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폐교된 초등학교를 문학관으로 꾸민 '권정생 동화 나라' 전경.


6·25전쟁으로 굶주리다 폐결핵
강아지똥에 핀 민들레꽃에서 희망

시골교회 종지기로 일하면 쓴 동화
"10억 재산, 어린이 위해 써 달라"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살다간 아동문학가. 세상 가장 낮은 자리에서 어린이와 함께 숨 쉬며 살다간 동화작가 권정생을 소개하는 문학관은 경북 안동시의 조그만 농촌 마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옛 초등학교를 새로 꾸며진 '권정생 동화나라'. 앞마당에는 겨울 농촌을 그린 벽화를 배경으로 어린 동생을 업은 소녀의 인형이 세워져 있다. 6·25 전쟁으로 고아가 된 소녀가 이복동생을 돌보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권정생의 대표작 '몽실 언니'의 한 장면이라는 안내문이 인상적이다. 문학관으로 단장한 건물로 들어가면 현관 복도에 작가가 쓴 '동시'가 걸려 있다.  
 

▲ 서재에서 찍은 권정생 사진.

"우리나라 한가운데/ 가시울타리로 갈라 놓았어요//어떻게 하면 통일이 되니?/ 가시울타리 이쪽저쪽/ 총 멘 사람이 총을 놓으면 되지"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인 열세 살 때 6·25전쟁을 겪었던 작가의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전시실로 들어가면 동화작가 권정생이 살다간 발자취와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공간이 펼쳐진다. 벽면에 걸린 권정생 연보. 일제강점기인 1937년, 아버지가 징용 간 도쿄에서 태어난 작가는 여덟 살 때 맞이한 8·15 광복과 더불어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5년 만에 터진 6·25 전쟁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바람에 김천과 상주 등을 떠돌며 밑바닥 생활을 이어간 사연이 이어진다. 그 무렵 발병한 폐결핵으로 열아홉 살 때부터 투병 생활을 시작한 작가가 서른 살 때 콩팥의 한쪽을 떼어내는 대수술로 시한부(2년) 생명을 선고 받는다.
 

▲ 권정생의 대표작 '몽실 언니'를 그린 벽화.
▲ 작가 권정생이 살다간 발자취를 소개하는 연보.

감당하기 힘든 절망에 빠져 있던 시절, 작가는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똥에서 민들레 꽃이 핀 모습을 발견한다. 모두가 피해 가는 개똥도 거름이 되면 세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때 느낀 감동을 소설로 적은 '강아지 똥'이 서른두 살 때인 1969년 월간 기독교에 실리면서 권정생은 단숨에 인기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시골교회 종지기로 일하면서 "죽기 전에 좋은 글 하나 남기겠다"며 쓴 강아지똥. 그 과정에서 권정생은 건강까지 되찾았다고 했다.
 
전시실 안쪽에는 작가가 머물면서 글을 썼던 촌집이 재현되어 있다. "좋은 동화 한편은 백번 설교보다 낫다."

안방에 놓인 나무판에 새겨진 작가의 어록이 묘한 감동을 자아낸다. 끝없는 절망을 어린이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했던 동화작가. 그 속에서 몸과 마음으로 겪었던 고통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았던 소설가. 그토록 해맑은 가슴으로 살았던 권정생은 일흔한 살 되던 2007년에 세상을 떠났다. 무려 10억여 원에 달했던 인세 등을 "어린 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그렇게 설립된 '권정생 어린이 문화재단'은 현재 소외지역 도서관 지원 사업과 북한 어린이 우유 급식 지원, 평양 어린이 사과 농장 조성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 작가의 집필실을 재현한 공간.

벅찬 가슴을 안고 돌아오는 길. 권정생이 남기고 간 '동시' 구절이 가깝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모두/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중략)…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하략)"
 
김해뉴스 안동=정순형 선임기자 junsh@gimhaenews.co.kr


*찾아가는 길
△ 경북 안동시 일직면 성남길 119.
△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상주영천고속도로를 갈아탄 후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약 2시간 20분 소요.

*관람 안내
① 오전 10시~오후 5시.
②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은 휴관.
    054-858-0808. 

저작권자 © 김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