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병장 박경선이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 내렸다는 선바위. 그런 아픔도 모른 채 흐르는 동창천은 잔잔하기만 하다.

 

꼿꼿한 사림 정신 지켜온 선암서원
‘명품 고택’에 굳게 닫힌 대문, 호기심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 집필한 운문사
‘김사미의 난’으로 더욱 유명해진 사찰

민속놀이를 이벤트화한 소싸움 경기장
마지막 코스로 용암온천도 들러볼만




구름 빛 안개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유난히 맑은 마을. 영남알프스가 병풍처럼 이어지는 운문산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선비의 고장, 청도를 찾아가는 여정은 살얼음 녹는 마을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발걸음처럼 가볍고 신선했다.
 
맨 처음 도착한 선암서원. '명품 고택'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는 전통가옥이다. 대문 앞에는 조선 시대 영남 사림파를 대표했던 김일손의 조카, 김대유와 친구 박화담의 뜻을 기리는 교육시설이라는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김대유는조선 중종 때 '현량과'를 통해 관료가 되었지만, 당시 정국을 주도했던 조광조 일파가 '기묘사화'로 몰락하는 바람에 벼슬길에 나선지 1년 만에 유배길을 거쳐 낙향했던 인물이라고 했다. 요즘 말로 하면 '행정고시'를 패스하지 않고, '전문직 공채 케이스로 5급 사무관'에 임용되었다가 정치바람에 휩쓸려 해직된 사람이라면 다소 무리한 표현일까. 한옥 스테이가 가능하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지만, 대문이 굳게 닫힌 데다 전화번호를 알려주는 안내판마저 훼손돼 안으로 들어갈 길이 없었다.  
 
선암서원 옆으로는 하천이 흐른다. 동창천이라 부르는 하천에는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에 오를 날을 기다리며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았다"는 용두소가 있다. 인근 선암서원에서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 준비에 몰두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하천이다. 용두소 뒤편에는 선바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박경선이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렸다는 곳이다. 바로 그 의병장이 선암서원에서 김대유와 함께 글을 가르쳤다는 박화담의 아들이라니 꼿꼿한 선비의 피는 속일 수가 없나 보다.
 
하지만 지역 농민군을 이끌고 왜군에 맞섰던 의병장 박경선이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몸을 껴안고 용두소에 뛰어들 때까지 왜군 장수는 "도대체 정신을 어디에 두고 있었단 말인가?" 진주 기생 논개의 미모에 홀려 죽었다는 왜장이라면 그나마 이해가 되지만 말이다.
 
용두소에서 자동차로 20분가량 달리면 청도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적, 운문사에 도착한다.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신라 시대 화랑들에게 세속오계를 내렸다는 원광법사가 지었다는 사찰이다. 고려 시대에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던 절이기도 하다.
 

▲ 운문사 일주문. 수많은 승려들이 해탈의 길로 들어섰던 문이다.


 하지만 운문사가 가장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사건은 고려 명종 때 일어난 김사미의 난. 김 씨 성을 가진 사미승이 지방관과 토호들의 횡포에 반발하는 천민과 농민 항쟁을 주도했던 사건이다. 
 
"살으리 살으리랐다/ 청산에 살으리랐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으리랐다…" 고려 시대 가요 청산별곡도 바로 그 시절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산이 깊어 구름도 문을 열고 간다는 운문산 골짜기에서 무려 10여 년 세월을 버티고 항쟁을 계속했던 김사미의 난은 정부 토벌군의 칼끝에 막을 내렸다. 만약 그 사건을 기층농민의 편에 서서 기술한 역사가가 있었다면 김사미의 난도 재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한때 폭도로 불렸던 동학농민군이 부패한 조정과 외세에 저항한 '갑오 농민전쟁의 주역'으로 재평가되고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사건을 소개한 '영화 1987년'을 시청한 문재인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매스컴을 타는 오늘날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한 시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었던 '로맨티시스트', 김사미의 목소리는 그렇게 사라졌지만 정부 토벌군으로 전투에 참가했던 고려 시대 문장가 이규보의 글은 아직 남아 있다.
 
"산속 스님이 달빛을 탐하여/ 병 속에 물과 함께 달빛을 담았다면/ 절 앞에 다다랐어야 깨달으리라/ 병을 기울이면 달빛도 텅 비는 것을…"
 
시적 화자로 등장하는 이규보의 이미지는 권력욕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비추어지지만, 역사에 기록된 이규보는 '현실 정치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씁쓸한 가슴을 안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본 청도 와인 터널. 일제강점기가 시작되기 전인 1905년에 개통한 경부선 열차가 오가던 터널을 폐쇄해서 만든 공간이다. 청도가 자랑하는 특산물인 단감을 저장 숙성시킨 후 시음까지 하는 특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라고 했다.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서늘해진 느낌이 든다. 사시사철 온도 15도에 습도 50~70%를 유지하는 환경 덕에 차분한 분위기가 감돈다. 안쪽에는 달콤한 와인 한잔에 간단한 안주를 맛볼 수 있는 카페가 마련되어 있다.
 

▲ 경부선 열차가 오가던 동굴에 조성된 와인 터널.

터널 입구에 적힌 안내문을 다시 읽어 보니 경부선이 개통될 당시 부산과 서울을 오가는 열차 요금이 지금 가치로 무려 34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요즘 패키지로 유럽을 다녀오고도 남을 만큼 큰돈을 내어야만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니…. 세월이 주는 무게가 이토록 무거울 줄이야.
 
와인 터널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는 청도 소싸움 경기장이 있다. 가을걷이를 마친 농민들이 즐기던 민속놀이를 상설 이벤트로 되살린 곳이다. 소싸움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열린다고 했다.
 
소싸움 경기장 입구에는 청도 용암온천이 있다. 지하 1008m에서 끌어 올린 온천수에 몸을 담그면 겨울 여행길에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느낌이다. 몸과 마음이 함께 나른해지면서 밀려오는 상쾌함…. 그 순간만큼은 모든 일상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여행을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나 보다.
 
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


▶청도 운문사 / 경북 청도군 운문면 길 264.

가는 방법= 중앙고속도로 지선(17.9㎞)→경부고속도로(26.4㎞)→울밀로(8.8㎞)→운문로(15㎞)로 달리면 도착한다. 약 1시간 15분 소요. 통행료 약 3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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