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권 시인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는 계절이다. 마당 한구석에는 평상이 놓이고 매케한 모깃불이 오른다. 수박화채를 먹고 등목을 하면 여름밤이 시원해진다. 밤하늘 별들이 무수히 떠오르고 깊어지면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때 의례히 등장하는 이야기가 도깨비에 관한 이야기로 여름밤이 깊어지는 줄 모르고 경청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초리로 도깨비이야기에 빨려들게 된다. 내가 어렸을 때 들은 도깨비 이야기는 외울 정도로 많다. 이야기의 정황은 대부분 구술로 이어져 내려온 민담의 이야기를 살과 뼈를 붙여서 재미나게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국 민담에 단골로 등장하는 도깨비는 귀와 신의 중간쯤 되는 인물로 웃음을 제공함은 물론 아이들에게는 서늘함까지 선사한다. 도깨비 이야기는 유머러스하며 통쾌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부리영감도 도깨비의 대표적 이야기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더 붙이고 오는 욕심쟁이 영감의 이야기는 재미와 통쾌함은 물론 교훈적인 내용까지 더하고 있다. 또 밤새도록 씨름 하다가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어 꾀를 내어 넘어뜨리고서는 나무에 묶어놓고 왔는데, 다음날 확인해 보니 몽당빗자루가 나무에 묶여 있더라는 이야기는 도깨비의 어수룩함과 친근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 많던 도깨비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시골에서 이야기를 해주시는 할머니가 없어서일까? 할머니가 계신다 하여도 들어 줄 아이가 없어서인지 몰라도 도깨비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지금의 아이들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별을 쳐다보면서 꿈을 키우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게임에 열중하는 문화인 것이다. 분열되고 개인주의 문화정신이 자연주의에 대한 정서적 감각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민담에 나타나는 도깨비의 종류는 많고 많다. '도깨비 방망이' '혹부리 영감' '도깨비 감투' 등이 도깨비를 소재로 한 설화이다. 이 도깨비는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비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다. 가시적 도깨비에는 도깨비불, 그슨대, 어둑시니, 두억시니 등이 있으며, 비가시적 도깨비는 보이지는 않지만 청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한여름 밤에 도깨비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수한 꿈과 희망을 안겨준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던 도깨비들이 사라져 버렸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 남을 도와주고 의협심 많은 도깨비가 도시화 되면서 할 일이 없어지고 게을러 진 것이다. 풍성한 들판에서 농악대가 농악을 울리면서 돌아다니던 일도 없어져 버렸다. 사람들의 신명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신명이 사라져 버린 지금에 도깨비인들 신명이 남아있겠는가 싶다.

우리 모두는 확장된 문화감각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이 감각의 확장은 자연적인 감각의 퇴화로 이어진다고 한다. 질 들레즈는 감각의 행태적인 변형은 욕망과의 충돌에서 발생되는 하나의 세계로 보았다. 한 개인이 감각으로 생성하는 사물이 보편화 되면서 세대를 전승하는 문화의 표상이 된다고 한다. 이 감각이 현실에서 변형되기도 하고 개인의 심리상태에서도 변형된다고 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현실에 부딪혀 변형되는 귀신 이야기나 도깨비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진다.

갑자기 모든 것들이 침묵의 세계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얼마 전 지방선거가 있었다. 폭풍처럼 쓸고 다니던 사람들이 도깨비불처럼 사라져 버렸다. 온갖 풍요로운 이야기들이 난무하던 판에 휘둘린 사람들이 씨름하다가 돌아갔다. 선거판에 나타난 비현실적 이야기들이 도깨비탈을 벗어 던지고 우리 앞에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어린 아이에게 들려주는 할머니이야기 같이 꿈과 희망을 다시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김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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