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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처럼 붉은 가슴으로 살다간 작가 박화성문학의 향기 - 목포 문학관 ① 박화성관
  • 수정 2019.01.22 16:42
  • 게재 2019.01.15 16:14
  • 호수 406
  • 11면
  • 정순형 선임기자(junsh@gimhaenews.co.kr)
▲ 삼학도를 바라보는 갓바위문화촌 마당에 마련된 목포문학관 게시판.

 

▲ 최초의 여류 소설가 박화성.

비판적 눈길로 바라본 사회
6·25 전쟁 이후 연애소설도 

팔십 대에도 분단 아픔 소설로
아들 삼 형제 모두 문인의 길



비 내리는 호남선의 종착역 목포가 자랑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소설가 박화성과 사실주의 연극을 완성한 차범석, 근대 극예술 운동의 선구자 김우진 등을 소개하는 목포문학관. 세 마리 두루미가 난다는 목포시 삼학도를 바라보는 갓바위문화촌에 자리 잡은 목포문학관 1층으로 들어가면 여류 작가 박화성의 사진이 걸려 있다. 한복 맵시가 단정한 작가의 얼굴 옆에는 소설가 박화성이 살다간 발자취와 문학세계를 알려주는 연보가 적혀있다.
 
을사늑약이 맺어지기 바로 전 해인 1904년. 목포에서 태어난 작가는 스물한 살 때인 1925년 소설가 이광수의 추천으로 지주의 횡포에 시달리는 소작농 아내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아내의 단편소설 '추석 전야'가 조선문단 1월호에 실리면서 문단에 첫발을 내디딘다. 이후 작가는 스물여덟 살 되던 1932년, 고려 시대 남성 중심 사회를 헤쳐나가는 기생의 삶을 묘사한 최초의 여성 단편 소설 '백화'를 동아일보에 연재해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
 

▲ 소설 '고개를 넘으면'을 영화로 만든 포스터(왼쪽)와 유품실에 전시된 일기장.

 
그 과정에서 작가는 잘못된 현실을 고발하면서 계급차별이 없는 사회를 프롤레타리아 문학동맹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동반작가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는 서른여덟 살 되던 1942년, 목포제유공장 파업 사건에 앞장서다 경찰에 체포된 오빠 박재민이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으면서 더욱 저항문학에 빠져든다.

▲ 집필실에서 펜을 잡은 작가.

불혹의 나이를 넘긴 마흔한 살 때 찾아온 8·15 광복이 몰고 온 이념 대립 현장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색깔을 한층 더 진하게 드러낸다.
 
"내 가슴에/ 피어 있는 진달래는/ 누가 감히 꺾으려 들지 못할 것이다// 해마다 피는 진달래/ 진달래처럼 붉은 내 정열/ 아무에게도 뺏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흔여섯 살 때 6·25 전쟁의 비극으로 온몸으로 경험한 작가 박화성은 갑자기 말문을 닫는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4·3사건을 배경으로 쓴 '활화산'을 발표하지 않은 원고지로 밀쳐 두게 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전시실 안쪽 유품관에 전시된 재봉틀과 고무신, 치마저고리 등과 가장 가깝게 지냈던 것도 바로 그 시절이 아닐까.   
 
이처럼 한동안 붓을 꺾었던 작가 박화성이 문단에 돌아온 1955년. 쉰한 살 때 내어놓은 소설 '너와 나의 합창'과 '이브의 후예’의 주제는 남녀 간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허구성과 여성 인권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이후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이 폭압적인 유신체제로 돌입하면서 작가 박화성은 일흔세 살 때 제주도 4·3사건을 본격적으로 다룬 '휴화산'을 발표한 데 이어 팔십 대에 접어든 1984년에는 6·25 전쟁 때 북한군 의용군으로 아들을 떠나보낸 탓한 KBS 이산가족 찾기 운동에 광고조차 못 하는 어머니의 가슴을 그린 '마지막 편지'를 발표하는 등 우리 사회가 가진 모순과 민초들의 아픔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않았다.

▲ 박화성 문학비. 극작가 차범석이 쓴 글이다.

그렇게 현실 사회에 대한 비판적 눈길을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았던 작가였지만 전시실 안쪽에 놓인 가계부와 일기책에서 평범한 주부이자 자상한 어머니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런 자세 덕분인지 큰아들 천승준은 문학평론가 겸 동아일보, 둘째 아들 천승세는 소설가 겸 한국일보 기자 천승걸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겸 번역문학가 등 자식들이 모두 문인의 길을 걸었다는 소개 글이 인상적이다.
 
문단을 대표하는 여류 소설가로 자리매김하면서 자식 농사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작가 박화성. 과연 그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에 대한 답변은 그가 남긴 수상록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런 약속도 없이/ 나는 떠나야 했다…/ 내 긴 뱃길을 위하여/ 그것은 물이 아니라/ 피와 땀으로 이뤄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뱃길을 쉬지 않았다/ 그만큼 나의 운하는 길고도 먼 것이었다"
 
목포=김해뉴스 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전남 목포시 남농로 95.
△ 남해고속도로(252㎞)를 타고 가다 무영로(8㎞)로
    갈아타면 된다. 약 3시간 3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9시~오후 6시. 1월 1일과 매주 월요일 휴관.
② 어른 2000원. 어린이 1000원. 061-270-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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