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은색과 흰색 두개의 건물로 보이지만 하나의 건물이다. 양 옆에 돌출된 흰색 루버 조형물이 이채롭다. 사진제공=건축사진작가 윤준환

 

들띄우기 컨셉, 분리된 사이에 빛 넣어
거실 층고 3.8m 커 보이고 환기에 도움
루버 정자, 본채와 조화 맞춘 휴게 공간
바깥 시야에 따라 창문 모양 크기 다양



전원주택단지에서의 집짓기는 쉬워 보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비슷한 주변 환경과, 비슷한 크기의 대지와, 같은 조망이라는 조건 탓이다. 자칫 단지 전체가 획일적인 모습을 띠기 쉽다. 그 속에서 나름 개성 있는 건축물을 만들려 해도 앞뒷집과의 조화와 시선 등을 감안해야 한다. 김해시 흥동 1통 버스 정류소에서 함박산 쪽으로 5분 남짓 올라가면 10여 채의 주택들이 다채롭게 그러나 단정하게 앉아있는 전원주택단지가 나타난다. 
 
WHITE PAVILLION. 이 주택은 그 중간쯤에 자리 잡고 있다. 앞쪽의 검은색 박스형 단층건물을 박공지붕의 흰색 건물이 감싸고 있는 형상이어서 마치 두 개의 건물처럼 보인다. 이런 주택형태도 독특한데 그보다도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색 건물 2층의 양끝에 설치된 루버 조형물이다. 빗살처럼 촘촘하면서 박공지붕과 같은 뾰족한 모양이어서 마치 성곽을 연상시킨다. 마치 '이 집은 안전해요'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 루버로 지은 정자식 휴게 공간.

 
루버(louver)는 목재나 금속 등의 얇고 긴 평판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평행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 이 주택에서는 알루미늄 소재를 사용했다. 이 루버 조형물은 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집을 설계한 라움건축 오신욱 건축사는 "흰색 루버가 만들어내는 경계의 공간은 자연과의 접점이면서 다양한 관계와 행위를 유발시킨다"면서 "자연을 향해 폭력적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건축물과 자연을 조화롭게 섞어주는 일이 그것"이라고 말한다.
 
루버 조형물은 그러니까 외부와 내부를 잇는 진입 공간, 즉 완충공간인 셈이다. 건물 앞쪽의 루버는 출입 현관 위에 있다. 바깥세상과 집안을 완충한다. 그리고 맞은편에 있는 루버는 숲과 맞닿은 거실 위에 달려 있다. 자연과 집안의 완충인 것이다. 루버 조형물은 또 빛이나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집을 가려주기도 한다. 건물에 드리운 발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주택은 검은색 공간에 안방과 욕실, 그리고 드레스룸이 있고, 흰색 공간의 1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2층에는 아이들 방 2개와 거실과 세탁실 등이 있다. 검은색과 흰색 공간은 실제 한 건물로 안에서는 모두 연결된다. 하지만 두 개의 건물처럼 보이는 것은 색깔 차이도 있지만 들띄우기 컨셉을 적용한 때문이다. 들띄우기는 원래 땅이 가진 구배와 방향과 주변 자연을 고려해 각각의 건물을 띄어서 배치하는 표현기법이다. 이 건축물에서  두 공간이 떨어진 곳은 흰색 건물이 검은 건물을 감싸며 휘돌아가는 그 사이, 삼각형 모양의 공간인데, 이 곳을 통해 건물 전체에 빛을 넣어 내부 깊숙히 고루 채광이 되도록 했다.
 
1층 현관으로 들어가면 복도에서 오른쪽은 안방이고 이어서 주방과 거실이 배치되어 있다. 거실은 남향인데다 숲을 마주하고 있어 자연 속에 있는 느낌이다. 거실의 특징 중 하나가 높은 층고. 무려 3.8m로 일반 건축물 층고의 1.5배 정도 된다. 주방은 층고가 3m가량으로 주방에서 거실로 가려면 계단 3개를 내려가야 한다. 주방과 거실의 높낮이를 달리한 것은 이 주택의 환경적인 구배를 감안해서 이다. 산기슭이어서 경사가 있는 땅이니까 그런 자연스런 높낮이를 표현해 실내의 단조로움을 피했다.
 

▲ 층고가 높은 거실. 주방에서 계단을 3칸 내려간다(왼쪽 사진). 오른쪽 사진은 2층 바깥 복도.

 
거실의 높은 층고는 다른 기능도 한다. 우선 넓고 크게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 집은 1층과 2층의 연면적이 50평 남짓으로 외관과 달리 그리 넓지 않다. 하지만 커 보이는 것은 부피감 때문이다. 층고를 높임으로써 거실의 부피감이 훨씬 커졌다. 거실의 높은 층고는 또 집안 전체의 공기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거실 통창을 통해 데워진 공기는 주방을 거쳐 2층까지 위로 올라간다. 위에서 차가워진 공기는 다시 밑으로 내려오는, 실내 공기의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주택은 창이 많으면서 모양과 크기가 다양하다. 위치에 따라 바깥이 어떻게 보이는 지를 감안해 숨겨야 하는 곳은 작게, 그리고 자연을 조망하고 빨아들여야 할 곳은 넓고 쉬원하게 맞춤형으로 달았다.
 
2층은 아이들 공간인 만큼 활동성 있게 방 사이에 거실을 만들었다. 또 앞쪽으로 긴 복도를 두고 거기에 큰 창을 달아 전경을 조망할 수 있도록 했으며 테라스로 꾸민 앞 건물의 옥상으로 드나들 수 있어 활동공간도 넓다.
 
정원에 흰색 루버로 만든 정자도 이 집의 특색 있는 포인트다. 본채에 설치된 루버 조형물과 어울리면서 고급스런 휴게 공간을 제공한다. 정원의 한켠에 텃밭을 두어 건축주 가족들의 소일거리를 만들었고, 앞 건물과 뒷 건물 사이의 중정에는 작은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초점을 맞췄다.
 
단조롭기 쉬운 전원주택단지 내에서 이 집은 이런 독특한 외형과 아기자기한 내부 공간으로 주변의 시선을 빼앗으면서 쾌적한 생활공간이 되었다. <끝>
 

 흥동주택-WHITE PAVILLION
대지면적 480.0㎡, 건축면적 95.7㎡, 연면적 192.0㎡, 지상 2층 지하 1층 철근콘크리트 구조.
 



 건축작가의 말  

▲ 오신욱 라움건축 대표

전원의 주택단지에 집을 짓는 것은 자연과의 만남과 아파트로부터의 탈출의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자연과의 만남 상황이 이 주택에서 공간을 만들어가는 실마리가 된다. 자연과의 접점공간을 잠재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의 연결, 또는 확장 부분에 루버 파빌리온 공간을 만들었다. 이 공간은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맺어준다. 이곳을 거쳐서 내부로 들어가고, 이곳을 거쳐야지만 외부로 나올 수 있다. 이 주택은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루버로 만들어진 파빌리온을 감지할 수 있고, 이 파빌리온은 공간이기도 하고 형태이기도 한다.

내부공간은 두 개의 생활공간으로 들띄우고, 그 사이에 빛을 담아냈다. 이 빛은 생활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간의 흐름을 이끈다. 층 구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높낮이를 조절했고, 풍광을 바라보지만 이웃과의 프라이버시는 존중된다.

이 집에서 중요한 것은 건축을 통해서 관계를 맺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을 통해서 집주인과 마을사람들, 건축가와 시공자, 그리고 인공의 건축물과 자연의 소통꺼리가 늘게 되었다. 심지어는 집을 구경하러 온 손님에게 커피도 한 잔씩 대접하는 여유까지 생기게 되었다. 집을 통해서 소통하고, 또 그 소통속에서 새로운 공간과 장소로 성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김해의 흥동주택은 우리에게 사람과 건축과 도시,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방법을 살짝 안내해 준다.

김해뉴스 /이정호 선임기자 cham4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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