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젤 패스 캠핑하다 좁은 산길 발견해
아름다운 경관 즐기면서 그린델발트까지

이탈리아서 만난 마이클, 루체른에 초대
부모 집에서 맛있는 현지 가정식 요리 즐겨

식사 마치고 다함께 어울려 보드게임
여유롭고 화목한 분위기가 우리와 달라



스위스는 북유럽에 있는 노르웨이, 핀란드와 함께 물가가 아주 높은 나라다. 호텔에서 숙박하려면 하루 최소 15만~20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 같은 장기여행자들은 경비를 아껴야 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호텔에서 잘 수가 없었다. 우리는 폭우가 쏟아지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유럽의 캠핑장은 시설이 좋아 더운 물로 샤워도 할 수 있다. 비용도 15~20유로(2만~2만 6000원) 정도라서 싸게 캠핑장을 이용했다.

그림젤 패스 아래 마을에서 캠핑을 하던 첫날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에서 만났던 마이클 형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자기 집에서 지내도 좋다고 알려온 것이다.

취리히로 향하는 길에 우리는 잠시 관광헬기회사인 '스위스헬리콥터'를 찾았다. 헬기를 타고 알프스 정상을 둘러보는 관광 코스가 있다는 안내문을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알프스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었다. 헬기장 위치를 물어물어 겨우 찾아갔다. 그런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헬기는 건물 안에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휴일이거나 운행기간이 아닌 듯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헬기장 뒤편 산 쪽으로 난 길이 보였다. 지도에도 없는 좁은 포장도로였다. 길을 따라 올라가보기로 했다. 산길은 차가 한 대 겨우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1시간 정도 오르니 갑자기 시야가 탁 트였다. 저 너머에는 눈 덮인 산들이 이어져 있었다. 그 광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간간히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산속을 오갔고, 마을 사람들이 기르는 소의 방울소리만 달랑거렸다. 스위스의 대자연을 온전하게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고개를 두어 시간 오르내렸더니 이번에는 그린델발트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기차가 서는 역이었다. 지도를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 아이거산 아래를 지나온 셈이었다. 대단한 경험이었다.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길 때마다 감사하게도 좋은 방향으로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린델발트에서 식사를 하고 다시 인터라켄을 거쳐 취리히로 향했다. 가는 길에 비가 내려 추웠지만 중간 중간 지나는 터널 안은 따뜻했다. 스위스 고속도로에는 터널이 많아서 좋았다.

취리히 근처에 가서 마이클 형에게 연락을 했다. 형은 오래된 바이크를 타고 마중 나왔다. 스위스는 잘 사는 나라여서 도로에 고급자동차들이 많았다. 20년도 더 된 바이크를 고쳐가며 타고 있는 형의 모습은 의외였다. 잘 사는 나라라고 해서 돈을 막 쓰거나 낭비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마이클 형은 28세이지만 아직 학생이다. 부모의 도움을 안 받고 혼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형의 부모는 취리히에서 조금 떨어진 루체른에 산다. 형이 부모에게 한국에서 지인이 왔다고 말했고, 부모는 우리를 집으로 초대했다. 마이클 형이 앞장선 채 길을 나섰다.

루체른 시내에서 '빈사의 사자상'과 '카펠다리'도 구경했다. 빈사의 사자상은 1792년 프랑스혁명 때 튈르리 궁전에서 사망한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는 기념비다. 카펠다리는 1333년 로이스 강에 놓은 다리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긴 나무다리다. 길이가 200m에 이른다. 우아한 형태 덕분에 현재 루체른의 상징이 됐다. 둘러보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저녁 시간이 돼 있었다.
 

 
형의 부모 집은 루체른 외곽에 있었다. 예쁜 뾰족지붕 3층 집이었다. 마당에는 창고와 잔디밭이 있었다. 1층은 주방, 2층은 거실, 3층은 침실이었다.

형의 부모와 동생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형의 어머니는 스위스 가정식 요리를 준비해 주었다. 우리는 다 같이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즐거운 식사 시간이 끝난 후 마이클 형의 어머니가 내게 "산책하고 싶니? 아니면 보드게임이 좋니?"하고 물어보았다. 스위스에서는 식사 후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당연히 "보드게임 할래요"라고 대답했다. 거실 한 쪽에 놓인 서랍장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게임이 있었다. 형이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함께 갖고 놀던 것들이라고 했다.
 
대화가 통해야 하기 때문에 규칙이 쉬운 것을 골라 온 가족이 웃으며 게임을 즐겼다. 게임 중간에 형의 아빠가 일부러 나를 골탕 먹였다. 나도 같이 장난을 쳤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금세 형의 가족과 친해졌다. 스위스의 가족들은 대화도 많이 하고 장난도 잘 치며 잘 웃는 것 같았다. 여유롭고 화목해 보였다. 한국의 가정에서는 대개 휴대폰 또는 TV를 보며 각자 개인의 시간을 즐기는 편인데 스위스는 달랐다.
 

 
아빠는 한국 사람들의 근무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다고 했다. 오후 6시면 가게들이 문을 닫는 스위스가 우리보다 훨씬 부자나라라는 게 신기했다. 열심히 일하면 부자나라가 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우리는 다시 취리히에 있는 마이클 형의 집으로 돌아와 잠을 푹 잤다. 내일은 여기서 200㎞ 떨어진 독일의 도시 러스트로 간다. 거기에는 세계최대 놀이공원인 유로파 파크가 있다. 마이클 형이 그곳까지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정말 고마운 인연이 계속된다.

김해뉴스 최정환 최지훈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