 무덤에 묻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 관보다 많이 불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2반 오현서 양은 "청동기시대 때 사용했던 물건들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장유에 와본 적은 있었지만 여기에 고인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며 소감을 밝혔다.
 
김해뉴스 /조나리 기자 n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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